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걸, #모던보이, #경성, 그리고 #개화기컨셉.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최근 유행하며 문화로 자리 잡은 해시태그 중 일부다. SNS에 해당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수천개의 게시글을 찾아볼 수 있다. 주로 ‘개화기(開化期)’문화를 체험해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는 후기와 사진. 그러나 아름답기만 한 ‘개화기 컨셉’과 달리 실제 ‘역사 속 개화기’에는 아픔이 서려 있다. 역사적 측면에서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는 혼재되는 부분이 있고 개화기라는 시기 자체도 완벽히 긍정적인 시각으로 소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화기 컨셉’으로 유행하는 문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문화를 올바르게 소비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전문가와 함께 알아봤다.

 

'멋'이라는 표현 속

가려진 시대상 미화

 

올바른 문화 소비 위해

역사 속 시대 배경 되짚어야

 

  우리는‘어떤 시대’를 즐기고 있나

   국사편찬위원회 ‘우리 역사넷’ 포털사이트는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구분하고 있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가 바로 이어지는 시기인 만큼 두 시기를 분리해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근 대중이 소비하는 개화기 컨셉에선 시대적 배경과 맞지 않는 표현이 혼용되기도 한다. 민족문제연구소 김승은 학예실장은 ‘경성’ 이라는 용어가 개화기 컨셉과 같이 쓰이는 현실에 대해 무분별한 용어 사용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성은 일제강점기 당시 쓰인 식민지 침략 용어죠. 이를 개화기에 새롭게 유행했던 용어처럼 쓰는 건 역사적 인식 부재에서 비롯된 접근이에요.” 실제로 서울특별시에서 운영하는 공식블로그는 개화기 컨셉 의상 체험을 소개하며 ‘경성’ 등의 단어를 사용했다.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20세기 초를 ‘개화기 문화’가 있던 ‘모던걸, 모던보이 시대’라 일컬으며 ‘유행이 돌고 돌아 100여년 전 유행이 젊은 이들 사이에서 다시 각광받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김승은 학예실장은 식민지 시기 용어를 ‘문화’의 일종으로 인식하며 수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유행하기 시작 한 개화기 컨셉 의상도 일반적인 개화기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김승은 학예 실장은 화려한 의상을 입을 수 있었던 이들 역시 굉장히 극소수였다며 일부 계층의 의상이 개화기의 복장으로 일반화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제강점기를 연상하는 요소는 지적하면서 개화기라는 명칭으로 소비되는 일제강점기 문화를 인지하지 못하는 태도에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동규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부)는 일부 개화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속 복장이 시대 상황을 미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에 일반적이지 않았던 화려한 복장은 실제 과거를 반영하지 못해요. 드라마나 미디어 콘텐츠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픽션 요소를 사용했더라도 지나친 이미지 차이는 대중이 역사적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죠.”

  그저 아름답게 포장된 시대를 벗가고

  현재 소비되는 개화기 컨셉의 가장 큰 문제는 해당 역사적 시기의 배경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실제 개화기 컨셉 콘텐츠를 체험한 많은 이들은 ‘고풍스럽다’, ‘화려하다’등의 수식어를 붙이며 시각적인 요소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개화기라는 역사적 시기만 고려하더라도 이는 충분히 문제가 된다. 1870년대를 전후로 일본 정계에서는 조선에 대한 공략론이 강력히 대두됐다. ‘정한론(征韓論)’이라 불리는 이 이론은 향후 일본의 강압적인 강화도조약 체결에 일조한다. 그리고 당시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1876년은 개화기가 시작된 시기다. 이러한 시기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멋을 강조한 의상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는 의미다.

  김누리 교수(독어독문학과)는 국내적으로 과거 청산이 잘 되지 않는 점 역시 문제의 원인이 된다고 짚었다. “근대사에 대한 부족한 인식은 특정 시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소비하는 결과를 낳아요.” 그는 독일의 사례를 들며 국가적 차원의 과거 청산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경우 미디어나 교육을 통해 과거 인식을 올바르게 하려고 하죠. 과거 청산을 국가 정체성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에요. 국내에서도 근대사에 대해 자세한 역사교육이 우선돼야 해요.”

  또한 그는 국내적으로 근대사에 대해 인 식 개선이 이뤄진 후 일본과 과거 역사에 대해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식민지배를 시행했던 국가였고 폴란드와 프랑스는 지배를 당한 피지배국이었죠. 각국이 역사교과서를 공동으로 저술했다는건 과거에 대해 서로 인식하고 합의했다는 의미에요.” 과거 독일이 근대사에 대해 인식하며 식민 피지배국이었던 프랑스, 폴란드와 함께 ‘공동 역사교과서 편찬 사업’을 펼쳤다는 설명이다. 김누리 교수는 한국의 이러한 개화기 컨셉 소비 배경에 일본도 관련이 있다고 전 했다. 그는 국내적으로 근대사에 대해 인식 개선이 이뤄진 후 일본과 과거 역사에 대해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바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디어 생산자의 노력 역시 필수적이다. 성동규 교수는 미디어 콘텐츠가 미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상황이 지양돼야 한다고 전했다. “역사적 배경 없이 화려함만 강조된다면 해당 시기에 일반적으로 선조들이 겪었던 고통이 전달되지 않는 거죠.” 그는 특히 젊은 세대에게 왜곡된 역사가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역사를 미디어의 대상으로 다룰 경우 가급적 현실에 충실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승은 학예실장은 개화기 컨셉처럼 특정 시기를 문화적으로 소비하려면 개인이 해당 시기가 갖는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화기는 애국계몽운동과 친일 활동이 동시에 일어나던 시기에요. 이런 시기를 그저 예쁜 요소로 소비하는 건 과하죠.” 또한 그는 근대적인 복장의 등장 배경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의 경우 1898년 찬양회가 발표한 ‘여권통문’을 통해 사회적 인권을 주장하며 근대화 의상을 착용했어요. 현재 개화기 복장이라며 소비되는 화려한 의상과는 차이가 있죠. 정말 개화기 문화를 알고 싶다면 개화가 이뤄지던 근대사에 대해 파악해야 해요.” 개화기 컨셉을 문화의 일종으로 바라보는 건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앞선 모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았듯 한 시대를 문화적 대상으로 소비하려면 과거 역사를 돌이켜보며 올바른 인식을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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