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는 무언가를 샅샅이 살펴나가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이번학기 중대신문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미처 의식하지 못했을 지역의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어느 순간부터 소규모 동네 서점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대형 서점의 확대와 온라인 서점의 발달로 인한 일입니다. 여기 빠르게 변하는 시장 상황을 각자의 방법으로 견뎌내는 두 서점이 있습니다. 한곳은 시대 흐름에 발맞춰 모습을 바꾸고, 다른 한곳은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죠. 두곳 모두 소중한 지혜의 보고입니다. 이번주 중대신문은 우리 동네 서점의 두가지 모습을 담아봤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다시 돌아온 ‘문화 아지트’

대학가 근처에 인문사회과학서점이 꼭 하나씩 있던 시절이 있다. 민주화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던 1980년대다. 그 시절 대학가 인문사회과학서점은 학생 운동가들의 비밀 모임 장소 역할을 했다. 대형 서점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물론이고 당시 ‘금서’로 지정됐던 책도 판매했다.

  이런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현재 서울 소재 대학교 인근의 인문사회과학서점은 단 2곳뿐이다. 1986년 흑석동에 자리잡았던 청맥서점도 2011년 경영난을 이유로 문을 닫았다.

  그런데 최근 인문사회과학서점의 변신이 흑석동에서 일어나고 있다. 폐점된 청맥서점이 지난해 4월 새 사업자를 찾아 청맥살롱으로 재탄생했다. 흑석역으로 가는 길, 한 건물 계단을 올라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선명한 원색의 벽으로 둘러쌓인 아늑한 실내 공간이 펼쳐진다. 실내 공간에서 조금 들어가면 흑석동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야외 테라스가 있다. 생동감 넘치는 인테리어에 감탄하다 보면 다양한 메뉴에 또한번 놀라게 된다.

  단순히 책만 팔았던 과거 청맥서점과 달리 청맥살롱은 음료를 함께 파는 북카페로 변화했다. 커피, 차, 술 등 다양한 음료와 간식거리들이 준비돼있다. 손님들은 음료를 곁들인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공부나 독서를 한다. 맥주와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는 손님도 간간히 보인다. 청맥살롱 최지애 대표는 대학가 서점을 유지시키고 싶은 마음에 청맥서점을 재탄생시키게 됐다고 설명한다. “대학마다 한두개씩 있었던 서점들이 사라져가는 풍경이 아쉬웠어요. 대학가 서점의 맥을 잇고 싶었죠. 문화행사도 열 수 있고 책도 읽을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로 문화 기획자 분들과 합심해서 만든 결과물이에요.”

  청맥살롱은 서점의 맥을 이은 공간이기 때문에 각종 서적 구매와 열람도 가능하다. 카운터의 왼쪽 벽에는 판매용 책이, 맞은편 벽에는 열람용 중고 책이 꽂힌 서가가 있다. 판매용 책 중 상당수는 저자의 사인본이다. 대형 서점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 있기 때문에 고안한 차별화 방안이다. 최지애 대표는 가격 면에서 온라인 서점과도 경쟁할 수는 없다며 다양한 문화 기획을 통해 차별화를 뒀다고 설명했다. “책을 읽는 문화를 응원하는 차원에서 책을 한권 사면 아메리카노를 제공하기도 해요. 또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시는 독자 분에게 북 큐레이션을 드리기도 하죠.”

  그는 청맥살롱의 정체성을 ‘문화기획 공간’으로 정의한다. 기존의 카페라는 공간에서 탈피해 ‘문화 아지트’로서 각종 문화 행사가 열릴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현재 청맥살롱은 문화관광부와 ‘작은 서점 지원 사업’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작가들이 한달에 한번씩 방문해 독자들과 만남을 가진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는 ‘젊은 시인 만나기’ 기간이다. 이에 따라 ‘젊은 시인 문학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시인과 독자가 만나 토크와 공연, 사인회 등을 진행한다. 최지애 대표는 저자와 독자의 친밀감 형성을 위해 행사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저자와 독자가 가까워질 수 있는 중간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의도를 담았죠.” 오는 15일에는 김복희 시인이 방문할 예정이다.

  청맥살롱은 중앙대 학생들의 문화 아지트 역할 또한 톡톡히 해내고 있다. 작년 12월 중앙대 사진전공 학생들이 사진 전시회 공간을 구하지 못했을 때 청맥살롱이 전시 공간으로 무료 제공됐다. “음식 서비스 비용만 제외하고 대관료는 받지 않았고, 레일도 전부 깔아드렸어요. 직접 무언가를 기획해서 전시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으면 연락해줬으면 좋겠네요.” 최지애 대표는 10명 이상의 인원을 수용 가능한 세미나룸도 별도 대관료를 받지 않는다며 독서 모임 등을 진행할 분들이 방문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형서점이 많아지며 동네서점이 사라져가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책은 충동구매 상품이에요. 그런 충동은 문화적 충동이죠. 그런데 요즘 세대는 문화적 충동을 여유 있게 느낄 여력도 기회도 없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최지애 대표는 문화적 경험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부연했다. “변해가는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한 개인은 문화적 경험을 풍부하게 쌓아야 해요. 힘든 하루하루를 바꿔나가는 힘으로 문화적 취미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책이든 영화, 여행이든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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