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에 쫓기던 패션계에
느림의 미학 내려앉다

내일을 위한 의류 자원 순환
공존 가치 같이하는 슬로패션

지난해 한국패션협회가 선정한 ‘2018년 패션산업 10대 뉴스’ 중 하나로 ‘지속가능한 패션’이 선정됐다. 최근 환경오염과 노동윤리 문제의 주범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의 대안으로 패션 시장에 ‘지속가능성’이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특히 청년층 사이에서 지속가능한 패션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은 사실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어떤 소비자는 옷 한벌을 만드는 데 환경에 유해한 합성섬유가 사용되지 않았는지 살핀다. 제3세계 노동자를 착취하지는 않았는지 꼼꼼하게 따져보고 의류를 구매하는 소비자도 점차 늘고 있다. 이러한 의류 소비 방식의 변화는 윤리적 소비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 작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이끄는 ‘지속가능한’ 움직임이 패스트패션의 대안으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전문가와 알아봤다.

 패션계에 스며든 공존의 가치

 지난 몇 년간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며 윤리적 소비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비교적 제품 생산 주기가 짧은 패스트패션 기업 역시 환경 보전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소진 교수(경희대 의상학과)는 소비자의 사회적 요구에 맞춰 패션 산업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패스트패션 수익구조가 근본적으로 지속가능성과 상충하는 지점이 있어요. 그런데 지속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요구가 늘다 보니 패스트 패션 업계에서도 다른 방법으로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려 하죠.”

 정소진 교수는 글로벌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브랜드 ‘H&M’에서 진행하는 헌 옷 수거 캠페인을 예로 들었다. “H&M 매장에 헌 옷을 가져가면 의류 구매 시 할인권을 증정하는 행사가 있어요.” 의류 제조 회사가 직접 헌 옷을 수거함으로써 패션 업계의 지속가능한 미래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H&M은 사회적 흐름에 발맞추려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2030년 안으로 모든 의류 제조 공정에 재활용 혹은 지속가능한 소재를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2040년에 이르러서는 전체 가치사슬을 기후 친화적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지난해 11월 친환경 패션 브랜드를 알리는 ‘에코 패션 페어’를 개최했다. 이 행사에서는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의류를 포함해 업사이클링 패션 상품 등이 소개됐다. “행사가 갖는 취지가 긍정적인 만큼 소비자의 관심을 어떻게 끌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해요. 아무리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도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없다면 관심이 떨어질 수 있죠.” 정소진 교수는 사회적 문제와 소비자 관심이 연관된 정도에 따라 행사 취지에 맞는 효과에도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버려진 옷마다 꽃이 피었다

 환경 친화적인 의류를 만드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사실이 있다. 버려진 패스트패션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 많던 의류폐기물은 어떻게 규제되고 있을까. 환경부 자원재활용과 김승주 공업사무관은 제조공정에서 배출된 폐기물은 배출자 책임이라고 설명했다. “패션 사업체 공장에서 나오는 폐기물의 경우 폐기물 배출자인 사업자가 폐기물에 책임을 지도록 규정돼 있어요.” 그러나 소비된 이후 발생하는 의류 폐기물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제 정책이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또한 소비자가 버린 의류 폐기물에 대한 부담금 역시 부과되지 않고 있다. 현재 의류 폐기물은 생활폐기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제도적 한계를 보완할 방법으로 시민의식 함양교육을 제시한다.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인식 교육은 환경문제를 향한 경각심을 높이고 책임 있는 시민의식을 갖추도록 기여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폐기물 배출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특별시의 경우 지난 2017년부터 ‘서울새활용플라자(새활용플라자)’를 운영하며 자원 순환에 대한 시민 인식 제고에 힘쓰고 있다. 특히 자원 순환이 가진 가치를 알리는 새활용 교육 프로그램 ‘새활용 아카데미’에는 아름다운가게와 연계한 교육 테마도 있다. 폐의류를 활용한 업사이클링 과정을 시민이 직접 체험하며 폐자원이 새로운 가치를 얻는 흐름을 배울 수 있다. 업사이클링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폐의류는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활용한다. 박자일 책임은 폐기물이 새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발돋움하는 전 과정을 설명했다. “새활용플라자에는 ‘재사용작업장’과 ‘소재은행’이라는 공간이 있어요. 서울시에서 발생한 폐기물 중 새활용이 가능한 소재를 분류하죠. 분류된 소재는 세척·재단·규격화 과정을 거쳐 업사이클링 기업이나 디자이너들이 필요로 하는 자투리 원단으로 공급돼요.”

 새활용플라자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도입한 이유는 ‘소비자 인식의 전환’에 있다고 박자일 책임은 설명한다. “단순히 재활용 방법을 알리는 교육은 폐기물 배출에 있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죠. 하지만 체험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폐기물을 새로운 자원으로 보는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요.” 그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민의 연령층도 유아부터 장년층까지 다양하다고 덧붙였다. 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참여의 장은 적극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선택은 변화를 만든다

 패스트패션의 유행을 밀어낼 새로운 패션 트렌드도 존재한다. 윤리적 소비와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모두 포괄한 슬로패션(Slow fashion)이다. 슬로패션은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측면에서 패스트패션과 대비된다. 의류 생산부터 구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환경 문제를 일으키는 요소가 없고 노동자 인권을 보호해 윤리적 차원에서도 패스트패션의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A교수(연세대 의류환경학과)는 슬로패션의 가공과정이 가진 긍정적 의의를 설명했다. “슬로패션은 패스트패션과 다르게 염색과 가공 과정을 최소화하려 노력해요.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는 방향으로요.” 그는 의류 제조 과정에서 버려지는 원단을 줄이는 방법도 슬로패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원단 낭비를 최소화하는 ‘제로 웨이스트’ 디자인을 활용하기도 하죠.”

 A교수는 환경오염 문제를 막고 지속가능성을 수호하기 위해 소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구매와 사용, 폐기 등 의류 유통의 전 과정에서 소비자의 신중한 고민이 습관화된다면 환경오염 문제를 늦출 수 있어요. 특히 제품의 생명주기를 연장하는 게 중요하죠.” 또한 그는 유년기에 굳어진 소비 습관이 성인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패스트패션의 문제가 무엇인지 지적하는 점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소비자의 의식 전환이에요. 교육이 일종의 방법이 될 수 있죠.”

 그는 소비자가 옷을 구매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을 당부하기도 했다. 우선 소비자는 스스로 구매하고자 하는 의류가 ‘정말’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 소비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과시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되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는 과정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충분한 고민을 거쳐 구매한 옷은 되도록 오래 입고 옷의 가치가 남아있지만 더는 입고 싶지 않은 경우 기부하는 방법도 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소비 습관이 패스트패션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계절이 지나면 입을 옷이 없다던 당신에게 묻는다. 유행에 따른 싫증과 환경에 미칠 해악의 무게가 동등하단 사실은 알고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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