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시, 열어줘서 고맙습니다.’ 여러분도 일상 속 사소함에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나요? 느지막이 일어난 주말 아침이 주는 여유. 마침 정류장에 진입하는 버스를 볼 때 안도감. 우리가 느끼는 일상 속 고마움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주변의 크고 작은 전시회에서도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죠. 이번주 중대신문은 작품 「샘」을 통해 예술계에 큰 파장을 던진 뒤샹을 다룬 <마르셀 뒤샹>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고마움 가득했던 전시를 둘러본 기자가 전하는 생생한 후기, 지금 시작합니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샘」이라는 작품의 작가 뒤샹. 한평생 동안 새로운 시도를 통해 사회 메시지를 던진 뒤샹을 4월 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 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다. 뒤샹은 예술을 둘러싼 선입견을 부정하는 용어 ‘반예술(Anti Art)’을 만들고 여러 혁신적인 작품 활동을 펼친 인물이다. 현대미술 선구자인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메시지를 품고자 했는지 전시회를 통해 살펴보자.    

  다양한 영감을 찾던 어린 뒤샹
  새하얀 벽에 온갖 회화 작품이 걸려있다. 교회에 비친 따뜻한 빛을 보아하니 빛 포착을 중시하는 인상주의 작품 같다. 여러 방향의 모습이 겹쳐진 두 사람이 체스를 두는 모습도 보인다. 마치 몸이 쪼개진 듯한 모습이다. 얼핏 다면적 표현을 추구하는 입체주의 작품 같다. 문득 ‘뒤샹 전시회에 들어온 것이 맞나?’하는 의문이 든다. 두 작품은 각각 뒤샹의 초기 작품 「블랭빌 교회」와 「체스를 하는 사람의 초상」이다. 초기 뒤샹은 주로 주변 인물을 그리며 당대 화풍을 그림에 담아냈다. 이슬기 도슨트는 해당 작품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간다. “뒤샹의 작품은 여러 화풍을 넘나들어요. 같은 작가가 그린 그림이 맞나 싶을 정도죠.”

  뒤샹은 당시 만연했던 화풍에서 벗어난 비자연주의적 표현을 담기도 했다. 「의사 뒤무셸의 초상」 작품에서는 분홍색 빛이 의사의 손을 둥글게 감싸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데 이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의사의 손을 감싸며 칠해진 분홍색 후광은 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도 작품에 담아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뒤샹은 육안 너머를 보여주는 ‘X-ray’ 기술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     

  삶을 바꾼 혁신적인 누드화
  ‘누드화’라는 명칭이 품는 선입견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누드화를 떠올리면 옷을 벗은 여인이 뇌쇄적인 표정으로 누워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 2」는 전혀 다른 형상을 띠고 있다. 우선 작품 속 인물은 여성인지 남성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정면 모습이 보이면서도 옆면과 뒷면 모습이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슬기 도슨트는 뒤샹이 작품에서 신경 쓴 부분은 인물이 아니라고 전한다. “뒤샹이 이 그림에서 표현한 것은 대상이 아니라 움직임이에요. 당시 연속으로 사진을 찍는 ‘연사’라는 기술이 새로 발명됐어요. 그는 이 기술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 2」는 당시 일반적 누드화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전시회 측으로부터 수정을 요구받았다. 그러나 이에 응하지 않은 뒤샹은 결국 출품을 철회한다. 이후 그는 당시 혁신적 예술 작품을 모아 전시하는 ‘아모리쇼(Armory Show)’에 작품을 출품했고 큰 관심을 이끌며 유명인사로 거듭난다. 동시에 그림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게 무슨 예술이야
  그림에서 탈피한 뒤샹의 대표작 「샘」과 「자전거 바퀴」는 아래층 커다란 전시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두 평범한 기성품으로 만든 레디메이드 작품에 해당한다. 레디메이드는 기성품에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는 개념으로 예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반(反)예술의 한 장르다.‘저 변기 알아, 유명하잖아.’라는 생각을 하며 작품을 유심히 바라봐도 앞에 놓인 건 하얀 변기일 뿐이다. 

  변기 위의 사인이 전부인 「샘」을 작품이라 볼 수 있을까. 당시 독립예술가협회가 마주한 「샘」은 ‘뜨거운 감자’였다. 갑작스레 협회 앞으로 온 ‘R.MUTT’ 사인이 그려진 남성용 변기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여느 작품처럼 작가의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지 않아도 이를 작품이라 칭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결국 「샘」은 ‘앵데팡당(Salon des Artistes Indépendants)’ 전시회에 전시되지 못했지만 뒤샹은 끊임없이 그의 작품을 변호한다. 이영기 교수(다빈치교양대학)는 작가의 의도가 작품에 담겼다는 사실 자체가 「샘」을 작품으로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사물에 부여하는 미술가만의 독창적인 해석이 사물을 작품으로 만든다고 볼 수 있어요.” 

  새로운 시도를 대하는 열린 마음
  어두운 벽에 오묘한 분위기의 사진이 걸려 있다. 언뜻 보면 도도한 귀족 부인 같지만 굵은 선에서 남성의 모습도 보인다. 여장한 뒤샹이 과감히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 ‘에로즈 셀라비’다. 작품 초기에도 다양한 화풍을 넘나들었던 그는 성별 역시 자유롭게 선택하고자 했다. 이슬기 도슨트는 ‘에로즈 셀라비’가 그런 태도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지난 1990년대 초반 성이 명확히 구분되던 시기에 뒤샹이 선택한 새로운 자아는 그가 경계에서 자유롭다는 사실을 보여주죠.” 에로즈 셀라비를 마주한 김예원씨(27)는 뒤샹의 또 다른 자아가 새롭게 다가왔다고 소감을 전한다. “남성인 뒤샹의 내면에서 여성이 보인다는 점이 인상 깊네요.”

  그의 다양한 시도는 「나의 여든다섯 모습」이라는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석고를 몸에 붙였다 떼면 일시적으로 피부가 쭈그러드는 사실을 적극 활용했다. 얼굴에 석고를 붙여 나이든 스스로의 모습을 연출해 사진으로 남긴 뒤샹은 실제 여든다섯까지는 살지 못했다. 죽고 난 후 모습까지 사진으로 남긴 셈이다. 이슬기 도슨트는 “레디메이드 같은 큰 시도뿐 아니라 이처럼 작은 시도를 통해서도 예술의 끈을 놓지 않은 뒤샹의 열정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20년을 숨겨온 비밀스런 작품
  노년의 뒤샹은 대외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근황을 묻는 말에 ‘그저 숨만 쉬고 있다’고 재치 있는 답변을 던지는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전시회의 마지막 공간은 회고전 사진과 명예 작가 위촉 자료 등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뒤샹은 대중 몰래 단 하나의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그의 사망 후 공개된 유작 「에땅 도네(étant donnés)」다. 커다란 나무문에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면 문 쪽을 응시하며 다리를 벌리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는 성 에너지를 예술화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으며 에로티시즘을 ‘창조의 샘’이라 보았다. 뒤샹이 죽기 전까지예술가로서 작품 활동을 지속한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뒤샹은 자신의 작품이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 적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지난 지금 관객으로 서 있는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한 시대의 뜨거운 감자였던 뒤샹의 끝없이 새로운 시도를 인지한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전시 아닐까.    

 

[   ]도 예술이다

괄호 안에는 모든 말이 들어갈 수 있다. 반(反)예술은 기존의 예술 사조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경향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계가 자유로운 반예술 아래 모든 소재는 예술이 될 수 있다. 반예술은 마르셀 뒤샹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뒤샹이 작품 소재로 제시한 변기는 기성 예술에 반대하는 하나의 상징물이 된 셈이다.      

  최정화 작가 역시 일상의 오브제(object)를 소재로 삼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다. 그는 “일상이 곧 예술이다. 반예술이 예술을 만든다.”라는 말로 반예술의 가치를 강조한다. 특히 그는 「꽃, 숲」(위 사진)이라는 작품에서 버려진 물건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역할을 다한 청소 솔, 플라스틱 바구니 등의 물건이 모여 작품 속 탑을 이룬다. 작가가 여러 곳에서 직접 수집해온 물건이다. 수직으로 세워진 탑은 총 146개가 모여 하나의 숲을 이룬다. 일상에서는 쓰레기에 불과한 물건이 최정화 작가의 의미 부여로 인해 ‘꽃 숲’으로 거듭난다. 이처럼 반예술의 세계에서는 일상 속 소재가 모두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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