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패스트패션 소비로
눈물 흘리는 존재들

유행이 빠르게 바뀔수록
빠르게 쌓이는 문제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은 유행을 빠르게 반영하고 공급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는 의류다. 지난 2000년대 중반 유럽에서 처음 등장한 패스트패션은 이후 미국과 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됐다. 패스트패션의 성장요인이기도 한 저렴한 가격과 유행에 맞는 디자인 이면으로 패스트패션의 단점도 서서히 커지고 있다. 패스트패션의 핵심 문제는 옷을 대량 소비하는 문화를 조성해 의류 생산 및 유통과 관련된 문제를 가중한다는 점이다. 환경과 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친 패스트패션. 급변하는 유행에 따라 의류가 생산되고 소비자의 품에서 버려지기까지 패스트패션의 ‘일생’이 낳는 문제점을 자세히 살펴봤다.

  “유행이 바뀔 때마다 옷을 산다고요?”

  의류는 섬유에서 실을 뽑아 제직, 편직 및 염색 가공 등 여러 공정을 거친다. 이 때문에 의류의 품질은 원료 자체의 품질뿐만 아니라 공정 과정 전체에 달려있다. 패스트패션의 매력은 유행하는 옷을 빠르게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빠른 시장 출시를 중시하는 패스트 패션은 의류 내구성과 안전성을 포함한 품질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오경화 교수(패션전공)는 패스트패션이 직물 제조 및 염색 단가가 낮은 업체에서 생산돼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몇몇 패스트패션 브랜드는 자체 소재 개발과 품질관리에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나 대부분이 가격경쟁력 때문에 제조 단가와 노동 임금이 낮은 업체에 위탁해 의류를 생산하죠.” 그는 의류가 대량으로 제조되는 과정에서 불량제품이 발생하고 이는 착용 시 의류의 뒤틀림이나 파손으로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패스트패션은 빠른 시일 내 의류를 출시하기 위해 일반 패션 의류보다 짧은 리드 타임(lead time)을 거친다. 리드 타임이란 제품 디자인부터 판매과정까지 소요 되는 시간을 말한다. 일반 패션 의류의 리드 타임은 평균 3개월이지만 패스트 패션의 리드 타임은 평균 5주로 약 2개월 정도 차이가 있다. 지수현 교수(원광디지털대 한국복식과학학과)는 패스트패션이 트렌드만을 중시해 지속 가능한 내구성과 신체 안전성에서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리드타임 동안 공산품이 지켜야 할 표준검사를 거친 의류는 소재의 물성에 대한 테스트가 완료된 제품이죠. 그러나 패스트패션 의류는 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완성된 제품에 대한 물성 검사와 안전성 검사가 부족할 수 있어요.”

  “빠르게 제조되고 유통되려면…”

  보통 1~2주 내로 신상품을 공급하는 패스트패션은 환경문제를 가속한다. 의류를 제조하려면 석유와 면화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원 소비 문제와도 직결된다. 김양지 교수(다빈치교양대학)는 의류 제조 과정에서 물을 포함한 자원이 고갈되고 유해물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짚었다. “빠르게 유통되는 패스트패션의 흐름에 따라 물을 포함한 다양한 자원이 급격하게 소비되고 있죠. 의류 염색 과정에서 나타나는 유해물질도 환경 문제의 주범이 될 수 있어요.” 그는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을 정화하지 않고 방류하면 토양과 수질이 오염돼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패스트패션은 노동 윤리가 존중받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지난 2013년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건물 붕괴 사고는 많은 이들에게 패스트패션의 윤리적 문제점을 인식시켰다. 무허가로 증축된 공장건물에 유명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생산 공장이 입주해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개발도상국 의류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 환경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늘어나는 의류 공급량을 맞추려 개발도상국 저임금 노동자인 여성과 아동의 노동이 따랐던 점도 문제가 됐다. 오경화 교수는 의류 제조 과정이 노동 집약적 산업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원인을 짚었다. “빠른 유행 주기에 맞춰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저임금, 초과 근무, 열악한 작업 환경 등 노동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에요.”

  “과연 가성비만 중요할까요?”

  패스트패션은 저렴한 가격으로 옷을 구매할 수 있어 특히 사랑받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원가 절감을 위해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터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수현 교수는 플라스틱과 같은 화합물인 폴리에스터로 만든 의류가 인체에 미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폴리에스터 함량이 100%인 의류가 인체에 닿았을 때 그 부위는 원활한 피부 호흡과 수분 흡수가 이뤄지지 않아요. 오염된 섬유구조 위에 재오염이 일어나기 쉬운 만큼 건강에도 좋지 않죠.” 그는 패스트 패션의 주요 타깃이 젊은 연령층이기에 성장기 청소년의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패스트패션의 소재로 인한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소비자가 세탁하는 옷에 합성섬유 소재가 많이 포함될수록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심해진다. 일반적으로 옷 한 벌을 세탁할 때 미세 플라스틱 성분과 비슷한 미세섬유 가닥이 70만개 이상 방출된다. 김양지 교수는 하수 처리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이 곧바로 하천과 바다에 유입된다고 설명했다. “하천과 바다 생물의 몸속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된 것은 충분히 확인된 사실이죠. 사람도 먹이사슬에 따라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게 될 수 있어요.” 그는 패스트패션 의류에서 나온 미세 플라스틱 섭취가 인체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에 대해 우려했다.

  “쉽게 샀으니 버려도 아깝지 않나요?”

  쉽고 저렴하게 구매해 쉽게 버려지는 패스트패션은 의류 폐기물 신세가 된다. 김양지 교수는 재활용되지 않은 의류 폐기물이 소각 혹은 매립될 때 나타나는 문제를 지적했다. “의류 폐기물을 소각하면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유해물질이 발생해요. 특히 합성섬유를 태울 때 다이옥신 같은 발암물질이 나올 수 있죠. 합성섬유로 이뤄진 의류 폐기물을 매립하는 경우에도 쉽게 분해되지 않아 생태계에 영향을 줘요.” 적절한 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은 합성섬유를 매립하면 자연 분해과정이 오래 걸리고 이산화탄소와 독성 물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패스트패션 소비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유행에 맞는 의류를 구매하고 금세 시들해져 버린다.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한 패스트패션은 결국 지구촌 이웃과 생태계에 무거운 뒷감당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정신없이 변하는 패스트패션의 흐름 속 잠시 멈춰 공존을 향한 ‘윤리적 소비’에 대해 고민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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