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청년, 모-던한 ‘개화기 컨셉’에 눈뜨다
  • 손의현 기자
  • 승인 2019.04.15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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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아보며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일 중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며 무심하게 지나쳤던 경험이 있나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공감을 필요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이번학기 기획부는 와 닿지 않았던 누군가의 일상을 생각하기 위한 작은 공간, ‘생각의자’를 마련했습니다. 생각의자의 일곱번째 주인은 ‘개화기 컨셉에 가려진 역사’입니다. 경성시대, 모던보이…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요? 최근 개화기 컨셉으로 소비되는 문화 속 쉽게 쓰이는 용어입니다. 하지만 이는 개화기보다 일제강점기에 쓰였던 표현인데요. 과연 우리는 올바른 ‘개화기 문화’를 즐기는 것일까요? 아름다움으로 포장돼 가려진 개화기의 그늘을 의자에 앉아 생각해봤습니다.

 

개화기(開化期)란 1876년의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이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아 봉건적인 사회 질서를 타파하고 근대적 사회로 바뀌어 간 시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는 조선이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이후 타국과도 통상조약을 맺으며 외국의 선진 문명을 접한 배경과 맞물려 진행됐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우리역사넷’ 사이트에 따르면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는 1910년까지로,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 1945년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해당 기획에서는 앞서 언급한 시기 정의를 따르고 있으며 기사에서 다루는 ‘개화기 컨셉’은 실제 ‘개화기’ 기간과 차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개화기 관련 설명은 표준국어대사전과 한국근현대사사전을 참고했습니다.

 

예스러운 전등이 빛나고 부티-크와 레코드점이 눈길을 끄는 거리. 화려한 프릴이 돋보이는 원피스에 레이스 장갑과 망사 달린 모자는 화룡점정이다.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되어 여유롭게 가배 한잔까지. 최근 ‘개화기(開化期)’를 컨셉으로 내세운 미디어 콘텐츠와 소비문화가 특유의 감성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는 올해의 트렌드로 ‘뉴트로(New-tro)’가 선정된 흐름과 연결된다. 책 『트렌드 코리아 2019』에 따르면 뉴트로란 기존의 복고(Retro)와 다르게 젊은 세대가 익숙하지 않은 옛것을 새로운 콘텐츠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복고'를 의미한다. 특히 청년층은 개화기 컨셉의 소비문화를 경험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하는 방식으로 과거 문화를 즐기고 있다. 청년층이 어떤 인식을 갖고 개화기 컨셉 소비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구순모 학생
일러스트 구순모 학생

 

  개화기 문화가 다시 ‘열렸다’?

  최근 ‘개화기 컨셉’을 접한 청년층은 개화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함예진 학생(동국대 의생명공학과)은 개화기 개념을 고등학생 때 배웠다고 말했다. “개화기는 조선이 외국과 수교를 맺은 이후라고 알고 있어요.” A학생(건국대)은 개화기 컨셉 문화를 접하며 개화기를 대략 예측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에 해당한다고 알고 있지만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근대 문물이 들어와 기존 문화에 영향을 주는 과도기라고 생각했죠.” 이솔비 학생(대구교육대 사회과교육과)은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개화기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개화기를 자연스럽게 접했죠.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조선이 망하고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시점이라고 알고 있어요.” 조용석 학생(고려대 경제학과)은 개화기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시기라는 점 외에는 명확히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나 개화기는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시점부터 1910년까지로 구분된다. 이후 1910년의 국권이 강탈된 시점부터 1945년 해방되기까지의 기간은 일제강점기에 해당한다. 이처럼 개화기를 컨셉으로 한 문화를 접한 이들은 대체로 개화기의 시대적 배경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양한 미디어와 소비문화의 영향으로 개화기 컨셉은 하나의 유행이 됐다. 지난해 개화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화제가 돼 개화기 의상과 소품 등이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A학생은 드라마를 통해 개화기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드라마를 보며 개화기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새롭게 알 수 있었어요. 비록 개화기가 혼란스러운 시기였지만 아름다운 면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는 해당 드라마를 계기로 개화기와 관련된 또 다른 소비문화를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개화기 컨셉과 같은 맥락에서 ‘경성’의상을 직접 착용하고 사진을 남기는 등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돼보는 체험이 대표적인 예다. 서울 지역 일대에서 개화기 양장점 느낌을 재현해 경성 의상을 전문적으로 대여해주는 공간 역시 주목받고 있다. 조용석 학생은 SNS에서 개화기 의상을 입어보는 체험 후기 게시물이 자주 등장했다고 말했다. “SNS에서 접한 개화기 의상 체험을 직접 해보니 새로운 의상 문화를 경험할 수 있어 좋았어요.” 그는 개화기 컨셉 의상은 현대 의류에서 느낄 수 없었던 특유의 개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개화기 의상을 입어보는 체험을 통해 해당 시기에 관심을 가질 수 있죠.” 또한 그는 의상을 체험하는 등 개화기 컨셉의 소비문화 자체는 일본의 식민통치 미화와 거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개화기 컨셉 콘텐츠를 체험하는 경험 자체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 없이 개화기를 소비문화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기수견씨(32)는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춘 후 개화기 의상을 입거나 해당 시기를 체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화기 의상을 입고 해당 시대를 사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추억을 쌓는 건 좋죠. 그러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춘 상태로 의상을 입었으면 해요.”

  ‘개화기 축제 오픈’, ‘모던걸, 클래식 보이 냉큼 나오시오!’ 봄을 맞아 새롭게 단장한 한 테마파크의 홍보 문구다. 해당 테마파크는 현재 개화기를 컨셉으로 한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테마파크 거리를 개화기 분위기에 맞춰 재현하고 영어식 놀이기구 이름을 우리말로 바꾸는 등 개화기 컨셉에 따라 테마파크를 구성했다. A학생은 해당 테마파크의 개화기 컨셉과 구성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건축물과 간판, 가로등 같은 조명이 실감 나게 꾸며져 있어 개화기에 온 느낌이었어요. 개화기 상점을 재현한 곳은 독특하고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분위기라 사진으로 많이 남겼죠.” 또한 그는 청년층이 개화기 특유의 감성에 새로움을 느낀다고 언급했다. “SNS와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개화기에 대한 궁금증과 로망이 있죠. 지금은 익숙한 문물이 당시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알 수 있어 재밌어요.” 이솔비 학생은 청년층이 개화기 컨셉을 소비하는 이유로 SNS를 꼽았다. “개화기 컨셉을 소비하는 대다수는 청년층이라고 생각해요. SNS에 색다른 소재의 사진을 올리기 위해 개화기 컨셉을 소비하는 것 같아요.” 이어서 그는 ‘경성’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는 점을 지적했다. “개화기 컨셉이 트렌드가 되며 일제강점기를 ‘경성 시대’로 표현하는 등 아픈 역사가 미화되는 거 같아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많은 사람이 역사를 인지하지 못한 채 미화된 표현을 사용할 수 있죠.”

  일제강점기는 ‘개화기 컨셉’ 속에

  취재원 중 일부는 앞으로도 개화기를 컨셉으로 한 소비문화를 체험하고 싶다고 답했다. 기수견씨는 미디어 콘텐츠 속 역사적 사실을 각색한 내용이 사실 자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개화기를 다룬 미디어 콘텐츠와 소비문화를 체험하는 데는 거부감이 없다고 말했다. “개화기 시절 받아들인 문물이 현재까지도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개화기 컨셉의 미디어 콘텐츠와 소비문화에 큰 거부감은 없죠.” A학생은 개화기 컨셉이 흔하지 않기 때문에 체험하고 싶다고 말했다. “평소 테마파크나 전시에서 쉽게 접했던 핼러윈이나 공주풍 컨셉과 달라 특별하게 느껴져요. 식민통치를 받았지만 개화기 문화에는 우리 조상의 문화도 녹아있기 때문에 불편하진 않죠.” 함예진 학생은 사람들이 개화기를 비롯한 과거에 동경과 환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구현하며 문화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부당한 통치가 문제지, 개화기의 문물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개화기 컨셉의 소비문화를 접한다고 해도 일본의 통치를 가볍게 여기지 않을 거예요.” 그는 오히려 대중이 개화기에 대한 관심을 통해 과거를 이해하고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개화기 컨셉의 소비문화가 우려된다는 입장도 있다. 오소현 학생(전남대 사학과)은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특정 근대역사문화공간을 언급하며 아픈 과거를 상업화하는 문화를 비판했다. “근대 역사를 관광 사업화하는 것은 지역민에게 경제적 이득이 될 수 있지만 역사를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아요. 문화 콘텐츠 생산자들은 아픈 역사를 소비하는 문화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 소비자가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노력해야죠.”

  소위 ‘개화기 컨셉’의 콘텐츠와 소비문화에는 실상 일제강점기 문화가 혼재된 경우가 많다. 1920년대 즈음 경성에 등장한 새로운 스타일의 세대를 의미하는 ‘모던보이’와 ‘모던걸’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인 예다. 특유의 감성과 낭만으로 ‘개화기 컨셉’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그 이면에 일제강점기 문화가 자리했음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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