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고용시장 속 불안정한 청년공시생
  • 노유림 기자
  • 승인 2019.04.07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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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서 생각하며

공무원 시험에 발 묶인 청춘

고급 인력의 국가적 낭비

 

개인과 사회 발전 가로막는

정형화된 지식의 한계

“여러분들 열심히 안 살았죠? 열심히 살았으면 여기 없을 가능성이 높아요.” 지난해 7월 공무원 시험 준비생(공시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있었던 강사의 발언이다. 이후 해당 강사는 사과문을 게시했지만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단지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청년이 공무원에 도전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KRIVET)의 ‘청년층의 취업 관련 시험 준비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은 약 41만명이다. 이는 취업을 위해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층의 약 38.8%에 해당하는 비율로 전체 시험 유형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정말 이들은 열심히 살지 않아 공시생이 된걸까. 국내 청년 공시생 비중이 높은 배경과 함께 이들이 사회에 끼칠 영향을 자세히 파헤쳐 봤다.

  누가 그들을 공시생으로 만들었나

  김상봉 교수(한성대 경제학과)는 ‘공무원 쏠림 현상’ 원인을 미시적 측면과 거시적 측면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이 공무원을 안정적 직종이라고 생각하는 게 미시적 측면의 원인이에요. 정년이 보장 되고 공무원 연금을 받을 수 있어 안정적이라 생각하는 거죠.” 또한 거시적 측면에서는 최근 정부의 공무원 증원 정책도 공시생 증가에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청년 취업난이 지속되며 공무원에 편향된 일자리 경 쟁 양상은 오랜 기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직업 능력개발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층은 지난 2012년 약 29만명이었으나 지난해 약 41만명을 기록했다. 6년간 연평균 약 6%의 성장률을 기록한 청년 공시생 수는 타 직종에 비해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서울산업진흥원 고용지원본부 정 익수 본부장은 과거부터 지속돼온 사회적 인식이 공시 생 증가를 고착화한다고 짚었다. “IMF 금융위기 이후로 대한민국 경제가 구조적으로 변했어요. 이전에는 기업이 종신고용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경제위기를 겪으며 고용보장이 힘들어지기 시작했죠.” 정익수 본부장은 지난 1998년 IMF 금융위기 이후 거대 규모의 구조조정을 겪었던 한국 사회가 고용 안정성을 특히 중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처럼 기술이 변함에 따라 공무원 선호 현상이 심화됐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오호영 선임연구원은 업무의 컴퓨터화 및 자동화가 사무직에서 심화되는 현상이 오히려 공무원을 선호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전했다. “대기업에서 인문·사회 계열 대졸자 신규채용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어요. 기술의 복잡성이 높아지며 인문·사회계열 출신 사원이 기술과 제품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한 시대가 돼가는 거죠.” 기업에서 이공계 전공자를 선호해 이공계 전공자가 아닌 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더 많이 몰리며 공시생 비중이 늘었다는 뜻이다.

 

  ‘공무원 시험 쏠림 현상’이 초래할 결과

  현 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공무원 약 17만4천명을 증원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현재처럼 공시생 비중이 과도하게 늘어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상봉 교수는 생산 적령기인 청년인구 중 공시생이 많아질 경우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공무원을 많이 뽑는 등 인적 투자를 늘리면 시장에서 정부의 비중이 커져요. 이는 기업과 같은 민간 투자 유인을 줄이는 원인이 되죠. 민간의 투자를 정부가 대신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공무원 증원은 민간 기업에 취업 하려는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또한 그는 공시생 증가가 경제활동인구 비중을 줄인다고 덧붙였다. “비경제활동인구는 만 15세가 넘은 인구 중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들을 말해요. 공시생은 비경제활동 인구에 포함되죠.” 경제활동 적령기인 청년층 대부분 이 수험생활을 하며 생산적인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는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공무원 시험에 최적화된 공시생은 사회의 악순환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호영 선임연구원은 생산적 부문에 투입돼야 할 인적 자원이 낭비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공무원 시험은 대개 암기를 필요로 해요. 공정성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21세기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개발과는 거리가 멀죠.” 특히 전공과목과 관련이 먼 공무원 시험에 몰두하는 공시생은 개인 역량을 개발하기도 어렵다. “청년기는 역량을 쌓고 능력을 개발해야 하는 시기에요. 그러나 대학생이 재학 중 공무원 시험 준비를 병행할 경우 자신의 전공과 관련 없는 내용을 공부하며 역량을 키우지 못하는 일도 있죠.” 박남기 교수(광주교대 교육학과)역시 공무원 시험 내용이 고급 역량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공무원 시험 내용은 개인의 지식 확장으로 이어지기도 어려워요. 단순 상식과 지식을 쌓는 정도에 불과해 사회 발전에도 크게 도움 되지 않죠. 공무원 시험 준비는 지식을 심화하기보다 오답률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이에요.” 그는 반복학습으로 터득한 공무원 시험용 지식이 타 분야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짚었다. 공무원 시험과 다른 취업 분야의 연계성이 낮아 상대적으로 취업 준비 기간이 더 길어진다는 의미다.

  오랜 기간 수험생활을 하는 장수생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오호영 선임연구원은 공무원 시험 준비기간이 오래될수록 다른 직종으로의 취업도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민간 기업은 대개 졸업 후 2년 이상 일정 경력이 없는 신규 졸업자를 채용하길 꺼려해요. 오랜 수험기간을 거친 장수생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그만두더라도 기업에 취직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죠. 실제로 일정기간 이상 공무원 시험을 준비 하다가 민간 기업에 취업한 청년층은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임금이 낮은 경향을 보여요.” 실제로 오호영 선임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30·40대의 공무원 시험 응시 회수가 약 1.89회 이상일 경우 현재 임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나타났다.

  또한 오호영 선임연구원은 반복적 암기와 오랜 수험 생활이 사회적 고립을 초래한다고 우려했다. 사회적 고립은 기초역량과 직무역량을 개발하지 못하는 원인 으로 작용한다. 그는 공시생이 가질 수 있는 문제가 개 인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수험생활 중 겪는 극심한 스트레스는 정신과 육체에 부정적 영향을 주죠. 또한 현재를 희생하는 공시생은 수험 기간이 길어질수록 합격 후 직업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작용 할 수 있어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공무원이 일반 국민을 대할 때 직업적 보상 심리와 엘리트의식을 갖게 되는 거죠. 따라서‘국가의 심부름꾼’으로서 본분을 다 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요.” 불안정한 취업시장이라는 사회 구조는 공시생이 꾸준히 증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역으로 공시생이 겪는 문제도 사회의 불안정에 기여하게 됐다. 악순환고리 중심에서 꾸준히 증가하는 청년 공시생. 결국 이들 개인의 안정성은 물론 국가 전체의 안정성을 흔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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