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으로 향한 발걸음엔

성찰 없는 낭만만 남았다
 

화려함이 가린 식민지의 비애

국권강탈과 혼재된 개화기

최근 서울의 한 테마파크가 ‘개화기(開化期)’ 컨셉으로 봄 시즌 축제를 개최해 논란을 샀다. 축제 이름을 개화기(開花期)로 지어 역사적 시기를 중의적인 표현으로 포장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해당 테마파크에서 ‘개화기 컨셉’의 봄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청년층 사이에서 소위 개화기를 다룬 문화가 유행처럼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향은 명확한 역사의식 없이 ‘뉴트로(New-tro)’ 문화라 불리기도 한다. 개화기를 컨셉으로 한 문화가 가진 문제점과 이를 계속 소비할 때 발생할 부정적 영향을 전문가와 짚어봤다.

경성에 꽃이 피었다니요?

 최근 청년층 사이에서 유행하는 뉴트로 문화는 과거의 유행을 새로운 트렌드로 인식하며 즐기는 경향을 의미한다. 그중 개화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 등이 인기를 끌며 개화기 컨셉은 청년층의 사랑을 받게 됐다. 해당 미디어 콘텐츠에 등장한 의상 역시 이들의 소비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뉴트로 문화의 바람을 타고 종로를 중심으로 ‘개화기 의상 대여점’도 증가하는 추세다.

 SNS에 ‘개화기’를 검색하면 수많은 개화기 컨셉 인증샷을 확인할 수 있다. 남자는 베스트가 포함된 쓰리피스 정장을, 여자는 망사로 장식된 모자와 화려한 레이스와 코르셋 장식이 달린 드레스를 착용하는 것이 개화기 패션으로 대표되는 차림새다. 종로구에 위치한 한 의상 대여점 관계자 A씨는 근래 들어 개화기 컨셉과 관련한 뉴트로 열풍을 실감한다고 답했다. “하루에 대략 120명 이상은 가게를 다녀가요. 익선동 한옥 거리에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에 의상을 대여해 입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죠. 아무래도 개화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종영한 이후로 부쩍 증가했어요.” 그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개화기 의상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덧붙였다.

어쩌면 낙화(洛花)일지도

 개화기는 개항기라고도 불리며 지난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이후 근대 문물이 들어온 시기를 말한다. “주로 지난 1910년 국권 강탈 이전을 개화기로, 이후를 일제강점기로 정의해요.” 장규식 교수(역사학과)는 역사학계에서 일제강점기와 개화기를 구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화기 컨셉이 인기를 끄는 현상에 반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제강점기 잔재가 뒤섞인 문화에 ‘개화기’라는 명칭이 사용됐기 때문이다. 개화기를 반영했다고 알려진 화려한 의복은 사실 1930년대에 유행하던 모던보이, 모던걸 옷차림에 가깝다. 그는 1930년대 의복이 명확한 시대 구분 없이 마치 개화기 문화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일제강점기 당시 의복은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소비되고 있어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영희 학예사(인천개항박물관)는 미디어 콘텐츠에서 연출된 모습이 개화기라는 시대 자체를 상품화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드라마는 시청자의 인기를 끌기 위해 등장인물의 옷을 예쁘게 연출해요. 실제 그 시기의 옷이 아닌 그 시대에 ‘입었을 법한’ 옷을 디자인해 입힌 거죠. 드라마에 대한 열풍이 개화기를 하나의 문화로 소비하게끔 이끌었다고 볼 수 있어요.” 장규식 교수 역시 미디어 콘텐츠의 연출 과정에서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혼용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일부 계층에서 성행했던 문화가 개화기 전체의 동향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점 또한 문제다. 김영희 학예사는 오늘날 유행하는 개화기 의상이 일부 상류층만 향유하던 의복 문화라고 말했다. “지난 1910년 이후 일본이 받아들인 서양 근대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어요. 이러한 새로운 문화에 반응한 계층은 대개 부유했던 상류층에 한정됐죠.” 장규식 교수는 개화기 컨셉의 원형인 ‘모던보이 현상’에 대해 설명했다. “모던보이 현상은 1930년대 도시를 중심으로 나타난 자본주의 소비문화로 볼 수 있어요. 그 당시 80%가 넘는 인구가 농촌에 거주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는 소수만 향유할 수 있었죠.” 그는 식민지 근대 자본주의 현상 자체에 대한 경계도 적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지식인들은 모던보이 현상을 일종의 과소비, 향락 등으로 여기기도 했어요. 그리고 식민지의 엄혹한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소비와 향락으로 도피하는 행태에 대해 비판했죠.” 경성의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맞물리며 발생한 문화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우리 역사 속 1930년대는 개화기가 아닌 국민성과 주체성을 부정당하던 암흑기였다.

이름이 만든 역사 왜곡

 몇몇 전문가들은 뉴트로 문화에 포함된 ‘개화기’라는 명칭 역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자칫 미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규식 교수는 청년층 사이에서 뉴트로 문화의 일환으로 해석되는 개화기 문화를 ‘1930년대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확산’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1930년대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확산을 가리켜 개화기라고 표현하면 근대 문물이 꽃을 피운 것처럼 해석돼 식민지 역사가 미화될 수 있어요.”

 또한 그는 개화기 컨셉을 언급할 때 ‘경성’이라는 단어를 수반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경성이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을 지칭하던 용어였기 때문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고 서울에 붙인 이름이 경성이에요. 경성을 상호에 붙이는 상황 또한 문제가 있죠. 과거 식민지 현실을 놓치고 문화를 소비하게 되는 거예요.” 일제강점기 이전 서울의 이름은 한성이었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황성으로 불리다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경성이 됐다. 독립 이후 경성이라는 이름을 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장규식 교수는 경성이란 이름에는 식민지 현실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명칭으로 인해 역사가 곡해되는 일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희 학예사는 개화기를 컨셉으로 한 뉴트로 문화에 대해 별도로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청년층이 행하는 소비 과정에 역사적 의의까지 주입하기는 어려워 보여요. 문화는 문화대로 두되 실제 개화기를 알기 위한 별도의 학습이 필요하죠.” 장규식 교수는 개화기 컨셉 문화를 즐기더라도 모던보이 현상이 가지는 식민지성과 근대성을 분리해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모던보이 현상은 엄밀히 말해 단순한 근대화 현상이 아니에요. ‘식민지 근대’의 한 초상이죠. 이런 시대를 개화기라고 부르며 근대화의 측면만을 강조한다면 왜곡된 역사를 인식하게 되죠.”

 그때 그 시절, 모던보이가 되기 전에 먼저 진짜 역사와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 경성은 결코 낭만의 대상으로 추억할 공간이 아니다. SNS를 뒤덮은 화려한 의상에도 ‘개화’라는 이름을 남겨선 안 된다. 유행처럼 붙은 그 두 글자에 주권을 빼앗긴 우리의 35년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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