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시, 열어줘서 고맙습니다.’ 여러분도 일상 속 사소함에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나요? 느지막이 일어난 주말 아침이 주는 여유. 마침 정류장에 진입하는 버스를 볼 때 안도감. 우리가 느끼는 일상 속 고마움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주변의 크고 작은 전시회에서도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죠. 이번주 중대신문은 밝고 산뜻한 분위기를 아크릴 물감으로 칠한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그의 작품은 지난해 약 1020억원에 낙찰돼 큰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고마움 가득했던 전시를 둘러본 기자가 전하는 생생한 후기, 함께 둘러볼까요?

현존하는 작가 중 최고 작품가격을 달성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가’라는 별명을 지닌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지난달 열린 그의 전시회가 서울시립 미술관에서 오는 8월 4일까지 진행된다. 영국 테이트 미술관과 공동으로 기획한 이 전시회는 여러 매체를 통해 과감히 작품세계를 드러낸 호크니의 행보를 좇는다. 다채롭게 변모해온 그의 작품세계를 바탕으로 호크니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라 불리는 이유를 알아보자.  

 

  평범한 그림은 싫어

  전시 첫 공간은 그의 모험적인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호크니는 정사각형에 갇히길 원하지 않았다. 새로운 틀을 끊임없이 작품에 적용했다. 「환영적 양식으로 그린 차 그림」은 평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깊이감이 느껴진다. 캔버스를 여러 개 붙여 작품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사각형 캔버스에서 벗어나 비대칭 육각형 모양의 캔버스를 사용해 작품을 그려냈다. 

  그에게 많은 영감을 준 도시 로스앤젤레스(LA)를 설명하는 공간에 들어선다. 눈앞에는 파란 색감의 시원한 그림이 가득하다. LA에서 그린 그의 대표작 「더 큰 첨벙」이 전시 한 면을 커다랗게 차지한다. 호크니는 당시 유행하던 추상 회화를 거부하고 단순화된 형태와 평면성을 그림에 담고자 했다. 다이빙대 아래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간 하얀 물줄기가 이목을 집중시킨다. 유지혜 도슨트는 특정 소재가 작품에 ‘느낌’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이 작품의 재료는 아크릴이에요. 호크니는 이를 활용해 물이 흐르듯 밝고 가벼운 느낌을 살리고 싶어 했죠.”   

 

  카메라 셔터를 눌러 자연주의로

  호크니는 LA에 머무르며 주변 인물과 장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시기 호크니는 카메라를 접한다. 유지혜 도슨트는 그가 사진을 통해 대상을 그리고자 했다는 말을 전한다. “대상을 긴 시간 동안 지켜보고 그리는 방식에 어려움을 느낀 호크니는 사진을 매개로 섬세한 묘사와 관찰을 하고자 했어요.” 그는 대상을 분석하고 관찰해 그려내는 자연주의를 화풍에 담았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2인 초상화 「클라크 부부와 퍼시」에서 그의 섬세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해당 작품은 호크니와 절친했던 클라크 부부가 실내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담는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실내 공간과 화면 밖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는 두 인물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눈에 띈다.

  피카소의 손을 잡고 뛰쳐나오다

  새로운 공간에 들어서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화풍의 작품이 나타난다. 호크니는 한때 표면적인 표현에 그치고 마는 자연주의 그림에 회의감을 느꼈다. 그는 사진이 갖는 하나의 초점이 관객을 원근에 가두고 그림으로부터 분리시킨다고 생각했다. 호크니는 이 시기를 ‘자연주의의 덫에 걸린 시기’라고 말한다. 이때 호크니가 떠올린 대상이 바로 그의 오랜 우상, 피카소다. 호크니는 대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피카소를 본받아 다양한 주제를 떠올린다. 유지혜 도슨트는 호크니의 자연주의 탈피는 피카소가 준 영감과 작가 스스로의 노력이 함께 이뤄낸 결과라는 말을 전한다. “결정적인 계기가 피카소인 것은 분명해요. 하지만 작가 스스로 문제의식을 끝까지 붙들고 돌파구를 찾았기에 자신만의 세계 형성이 가능했죠.” 자연주의에서 탈피한 그는 자유분방한 에칭(Etching)으로 구성된 「푸른 기타」 시리즈를 통해 피카소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에칭은 동판화를 긁어내 형태를 그리는 예술 기법이다. 해당 시리즈에서 그는 피카소의 「늙은 기타리스트」 작품을 오마주하고 푸른 기타가 등장하는 톡톡 튀는 에칭 그림을 스무 점가량 보여준다. 

 

  움직이는 시점

  자연주의부터 입체주의까지 많은 계단을 밟아온 호크니 앞에는 또 다른 계단이 놓여있었다. 바로 ‘다(多)시점’이다. 두 개 이상의 시점이 하나의 작품에 드러나는 방식이다. 뚜렷한 색감이 눈에 띄는 노란색 기둥이 오묘한 각도로 줄지어 서 있다. 그 사이에 조금은 찌그러진 듯한 복도와 장식물이 보인다. 바로 ‘다시점’을 적용한 호크니의 작품 「아카틀란 호텔」 시리즈다. 작품 속 호텔은 여러 각도에서 본 듯한 모습이 합쳐진 형태를 띤다. 그는 중국 두루마리 회화 에서 다시점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이승아 큐레이터는 호크니가 중국 회화에서 서양 회화와 차별화된 지점을 찾아냈다고 전한다. “두루마리를 펼쳐 보면 보는 이의 시점이 이동하잖아요. 한마디로 고정 시점이 아닌 거예요.” 이처럼 호크니는 다시점을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작품에 적극적으로 녹여냈다. 

 

  새로운 매체와 맞이한 세계

  전시 마지막 공간에 들어서면 큰 작품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그의 또 다른 도전 정신이 돋보이는 ‘멀티 캔버스' 풍경화다. 벽에는 광활한 그랜드 캐니언 풍경이 걸려있다. 「더 큰 그랜드 캐니언」이라는 작품이다. 바위는 노란색 표면과 녹색 식물이 섞여 또렷한 느낌을 준다. 배경을 차지하는 주황빛 전경은 그랜드 캐니언의 풍경을 더 넓어 보이도록 만든다. 호크니는 그가 청년이던 지난 1960년대 방문한 그랜드 캐니언의 장엄함에 깊이 감명받았다. 이후 그는 지난 1980년대에 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각도의 그랜드 캐니언을 그리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카메라 성능의 한계를 느낀 그는 지난 1990년대 이곳을 다시 찾아 풍경을 보며 그림을 그렸다. 유지혜 도슨트는 해당 작품에서 그의 집요한 노력이 빛을 발한다고 전한다. “이는 작가의 마음과 기억이 혼합된 작품이에요. 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진정한 공간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죠.”

  여러 색이 덧대어진 큰 나무가 「더 큰 그랜드 캐니언」과 마주 보고 있다. 고향 요크셔를 그린 전시회 최대 규모의 작품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야외에서 그린 회화」다. 커다란 나무가 관객 앞에 우뚝 솟아 있다. 봄을 맞이하는 나무의 끝자락에는 조그맣게 솟아난 새순도 보인다. 해당 작품에는 총 50개의 캔버스가 동원됐다. 호크니는 캔버스 하나하나를 야외에 가져가 나무의 각 부분을 그렸다. 이를 포토샵을 활용해 합치며 작품을 완성해나갔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새로운 매체를 적극 활용한 셈이다. 

  호크니만의 작업 세계

  디지털 기술을 통해 3000장의 사진을 이어 붙인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도 있다. 웃고 있는 호크니 사진 주위를 3D 형식으로 구성된 그의 여러 작품이 둘러싸고 있다. 작품은 그가 지난 60여년 동안 걸어온 작품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최근 호크니가 관심 가졌던 시간과 공간의 확장을 확인할 수 있다. 입체적으로 구성된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가 추구한 ‘움직이는 시점’을 느낄 수 있다.

  이승아 큐레이터는 호크니를 ‘끈질긴 예술가’라고 정의한다. “호크니는 60여년간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그림에 담아내고자 했어요. 이 한 가지 주제를 위해 긴 작품 활동을 펼친 거죠. 이 여정을 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호크니는 고집스럽게 스스로의 도전을 이어나가며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했다. 매 순간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그의 행보에 주목해보는 건 어떨까.

 

  도화지와 전자기기 사이

한 남성이 아이패드를 꺼내더니 손가락으로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를 그려낸다. 눈동자에 비친 빛부터 모자의 명암까지 원작과 상당히 흡사한 작품이 완성됐다.

  일본의 예술가 야마오카 세이코에게 도화지는 곧 아이패드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찍은 영상은 2019년 4월 현재 약 55만 회에 달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 작품은 그를 유명인 반열에 오르게 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기기와 손가락만으로 어디서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세이코는 예전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바쁜 일상으로 인해 휴일에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답답함을 느낀 그는 틈틈이 아이패드를 통해 그림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아이패드 예술가’로 거듭났으며 현재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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