좋다길래 때려봤습니다. 멍…
  • 김준성
  • 승인 2019.05.06 15: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길잡이란 ‘길을 인도해주는 사람이나 사물’을 뜻합니다. 흔히 가이드로 대체되는 단어인데요. 이번학기 문화부 기자는 길잡이가 돼 교환학생과 남다른 한국 문화를 체험합니다. 지난 시험기간 길잡이와 교환학생은 ‘2019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쉬어가자는 의미로 개최된 대회인데요. 비록 날씨는 더웠지만, 휴식의 중요함을 되돌아볼 수 있는 하루였습니다. 교환학생에게 잠깐의 휴식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생생했던 대회의 뜨거운 현장. 지금 소개해드릴게요! 

 

퇴근시간 버스에 몸을 싣는다. 저마다 지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쳐다본다. 혹은 주변을 의식할 기력조차 없는 듯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쪽잠을 청한다. 이처럼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잠시 쉬어 가자’는 화두를 던진 대회가 있다. 바로 ‘멍때리기 대회’다. 국제대회로 발전할 만큼 뜨거운 반향을 일으킨 멍때리기 대회가 어느덧 한강에서 4회째를 맞이했다. 숨막히는 경쟁 사회에서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쉬어간다는 의미란 무엇일까. 지난달 21일 일본과 프랑스에서 온 교환학생과 함께 ‘2019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했다. 

  이유 있는 취재열기

  잠원 한강공원이 떠들썩하다. 이곳에서 잠시 뒤면 ‘2019 한강 멍때리기 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한강을 마주한 잔디밭에는 이곳이 대회장임을 알려주는 여러 피켓과 설치물이 세워져 있다. 또 사방으로 펼쳐진 부스 사이로 흰색 가운을 입은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저 멀리 방송국 관계자도 보인다. 일본에서 온 히카리 학생(광고홍보학과 3)은 벌써 들뜬 모양이다. “너무 설레요! 대회장소가 한눈에 펼쳐지는 점도 좋고요.” 기자가 교환학생에게 대회가 인기 많은 이유를 설명한다. “한국 사람들이 평소 무척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멍 때리기 대회가 단연 인기예요.” 프랑스에서 온 앤서니 학생(소프트웨어학부 4)도 공감하는 눈치다. “맞아요. 한국인의 근무시간이 프랑스인보다 더 긴 것 같아 보이더라고요. 그나저나 10:1 경쟁률을 뚫고 참가한다니 영광이에요.” 

  이때 한 방송국 카메라맨이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평소에 멍 잘 때리세요?” “시험기간만 되면 습관적으로 넋 놓는 만큼 자신 있습니다.” 기자가 얼떨결에 대답한다. 이어 카메라맨이 대회 참가 각오 한마디를 부탁한다. 기자와 교환학생 모두 주먹을 불끈 쥐며 외친다. “파이팅!” 카메라맨이 떠난 자리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히카리 학생이 서있다. “인터뷰가 처음이 아닌데도 떨렸네요. 대회장 곳곳에 많은 취재진과 유튜버가 보여서 그런가 봐요.” 

 

  멍으로 공감하는 순간

  대회장소 옆 야외행사장에는 대회 참가자가 아닌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공개방송 중인 ‘탁PD의 여행수다’ 팟캐스트 프로그램을 방청하기로 한다. 게스트로 나온 전명진 사진작가가 여행 중 멍 때렸던 경험을 소개한다. “타지마할이 보이는 테라스였어요. 비 오는 날이었는데 나름 운치 있더라고요. 움직이는 구름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죠.” 앤서니 학생도 여행 중 멍을 때린 경험을 언급한다. “지난해 1월에 혼자 일본여행을 다녀왔어요. 스케줄이 빠듯하지 않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죠. 침묵이 주는 고요함이 좋더라고요.” 히카리 학생도 해맑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여행 중 친구에게 사진 찍힌 제 모습은 멍 때리는 모습이 대다수에요. 평소 버스를 기다릴 때도 넋을 놓곤 해요”  

  선수 등록 차례다. 스태프가 앤서니 학생 가슴팍 위에 ‘38번’ 선수 번호표 부착을 권유한다. 이어 앤서니 학생 심박수를 재고서 말한다. “심박수가 76이네요. 비교적 안정적인 수치예요.” “심박수를 재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기자 질문에 대회 창시자 웁쓰양 작가는 심박수가 대회 성적에 결정적인 평가 기준이라 설명한다. “대회 참가 전과 후에 얼마나 많은 심박수 차이를 보이는지가 ‘기술 점수’의 핵심이에요.” 이어 웁쓰양 작가는 기술 점수 외에도 고려해야 할 요소를 설명한다. “대회를 구경하는 시민들이 멍 잘 때린다고 생각하는 선수를 뽑아요. 이때 투표수가 곧 ‘예술 점수’죠. 최종적으로 기술 점수와 예술 점수를 합산해 수상자를 가려내요.”  

  다양한 의상을 갖춰 입은 참가자 무리가 보인다. 히카리 학생이 독특한 참가자들을 가리킨다. “간호사 복장을 한 참가자와 리락쿠마 인형을 가져온 참가자가 눈에 띄네요.” 이처럼 참가자 80명은 저마다 다른 직업과 개성을 뽐내는 의상을 입었다. 마치 사회를 축소해놓은 듯하다. 간호사 권지후씨(25)는 바쁜 현실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자 대회에 참가했다고 소감을 전한다. “평소 환자들의 심박수만 측정하느라 정작 제 심박수는 챙기지 못했거든요. 이번에는 스스로를 돌보고자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사실은 모두 함정카드

  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앤서니 학생이 노란 카드를 든다. 경기 중 노란 카드는 부채질 요청을 뜻한다. 이윽고 스태프들이 자리로 와서 부채질해준다. 대회를 마친 뒤 앤서니 학생에게 노란 카드를 든 소감을 물어봤다. 앤서니 학생이 멋쩍은 듯 웃으며 대답한다.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부채질을 받고 있자니 연회를 연 로마 황제가 된 기분이었어요. 마침 더웠는데 카드를 제때 잘 활용한 것 같네요.” 그러나 히카리 학생은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히카리 학생은 카드를 쓰면 탈락할 것 같았다면서 심경을 토로한다. “목은 말랐지만 카드를 사용하지는 않았어요. 대회 동안 다른 사람과 소통을 최대한 자제하고자 했거든요.” 

  웁쓰양 작가는 서비스 카드가 멍 때리는 활동의 방해 요소라고 전한다. “타인이 다가오면 긴장할 수밖에 없잖아요. 스태프가 진행하는 심박수 측정과 부채질 이면에는 몰입을 방해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죠.” 대회 중간마다 심박수를 잰 앤서니 학생도 속았다는 표정이다. “스태프가 다가올 때 ‘긴장하지 말자’고 계속 되뇌었어요. 그랬더니 더 긴장됐지 뭐예요.” 

  “경기 동안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기자 질문에 앤서니 학생은 영화 이야기를 꺼낸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장면들이 떠올랐어요. 그랬더니 시간이 제법 빨리 가더라고요.” 반면 히카리 학생은 멍 때리는 활동에 제법 집중한 모양새다.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죠. 하지만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더라고요. 마치 공백을 경험한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속도를 줄일 그날까지

  끝으로 웁쓰양 작가는 멍때리기 대회가 바쁜 현대인에게 쉬어보자는 의미로 기획됐다고 전한다. “우리 모두 가속의 시대에 놓여 있잖아요. 하지만 분명 본인이 원하는 속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때 참가자들이 서로 유대감을 느끼고 위안을 주고받으면 좋잖아요. ‘쉬어 가자’는 말을 사실은 우리 모두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대회장을 나서며 앤서니 학생은 프랑스의 보다 여유로운 생활에 대해 설명한다. “프랑스는 주 35시간 근무를 시행하는 등 근로시간에서 한국과 차이가 커요. 일과시간 이후에는 여가시간도 보장되고요.” 이어 할 말이 더 생각났는지 앤서니 학생이 목소리에 힘을 준다. “바쁜 일상 속에서 매순간을 즐기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히카리 학생도 말을 잇는다. “제 고향은 대마도예요. 일본에서도 시골에 속하죠. 서울에 온 뒤로 때로는 자연이 그리워요. 여유를 만끽할수록 삶은 더 풍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삶을 더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테고요.” 이처럼 교환학생이 느끼는 멍 때리기 대회의 의미는 거창하지 않았다. 일상 속의 작은 쉼표를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 이날 기자와 교환학생의 멍 때리기는 귀가하는 지하철에서까지 이어졌다.      

 

 

 -문화수첩: 일본과 프랑스 이색 대회는?

 나키스모 아기 울리기 대회와  경단고둥 멀리 뱉기 대회

 

  ‘나키스모 아기 울리기 대회’는 아기의 건강과 성장을 기원하는 일본 전통 행사이다. 나키(なき)는 울음을 의미한다. 경기는 모래판 위에서 진행된다. 덩치 큰 두 명의 스모선수는 아기를 안고 흔들어 아기를 울게 만든다. 그러나 관람객 누구 하나 스모선수를 나무라거나 아기를 달래지 않는다. 해당 대회는 ‘우는 아기가 가장 빨리 자란다’는 일본 속담에서 기원한다. 400년 전통의 해당 대회는 도쿄와 요코하마 등 일본 각지에서 개최된다. 지역마다 개최 날짜도 다르다. 대회 규칙은 간단하다. 먼저 우는 아기가 이긴다. 동시에 울기 시작하면 더 크게 우는 아이가 이긴다. 혹시 아기가 울지 않거나 잠들면 도깨비 가면을 활용해 아기를 울리기도 한다. 참가 신청은 생후 6개월에서 30개월 아기까지 가능하다. 참가비는 1만 3000엔으로 약 13만원이다.

  프랑스에는 ‘경단고둥(bigorneau) 멀리 뱉기 대회’가 존재한다.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된 해당 대회는 프랑스 서북부 지역인 시비릴(Sibiril) 지방의 한 항구에서 열린다. 비 오는 날 무료함을 달래고자 여러 경찰관이 아이들과 경단고둥을 멀리 뱉은 데서 고안됐다. 경단고둥은 유럽에서 식용으로 사용되며 크기는 약 2.5cm이다. 경기는 기다란 직사각형 모래사장 위에서 진행된다.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참가자 성별과 연령층이 다양한 편이다. 총 3번의 기회 동안 참가자는 살아있는 경단고둥 입구에 혀를 내밀어 부착한 다음 최대한 멀리 뱉어내야 한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흥겨운 전통음악과 함께 방문객들은 한데 어울려 춤추며 축제를 즐긴다. 대회 초창기부터 우승자는 줄곧 57세 알랭 주르뎅(Alain Jourden) 참가자의 몫이었다. 그의 최고 기록은 11.04m다. 경기에 쓰인 경단고둥은 대회 이후 자연으로 방생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