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21일, 나는 미국 플로리다주 탈라하시(Tallahassee)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한 대학교 기숙사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나를 처음 반겨주는 것은 지은 지 40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의 눅눅하고 퀴퀴한 페인트 냄새였다.

  그날 저녁, 나는 난생처음 끓여본 짜디짠 미역국에 밥을 먹고 새벽까지 눈에 안 들어오는 영어 논문을 읽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문밖으로 나왔다. 멀리서 가끔 들려오는 흑인들의 음악 소리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고요한 미국 남부 시골의 밤하늘은 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문득 깨달았다. 정말 여긴 미국이구나. 그렇게 나의 유학 생활은 시작되었다.

  졸업 후 군 복무를 끝낸 직후 당차게 나온 유학이었다. 그러나 유학 생활은 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토론으로 진행되는 박사 세미나 수업은 말 많은 미국 학생들의 전유물이었고, ‘Candidate’을 ‘Canada’로 알아듣고 ‘soup or salad?’를 ‘super salad?’로 알아들었던 당시의 나로서는 입 한 번 열기가 어려웠다.

  자의 반 타의 반 나는 그렇게 모든 질문에 미소로 화답하는 미소 천사가 돼가고 있었으며, 박사 2년 차가 끝나갈 무렵, 학과 내에서 나에 대한 평가는 한국에서 온 눈에 띄지 않는 학생 정도였다. 처음 유학 올 때의 패기는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런 나를 변화 시켜 준 것은 어떤 교수님의 칭찬이었다. 박사 3년 차에 나는 지금의 은사님인 데일 스미스(Dale Smith) 교수님의 수업을 수강하였다.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 날, 교수님은 나에게 미국에서도 학자로 성공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칭찬, 지나가는 말일 수도 있었던 그 칭찬은 나를 여러 모로 변화시켰다. 나도 모르게 위축돼 있었던 자존감이 많이 회복 됐고, 매사에 더 자신감을 갖고 참여하기 시작했다.

  언어적인 두려움이 없진 않았으나, 나는 학부 강의를 하고 싶다고 학과에 요청했고, 그 다음 해부터 생애 첫 단독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스미스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삼아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졸업 전 두어 편의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였고, 졸업과 동시에 세계적인 연구대학인 호주국립대학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2019년 QS 랭킹 세계 24위)에 교수로 임용될 수 있었다. 

  모든 일에 다 잘하는 사람은 없다. 각자가 잘하는 것, 그렇지 못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당시의 나는 여전히 부족했고, 언어적으로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사님은 내가 잘 하는 부분에 집중하셨고, 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으며,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셨다.

  많은 사람이 칭찬의 힘에 관해서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 식상한 이야기를 여기서 반복하는 건 내가 몸소 경험하였고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작은 칭찬과 격려가 다른 사람의 삶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어렵지 않다.

문충식

정치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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