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와 심리적 지원이 발맞춰

출산장려와 건강권의 큰 그림 그린다

우리나라 부부 7쌍 중 1쌍. 난임은 더 이상 소수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10년 이후 해마다 20만 명 이상이 난임 진단을 받는다고 추정될 정도로 난임은 사회적인 문제다. 정부는 2017년 10월이후 난임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했다. 올해부터는 난임 치료 지원 대상과 지원 범위를 확대하기도 했다. 늘어난 지원은 고무적이지만 실효성 있는 정책이 실행되려면 난임 부부를 향한 진지한 공감과 정책적 개선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난임 시술은 물론 난임으로 고통받는 마음을 보듬어줄 심리적 지원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난임 정책의 개선 방향을 짚어보고 난임 정책을 넘어 우리 사회의 정신 및 출산건강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살펴봤다.

  경제적 부담은 줄이고 새로운 제도는 만들고

  올해 난임 지원정책 예산은 총 184억 원으로 지난해 대비 약 137억 원 확대됐다. 지원 대상의 범위나 시술 항목 및 시술 지원 횟수 등도 개선됐다. 그러나 추가적인 지원이 결정됐음에도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심각한 저출산 및 고령화 현상의 대책으로 미흡할 뿐더러 국민의 요구에도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창우 과장(서울마리아병원)은 실질적인 난임 정책을 위해 ‘본인 부담금 경감’이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보험 급여 난임 시술을 할 때 본인 부담금 비율이 30%에 해당해요. 이보다 환자가 부담하는 금액을 더 낮춰야 하죠. 비용 부담을 줄여 난임 부부를 정서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어요.” 그는 암과 중증 질환을 포함한 다양한 진료에서 본인 부담금 비율이 0~10%인 점을 참작했을 때 난임 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의 신체적 특성에 따라 지원되는 시술의 모든 횟수를 이용할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주창우 과장은 난임 증세가 심각할수록 가능한 시술이 ‘신선배아’에 국한된다고 짚었다. 그러나 신선배아 시술 지원은 4회에 불과하다. “보험급여기준 완화시 시술 횟수 제한도 완화도 기대할 수 있어요. 시술 횟수 완화가 어렵다면 환자가 자율적으로 지원금을 사용하는 ‘바우처 제도’를 마련할 수 있죠.” 여기서 바우처 제도는 일정 금액의 바우처를 난임 환자에게 지원해 어떤 시술에 지원금액을 사용할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제도를 뜻한다. 그는 현재 임산부를 위한 지원금 제도가 바우처 제도로 운영되고 있으므로 이에 덧붙이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령 및 중증 난임 환자를 위한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주창우 과장은 기대 임신율이 낮은 환자를 위해서는 난임 치료 시술을 반복하기보다 ‘공공 난자은행’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공공 난자은행을 통해 난임 환자들이 난자공여와 입양까지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세계적 추세에요. 현재로서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기 어렵더라도 공공차원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정비해야 하죠.” 또한 그는 난자은행을 통해 난자 동결보존이 이뤄지면 가임력 보존 및 난임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난임으로 깊어진 상처를 보듬어야

  난임 환자는 난임 경험으로 상실감과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 나아가 부모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인천 권역 난임·우울증상담센터 조서은 부센터장은 난임 여성의 우울감이 일반인의 4배 이상 높기 때문에 심리적 지원과 치료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역시 난임 환자의 심리적 지원을 위해 지난해부터 중앙과 권역에 난임·우울증상담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홍보가 부족해 센터에 찾아와 도움을 받는 난임 환자가 적다고 말한다. “난임 환자 수에 비해 센터에 방문하는 분은 적어요. 안전하게 심리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인식 개선과 홍보가 필요한 상황이죠. 더 많은 난임 부부들이 난임 상담 서비스를 인식하고 충분히 활용해야 관련 상담센터도 더 늘어날 거예요.”

  난임 부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면 신체적 치료와 심리적 치료가 발맞춰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조서은 부센터장은 의료 지원과 심리적 지원이 통합된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 각자의 필요에 맞춰 심리치료도 함께 이뤄져야 해요. 적절한 심리적·사회적 지원은 부모와 자식의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국민의 정신건강에도 긍정적이죠.” 또한 그는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을 향한 사회적 편견도 지적했다. 난임 부부가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우울증을 둘러싼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호주는 난임 환자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효과적인 난임 상담 서비스가 갖춰져 있다. 특히 빅토리아주에서는 난임 시술을 하기 전 난임 부부의 상담이 법으로 의무화돼 있다. 또한 많은 난임 시술병원에서는 난임 치료 전반 동안 자유롭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영국에서는 지난1990년대 이후부터 난임 환자의 스트레스를 중요하게 여기고 심리 상담을 권고하고 있다. 조서은 부센터장은 난임 환자를 위한 심리적 지원의 방향성에 대해 언급했다. “해외 사례처럼 난임 환자를 위해 더 필수적인 심리적·사회적 지지가 이뤄져야 해요. 하지만 난임 환자에게 강압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세심한 접근이 가장 중요하죠.”

  난임과 출산 정책의 밑거름은

  한편 난임 정책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상림 연구위원은 모든 연령대에서 난임 비율이 증가하며 저체중아, 조산아를 출산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모든 연령대의 산모에게서 난임과 이상 출산이 나타나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즉 여성의 생식건강이 나빠지고 있는 상황인 거죠.” 이상림 연구위원은 청소년기부터 여성의 생식건강, 출산건강관리에 대한 예방적 접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도 막중하지만 국민 건강권과 여성의 생식건강이 존중받으려면 보건 당국과 지역 사회, 학교와 개인이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하죠.” 그는 모든 생식건강 문제를 ‘보건 당국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지역 사회와 개인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난임 시술 지원 및 다양한 정책 강화는 바람직한 진보로 여겨진다. 그러나 난임 부부의 경제적인 부담을 최소화하고 난자은행과 같이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등 아직 갈 길이 멀다. 든든한 버팀목이 마련될 수 있도록 의자를 박차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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