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일 중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며 무심하게 지나쳤던 경험이 있나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공감을 필요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이번학기 기획부는 와 닿지 않았던 누군가의 일상을 생각하기 위한 작은 공간, ‘생각의자’를 마련했습니다. 생각의자의 네 번째 주인은 ‘난임 부부’인데요. 난임 지원 정책은 꾸준히 개선중이지만 실감하기엔 여전히 부족합니다. 아이를 갖기 위해 무거운 부담을 떠안아야 했던 난임 부부의 의자에 앉아 생각해봤습니다.

 

 

지원 장벽 앞

커져가는 부담

 

아이를 원하는

그들의 한숨

0.95, 1도 안 되는 이 수치는 지난해 국내 3분기 합계 출산율이다. OECD 회원국 중 사상 최초로 ‘0명대’ 출산율을 기록한 한국에서 저출산은 이미 심각한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출산장려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출산장려정책의 수립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들이 존재한다. 바로 난임 부부다. 지속적인 정부의 난임 부부 지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건강보험 및 지원 혜택에 횟수와 나이가 제한돼 있고 상담과 같은 심리 지원 측면도 미비한 수준이다. 현실 속 난임 부부는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난임으로 고충을 겪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그림 구순모 학생

 

  규격화된 지원, 여전한 금액부담
  지난 2017년 10월부터 일부 난임 치료 시술은 건강보험료 급여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 보조생식술 시술 행위 및 약제(건강보험 적용항목)에 본인부담률 30%가 적용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보조생식술 시술 행위는 대상자가 나이, 소득 등 특정 기준을 초과할 시 건강보험 비급여로 처리돼 혜택을 적용받기 어렵다. 기준에 맞아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더라도 여전히 금액이 높은 편이다. 김유진씨(35)는 난임 치료 과정 중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금전적 부담을 짚었다. “제가 번 돈은 거의 병원비로 사용했어요. 회사 생활과 난임 치료를 병행하기 위해 근무 시간대를 바꿔가며 일했죠.” 그는 시험관 시술을 위해 신선배아 이식과 동결배아 이식으로 약 300만원을 지출했다고 말했다.

  A씨(34)역시 경제적 부담이 가장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는 난자를 채취하기 전 약 난임 원인 파악을 위한 초음파 검사를 시행했다. “한번 초음파 검사를 받을 때마다 5만원 정도 비용이 들었어요. 약 20만원을 들인 초음파 검사가 끝나면 이후 난임 치료에 필요한 주사를 맞을 때 약 100만원 정도 추가 금액이 들죠.” 이후 그는 시험관 시술을 10회 가량 시행했지만 착상이 되지 않아 다양한 약도 사용했다. 그러나 사용한 약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가격 부담이 더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보험 지원이 되지 않는 주사를 맞을 때도 있었어요. 사용량을 줄였지만 그마저도 170만원 가까이 나왔죠.” 

  정해진 횟수 내에서는 난임 시술에 따른 정부 지원으로 혜택을 받는 게 가능하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정부의 난임 정책 개정안은 신선배아 최대 4회, 동결배아 최대 3회, 인공수정 최대 3회로 수정 방식에 따라 횟수가 정해져 있다. 신선배아와 동결배아 시술은 흔히 ‘시험관 시술’로 알려진 체외수정에 해당한다. 이는 지난해 난임 시술 지원을 신선배아 최대 4회 지원에만 한정했던 사실에 비하면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지원 횟수가 지난해에 비해 확대됐음에도 실질적인 도움은 여전히 부족하다. 시술 대상자의 신체 조건에 따라 동결배아나 인공수정 시술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A씨는 난임 시술 지원 정책이 사람마다 다른 신체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체적 조건 때문에 시험관 시술만 가능했어요. 그중에서도 난소기능저하 증상 때문에 동결배아 시술은 할 수 없었죠. 사람마다 신체 상태가 다른데 난임 정책은 지원 횟수를 일괄적으로 정해두고 있어요.” 그는 제한된 횟수 내에 임신이 되지 않으면 경제적 부담은 물론 심리적 부담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B씨(42)는 지인으로부터 ‘정부에서 열번이나 지원해주는데 그 정도면 충분치 않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최대 열번 시도할 수 있는 난임 시술 지원은 모두에게 해당하는 혜택이 아니에요. 인공 수정과 동결 배아 지원의 경우 대상자에 따라 지원이 불가능할 수도 있거든요.” B씨는 인공수정이나 동결배아 시술을 할 수 없는 대상에게 신선배아 시술 횟수를 늘릴 수 있도록 정책이 설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이와 직장이 족쇄가 되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 될까봐 걱정돼요.” 난임 부부의 고민 요소 중 하나는 ‘나이’다. 성별을 불문하고 나이가 들수록 임신 성공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현재 국가에서 정한 여성의 지원 대상 연령은 만 44세다. 해당 나이를 곧 초과하게 되는 B씨는 날마다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40세에 결혼을 해 3년째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고 있다. “난임 시술은 받고 싶을 때 무조건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혹여 신체에 변수가 발생할 때는 의도치않게 휴식기를 가져야 하는 경우도 있죠. 휴식기가 한달이 될지 1년이 될지는 예측하기 힘들어요.” B씨의 말대로 곧 지원가능 연령을 초과하는 시술 대상자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시술과 휴식기를 반복하며 몇년을 보내고 나면 나이로 인해 지원 대상자에서 탈락하기 십상인 탓이다.

  지난해 통계청 인구동향조사 자료에 따르면 평균 초혼 연령은 최근 10년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A씨는 초혼 연령의 상승 현상에 비해 난임 정책이 지원하는 여성의 연령 기준이 낮다고 지적했다. “최근 우리나라는 결혼을 늦게 하는 추세예요. 이런 상황에서 지원 연령을 만 44세로 제한하는 건 출산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아요.” C씨(35)는 경제적 합리성에만 초점을 맞춘 예산 편성이 나이든 난임 부부의 시술을 포기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만 44세가 넘은 여성도 폐경이 오기 전까지는 임신이 가능해요. 국가에서 효율적으로 예산을 사용하려 제한을 둔 건 이해하지만 난임 시술을 너무 경제적 측면만 고려하는 것 같아요.”

  직장을 다니는 난임 여성의 경우 경제 활동 지속에도 큰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B씨는 과배란 약물의 부작용을 겪으며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무기력증은 물론이고 호흡곤란과 불면증도 겪었어요. 경제적 부담 때문에 일을 해야 했는데 시술과 병행하느라 직장에 눈치도 보였죠.” 그는 시술을 받기 위해 주 2회에서 3회 가량 늦은 출근을 하거나 반차를 냈다. 난자 채취 후에는 최소 3~4일 가량의 안정을 취해야 했기 때문에 휴가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근무하는 직장에 피해를 준다는 생각이 스트레스가 됐어요. 또한 시술로 인한 신체적 변화를 감내하면서는 직장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었죠.” 결국 그는 직장을 그만뒀고 더 이상 경제활동을 지속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장 무겁게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걱정은 태산, 털어놓을 곳은 먼 산
  임신 성공의 불확실성은 난임 부부가 갖는 대표적 불안 요소다. 난임 시술 이후 반드시 착상이 이뤄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운 좋게 착상이 되더라도 유산을 하는 등 실패하는 경우가 잦다. 이처럼 실패를 반복하는 난임 부부는 심리적 고통을 겪게 된다. 정부는 지난해 설치된 난임·우울증상담센터 4개소를 중심으로 난임 부부의 정신건강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를 체감하는 이는 드물었다. “총 열번의 시험관 시술 중 임신에 성공한 건 두번이었어요. 시술 실패에 관해 상담이나 심리적 지원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네요.” A씨는 유산으로 인한 후유증을 견디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김유진씨 역시 해당 심리적 지원 정책의 존재를 몰랐다. “국가에서 난임과 관련된 상담을 돕는지 몰랐어요. 병원비를 부담하려 일에 집중하느라 그런 상담소를 찾아다닐 여유도 없고요.” 난임·우울증상담센터 4개소는 국립중앙의료원(중앙 1개소), 인천광역시, 대구광역시, 전라남도(권역 3개소)에 설치돼있다. 그러나 해당 지역에 거주하지 않거나 생업에 바쁜 난임 부부는 현실적으로 상담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C씨는 난임 시술이나 치료에 실패했을 때 국가 지원으로 이뤄지는 상담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스트레스가 난임의 큰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국가에서 몇 차례 정도 상담 프로그램 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난임 부부를 위해 국가에서 지원하는 상담 프로그램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다는 의미다.

  난임 시술을 진행하는 일반 병원에도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긴 하다. 하지만 상담 지원이 필요한 난임 부부 수에 비해 모집 대상자는 부족하다. B씨는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신청했지만 번번이 대상자에 들지 못했다. “난임 치료를 위해 다니던 병원에 2회 가량 상담 프로그램을 신청했어요. 하지만 최대 인원이 10명이라 인원 제한에 걸렸죠. 모집 인원이 금방 차는 바람에 상담을 받을 수 없었어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난임 부부를 위한 지원 혜택은 다양한 방면에서 확대되는 추세다. 그러나 개선된 정책조차 실질적으로 난임 부부가 겪는 고통의 크기를 감당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금전적, 신체적 부담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마저도 지원받기 어려운 난임 부부. 더 나은 지원책이 나오고 있지만 실상 그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난임 시술 지원은 크게 ‘체외수정’과 ‘인공수정(체내수정)' 시술을 대상으로 한다. 체외수정 중 ‘신선배아’ 시술은 난소에 인위적으로 과배란 주사를 놓고 배란 날짜에 맞춰 여러 개의 난자를 채취한 후 미리 채취해둔 정자와 수정시켜 다시 자궁에 이식하는 방식이다. ‘동결배아’ 시술은 ‘신선배아’ 과정에서 채취된 난자와 정자의 수정란 중 건강한 배아를 동결시켜 보관해뒀다가 다음 시술 때 다시 자궁에 이식시키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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