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속·시, 소금물 농도 구하기’, 고등학교 졸업 이후 정말 오랜만에 보는 문제들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본 인·적성 고사 문제였다. GSAT, HMAT, SKCT 등 기업별로 시험 이름도 참 거창하다. 들어보니 대기업 취업을 위해서는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단다. 인·적성 고사 인터넷 강의, 토론 면접 대비 수업 등 기업들의 채용절차가 복잡해지면 학생들도 그에 맞춰 준비하느라 바빠지는 모양이다. 우리는 전형적인 ‘피로사회’에 사는 현대인이며, 이 사회에 굴복하지만 때로 벗어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한병철 교수의 책 『피로사회』에서는 성과를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착취하여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피로해지는 사회를 피로사회로 설명한다. 과거 규율사회는 명령과 금지가 팽배한 부정성의 사회였다. ‘해야 한다’와 ‘해서는 안 된다’라는 강제성을 띤 말로 개인은 억압받았다. 하지만 현재 성과사회에서는 ‘할 수 있다’와 같은 자율성이 강조된다. 좋게만 들리는 이 자율성이 오히려 자신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게 만든다고 느꼈다.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높이고,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자아는 결국 피로해질 수밖에 없다. 

  한병철 교수가 『피로사회』를 처음 발간한 지도 벌써 9년이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피로사회에 살고 있다. 그나마 피로사회 속에서도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꽤 생겼다고 생각해 위로받는다. 그들의 여유는 거창할 게 없다. 집에서 하는 혼맥, 친구와의 대화, 보고 싶었던 공연 관람 등 소소한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일들이다. 그 여유가 삶의 원동력이 돼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의 피로를 덜어준다.

  도서관에서 토익시험을 공부하던 기자는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러 가자는 친구의 연락에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행복을 포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 도서관에서 나와버렸다. 토익시험이 얼마 안남아 불안했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놀랍게도 불안함이 사라졌다. 친구와 보낸 시간과 새로운 영화가 토익 공부에 지쳤던 마음을 달래줘 오히려 공부를 더욱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잠시 여유를 가지면 다른 사람들보다 낮은 점수를 받을 것만 같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은 돈과 동일시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높은 급여를 주는 대기업에 취업하면 성공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대다수의 대학생이 취업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대기업 취업’처럼 어려운 목표를 세우고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자격증 및 어학 시험 준비에 이제는 인턴까지 필수 스펙이란다. 다 채우기도 힘든 스펙들을 모두 모아도 취업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갖기란 힘들다. 할 일은 태산인데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라니. 하지만 기자는 바쁜 일상 속 소소해 보이는 일이 주는 가치가 크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러한 피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금 당장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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