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으로 문화를 보여준 에르제
  • 김서현 기자
  • 승인 2019.03.18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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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줘서 고마워 땡땡 : 에르제 展

‘좋은 전시, 열어줘서 고맙습니다.’ 여러분도 일상 속 사소함에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지 않나요? 느지막이 일어난 주말 아침이 주는 여유. 때마침 정류장에 진입하는 버스를 볼 때 안도감. 우리가 느끼는 일상 속 고마움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주변의 크고 작은 전시회에서도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죠. 이번 주 중대신문은 유럽을 대표하는 만화 캐릭터 '땡땡'을 다룬 <에르제: 땡땡>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고마움 가득했던 전시를 둘러본 기자가 전하는 생생한 후기, 지금 시작합니다. 

한국에 ‘둘리’, 미국에 ‘미키마우스’가 있다면 벨기에엔 ‘땡땡(TinTin)’이 있다. <에르제 : 땡땡> 전시회는 땡땡 탄생 90주년을 맞이해 작가 에르제(Hergé)와 그가 그린 벨기에 대표 캐릭터 땡땡을 다룬다. 땡땡은 세계 곳곳을 모험하는 소년기자 캐릭터다. 그의 모험을 다룬 ‘땡땡의 모험’ 시리즈는 ‘세계 문화의 백과사전’이라 불린다. 전시회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다음달 1일까지 진행된다. 에르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국민 캐릭터 땡땡을 만들었는지 알아봤다.

  만화도 어엿한 표현수단이다

  “만화, 그거 어린 애들이 보는 거 아닌가?” 오락성이 짙은 만화를 두고 자주 들리는 말이다. 에르제는 어린이에 집중된 만화의 주요 소비층을 넓히고자 한 인물이다. 그는 만화라는 장르를 둘러싼 인식 개선을 바라며 ‘땡땡의 모험’을 제작했다. 해당 만화는 이후 성인에게도 사랑받는 만화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969년 에르제는 만화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을 전한 바 있다. “만화가 어린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딱지를 벗기고 싶다. 2000년에는 만화도 온전한 표현수단으로 인정되기를 바란다.”

  예술 애호가 에르제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벨기에에 있는 에르제 박물관을 본뜬 복도가 보인다. 이곳을 지나면 그가 직접 그린 회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에르제는 만화뿐 아니라 회화나 광고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아티스트다. 그는 많은 현대 미술 작가와 소통했다.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에르제의 작품에 감명받은 앤디 워홀은 “땡땡의 모험은 나의 작품세계에 있어 디즈니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가 에르제를 위해 그린 그림 「에르제」가 둘의 친밀한 관계를 뒷받침해준다. 

  이미지를 쓰는 소설가

  에르제가 만화를 그리는 과정을 옮겨놓은 공간도 있다. ‘이미지를 쓰는 소설가’라는 소개 글도 보인다. 작품 활동 초기 ‘Le Petit Vingtième(20세기 소년)’라는 신문사에서 일했던 그는 산문에 익숙했다. 에르제는 소설가가 사용하는 방법을 변모시켜 제작과정에 반영했다. 특정 인물에게 결정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타 시리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텍스트 장치를 마련하는 방식이다. 이에 영화적인 기법까지 더하며 에르제는 뚜렷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형성했다. 그는 특히 1930년대 영화 촬영기법도 반영했다. 영화 ‘39계단’을 본떠 안개 낀 풍경을 묘사했고 영화 ‘킹콩’을 참고해 고릴라 움직임을 그렸다.

  ‘클리어 라인(ligne claire)’이라는 독창적인 드로잉 기법도 개발했다. 이는 하나의 검은 윤곽선을 사용해 또렷하게 그리는 기법이다. 정진재 도슨트는 해당 기법이 당시 여러 선을 겹쳐 그린 유럽만화 기본 드로잉 방식과 차이를 지닌다고 말한다. “선을 겹쳐 그리는 기법은 감정을 전달하는 데 유리한 반면 클리어 라인은 정보를 전달하는 데 좋습니다. 그래서 사실적인 에르제의 만화에는 주로 클리어 라인 기법이 사용됐죠.”   
   
 

  세계를 누비는 땡땡

  ‘땡땡의 모험’ 50여권을 모아놓은 큰 벽이 눈에 들어온다. ‘땡땡의 모험’ 시리즈에서 소년기자 땡땡은 미국, 시드니, 티베트 등 다양한 장소를 뛰어다닌다. 자비에리오데 교수(프랑스어문학 전공)는 ‘땡땡의 모험’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한 순간이 생생히 떠오른다고 전한다. “벨기에 만화지만 프랑스에서 ‘땡땡의 모험’은 기본 서적이라 할 수 있어요. 땡땡을 통해 다른 먼 나라를 체험하는 듯한 느낌이 좋았죠.” 

  시리즈 중에서 특히 주목할 작품은 ‘달나라에 간 땡땡’이다. 인류가 달에 처음 착륙하기 무려 16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전시된 장면을 찬찬히 뜯어보면 에르제가 작품을 위해 우주 공간에 관한 연구를 얼마나 치열하게 진행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달 탐험 계획’이라는 장면에는 로켓 선실의 내부 구조도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에르제는 이 장면을 위해 로켓 내부 모형을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인터파크 전시사업팀 함주현 과장은 에르제가 연구에 쏟은 정성이 대단하다고 설명한다. “‘달나라에 간 땡땡’은 달 표면에 대한 묘사까지도 신경을 쓴 작품이에요. 천체망원경을 통해 여러 번 촬영해가며 그렸죠. 무중력 상태의 수준급 묘사 또한 우주비행 정보가 적던 시절 에르제의 높은 지식수준을 보여줍니다.” 

  땡땡을 도와준 다양한 등장인물

  다음 공간에는 발랄하게 지저귀는 새소리와 함께 빈티지한 느낌의 저택이 등장한다. 땡땡이 다른 등장인물을 만나고 모험을 준비하는 물랭사르 저택이다. 저택 주위에는 땡땡의 모험에 등장하는 여러 등장인물의 이미지가 관객에게 인사를 건넨다. 

  에르제는 실제 주위 인물을 모티브로 등장인물을 만들었다. 땡땡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바로 그의 동생 폴이다. 정진재 도슨트는 동생 폴이 땡땡으로 인해 겪은 일화를 소개한다. “어딜 가나 땡땡을 닮았다는 말을 듣던 폴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그와 땡땡의 트레이드마크인 닭 벼슬 머리를 잘라버립니다. 하지만 짓궂은 형이었던 에르제는 머리를 자른 동생을 악당으로 재출연시켜버리죠.” 

  술을 보면 사족을 못 쓰는 독특한 강아지 밀루도 반갑게 관람객을 맞이한다. 밀루의 이름은 에르제의 전 여자친구 말루에서 따왔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에르제가 아버지를 다소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뒤퐁도 등장한다. 정진재 도슨트는 등장인물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땡땡만 있었다면 부족했을 매력을 채워준 것은 그와 함께 등장한 개성 강한 인물들이 아닌가 싶어요.”

  에르제를 바꾼 동방의 예술가  

  벽이 온통 붉은 방에 들어서니 중국 느낌이 물씬 난다. 에르제가 의문의 남성과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띈다. 중국 출신 예술가 장총첸 작가다. 에르제의 30대 시절 중 중요하게 손꼽히는 순간은 장총첸 작가와의 만남이다. 그는 에르제가 동서양의 경계를 허물고 작품을 그려내도록 한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다. 에르제는 장총첸 작가를 통해 중국 문화를 접하고 그와 함께 작업하여 이를 ‘푸른 연꽃’이라는 작품에 녹여낸다. ‘푸른 연꽃’은 중국의 문화를 사실적으로 담아낸 ‘땡땡의 모험’ 다섯 번째 작품이다. 정진재 도슨트는 이 작품이 당시 동양에 대한 선입견을 깨준 작품이라고 전한다. “당시 서구 문화권은 동양에 대한 인종차별이 굉장히 심하던 때였어요. 에르제도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었죠. 그러나 장총첸 작가를 만난 뒤로 동양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하게 됐다고 해요.”  

  다재다능했던 에르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그는 작품을 위해 끝없이 연구를 거듭하는 아티스트였다. 정진재 도슨트는 전시가 관람객에게 만화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만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조금이라도 깨졌다면 의미 있는 관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르제도 완벽하지 않았다

 

  만화 ‘땡땡의 모험’에 다양한 문화를 담아낸 에르제도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자비에리오데 교수(프랑스어문학 전공)는 ‘땡땡의 모험’을 칭찬하면서도 시리즈가 내포하는 인종차별적 요소를 지적한다. “에르제는 백인을 타 인종에 비해 우월하게 묘사했어요.” 그 예로 지난1946년 발간된 ‘콩고에 간 땡땡’에서 흑인이 열등한 존재로 묘사됐다는 논란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해 에르제는 “소비에트 땡땡과 콩고 땡땡을 그릴 당시 부르주아 사회의 편견에 젖어 있었다”라며 인종차별 성향을 시인한 바 있다.

  하지만 에르제는 장총첸 작가를 통해 낯선 문화를 존중하게 되는 등 자신의 선입견을 바꿔나간다. 정진재 도슨트는 에르제가 새로운 만남을 기점으로 인종차별적인 시각을 버린 점이 인상 깊다고 말한다. “에르제가 장총첸 작가를 만나 동양문화를 새로이 인식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 점이 인상 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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