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혁신의 물결이 온 지구를 뒤덮고 있다. 도서관도 예외는 아니어서 전자책과 전자저널의 구독예산은 이미 인쇄자료보다 월등히 많다. 그렇지만 책은 아직도 중요한 기본자산이다. 기본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사랑받는 날에는’이라는 마저리 윌리암스의 짧은 시집같은 이야기책이 있다. 원제목은 ‘THE Velveteen Rabbit’이다. ‘HOW TOYS BECOME REAL’라는 또 다른 제목도 갖고 있다. 분량은 아주 짧아서 성질 급한 독자라면 5분 안에도 읽을 수 있다. 독서를 취미로 하지 않는 사람도 이 책에 대해 들어보았거나 이미 읽어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 책을 최고로 꼽는 이유는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문장의 수려함 때문이다. 이 책은 대학 2학년 때 여자 친구에게 백일기념으로 선물받아 처음 읽어보았다. 사랑이 뭔지 잘 모르던 시절에 사랑에 대해 알려준 책이다.

  소설에서 장난감 토끼는 자기를 너무나 사랑해주는 소년 덕분에 본인이 진짜 살아있는 토끼라 착각한다. 토끼는 소년과의 사랑이 행복하고 영원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멋지고 새로운 장난감의 등장, 시간이 흐를수록 털이 빠지고 지저분해지는 주인공 토끼는 소년의 관심과 사랑에서 멀어진다.

  외로워하던 토끼에게 장난감 말이 진짜의 의미와 사랑에 관해 말한다. “누군가에게 진짜가 된다는 것은 오랫동안 상대방에게 사랑을 받을 때 일어나는 일이야. 너를 갖고 노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끊임없이 사랑을 할 때 진짜가 되는 거야.” 이 말을 듣던 토끼가 묻는다. “진짜가 된다는 것은 아픈 거야?” 장난감은 “때로는 아플 거야. 그렇지만 진짜 사랑을 한다면 그 아픔은 문제가 되지 않아.”라고 담담히 설명한다.

  누구나 다 알고 있고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말일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일생의 문장이다. 사랑은 진짜일 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사랑은 달콤하지만 않다는 것. 아프고 힘들고 외로운 것이라는 것. 그렇지만 사랑한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문제가 아니라는 것. 이 책을 통해서 여자 친구가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철없는 나를 진짜로 대해주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하는 요즘, 사랑을 가득담은 이모티콘을 비롯하여 연인끼리 주고받는 디지털 공간의 선물이 넘쳐흐른다. 미세먼지가 전국을 뿌옇게 뒤덮고 있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봄이 되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기본은 변함이 없다.

  이 봄에 사랑하는 이에게 작지만 만져지는 아날로그 책을 사서 손 글씨로 나의 이름과 진심을 담은 메모를 적어 선물하면 어떨까. 내가 진짜가 되는 순간이 아닐까? 내 연인을 진짜로 만드는 순간이 아닐까? 혹은 오늘 도서관에 같이 가서 둘이 이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이 책을 선물한 대학 2학년 때 나의 여자 친구는 지금 평생을 나와 같이 살고 있다. 진짜 배우자로.

남영준 교수

문헌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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