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일, 일기일기(日氣日記)
  • 사진부=정준희·김정훈·김아현·박진용·이지 기자
  • 승인 2019.03.18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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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공습경보 발령

“중앙인 여러분, 미세먼지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현재 시각, 중앙대 전역에 미세먼지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잿빛 미세먼지가 중앙대를 습격했습니다. 미세먼지를 피해 학생들이 황급히 건물 안으로 대피합니다. 밖에 남은 학생은 마스크로 얼굴을 덮어 호흡기를 보호합니다. 심각한 미세먼지는 평범했던 일상을 바꿔버렸습니다. 이번 주 사진부는 일상 속 미세먼지를 조명했습니다. 시뿌연 회색 하늘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심각한 미세먼지 때문일까요. 한강 자전거길에 사람이 부쩍 줄어들었습니다.
심각한 미세먼지 때문일까요. 한강 자전거길에 사람이 부쩍 줄어들었습니다.

 

개강과 동시에 최악의 미세먼지가 하늘을 집어삼켰다. 매캐한 공기에 들숨과 날숨이 불쾌하다. 203관(서라벌홀)에서 코앞의 310관(100주년기념관 및 경영경제관)을 바라보는데도 눈앞이 뿌옇게 흐리다. 이러다 앞으로 ‘첫눈 오는 날 만나자’는 감성 어린 약속 대신 ‘미세먼지 농도 30㎍/㎥ 아래로 떨어지면 만나자’ 같은 약속을 나누지는 않을까 상상해본다. 헛웃음을 지으며 강의실로 바삐 발걸음을 옮긴다.


  #강의실
  “삐- 삐- 삐-” 수업이 한창인 강의실의 모든 휴대전화가 동시에 요란하게 울린다. 마치 공습경보라도 발생한 듯하다. 정체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긴급재난문자다. 하지만 며칠째 반복되는 재난문자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다들 무심히 경고 메시지를 닫고 강의에 집중할 뿐이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경고 메시지는 아무런 효과가 없어 보인다. 어떤 친구는 시도 때도 없이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전화가 성가시다며 아예 재난문자 알림을 꺼놓기도 했다. 미세먼지도 재난문자도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일부가 된 것이다.

 

가까운 시일내에 마스크가 일상복이 될지도 모릅니다.
가까운 시일내에 마스크가 일상복이 될지도 모릅니다.

 

  #마스크
  강의가 끝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곧바로 코와 목이 반응한다. 기침을 연거푸 하다 이대로는 위험하다는 생각에 마스크를 사러 편의점에 들어갔다. 마지막 하나 남은 것을 겨우 구매할 수 있었다. 평소엔 분명히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사장님께 여쭤보니 오늘 하루에만 200개 정도의 마스크가 팔렸다고. 그러고 보니 오늘은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오늘 같은 날이 계속 이어진다면 마스크가 양말이나 내의처럼 일상복이 될지도 모르겠다.

 

답답한 미세먼지 아래 계속되는 농구 경기.

 

  #자이언트구장
  구장에는 평소처럼 농구 경기를 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런 날에도 운동을 하다니. 건강에 매우 나쁠 텐데. 깜짝 놀라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들 중 한명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러나 마스크를 쓰고 운동하는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미세먼지 시대의 한 풍경이려니 싶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 야외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선수들이 곤란한 처지에 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스포츠팬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KBO리그는 올 시즌부터 기준을 마련해 미세먼지가 심한 날 경기를 취소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도 비슷한 규정을 작년에 도입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즐겨오던 것들이 조금씩 방해받고 있다.

  #하굣길
  할 일 많은 개강 첫주지만 도저히 밖에서 활동할 수 있는 대기 상태가 아니다. 집에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흑석역으로 향한다. 역에 다다르자 마스크를 쓴 소녀상이 눈에 들어온다. 문득 ‘삼한사먼’이라는 신조어가 떠오른다. 봄철 기후가 사흘은 춥고 나흘은 먼지가 가득하다는 뜻이다. 추위와 먼지를 함께 막아주는 마스크를 소녀상에 씌워준 누군가의 재치에 작게 감탄하며 지하철에 오른다.

 

“요새 날씨가 왜 이 모양이야?”
“요새 날씨가 왜 이 모양이야?”

 

  #오늘의 일기, 다가오는 위기
  재난과 같은 미세먼지와 함께 보낸 하루는 개강과 맞물려 더욱 고통스러웠다. 아무도 이런 개강 풍경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텐데. 먼지 없는 맑은 하늘이 정말 그립지만, 미세먼지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쓰레기 소각량과 석탄발전소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한국의 미세먼지 대응책은 아직 시원찮다. 앞으로도 우리 삶의 질은 악화될 것이다.
미세먼지는 공기 중에 은밀하게 숨어서 다가온다. 산불이나 전염병처럼 요란하게 발생하는 재난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심각성에 대해 둔감하다. 더 예민해지지 않으면 우리는 적응해버리고 말 것이다. 이 은밀한 공습에 개인과 사회가 함께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침묵의 암살자’는 계속해서 우리의 건강을 빼앗고 일상의 모습을 바꿔놓을 것이다. 아무런 경각심도 일으키지 못하는 재난문자, 모두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풍경, 최악의 미세먼지에도 실외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되돌아본다. 미세먼지에 적응해가는 일상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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