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 신혜리 기자
  • 승인 2019.03.11 2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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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걱정마. 이제 시집 갈 수 있을거야.” 과거 지하철 3호선에 붙어있던 모 성형외과 광고문구입니다. 해당 문구 때문에 서울교통공사에는 민원전화가 걸려오기도 했죠. 광고는 하나의 상품처럼 예쁘게 가꾼 여성만이 남성에게 선택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성형외과 광고를 포함해 흔히 볼 수 있는 다이어트 광고 또한 여성에게 엄격한 외모 관리를 요구하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광고 속 여성의 외모 기준은 언제나 남성의 입맛에 맞춰져 있으며 여성에게 끝없는 외모검열을 부추깁니다.

  단지 광고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유독 여성의 외모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겉모습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합니다. 꾸미지 않으면 이상한 여자로 취급받기 일쑤며 끝없는 성형수술과 다이어트를 권하는 사회 속에 살아가죠.

  기자의 삶도 다를 건 없습니다. “걔는 다 좋은데 코가 좀 아쉽더라.”, “너는 예쁘니까 ‘취집’ 잘 가겠네.” 실제로 들은 말입니다. 그들의 기준대로 평가된 모습에는 기자의 껍데기만 남아있을 뿐, 진정한 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점차 각박한 외모지상주의 사회에도 족쇄가 돼버린 꾸밈 노동에서 탈피하려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자는 지난학기 탈코르셋에 관한 기사를 쓰며 탈코르셋을 실천한 열댓명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스로를 가꾸는 것은 본인의 의지이자 자유입니다. 그러나 꾸미는 것만이 정상인 것처럼 꾸밈 노동을 강요하는 것은 억압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꾸밈의 자유는 분명 있어야 하나, 이는 꾸미지 않을 자유가 전제된 이후의 조건입니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 만연해있는 여성을 향한 외적 억압이 곳곳에서 보여 눈에 밟힙니다. 여기저기서 코르셋 조이기를 강요하고 세뇌시켜 숨이 막히기도 하죠. 그러나 우리는 겉모습으로 판단되는 아름다움이 절대 우리를 가둘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당장 화장품을 깨고 속옷을 벗어 던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절대 우리를 점수 매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죠.

  그러니 당신이 화장하지 않았을 때 혹은 머리를 짧게 잘랐을 때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 때문에 얼굴을 가리며 당신 스스로를 지워버리지 말길 바랍니다. 껍데기가 이런 모양이든 저런 모양이든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아름다움은 당신이 지닌 알맹이 그 모든 곳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모습을 했든 간에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으며, 그 누구도 겉모습만 보고 멋대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전히 답습되는 ‘여자다움’은 언제쯤 깨져버릴지 모르겠지만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외모검열과 평가는 분명 언젠가 사라질 것이며 사라져야만 합니다. 엄연한 ‘권력’ 관계 속에서 모두가 본연의 알맹이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소리쳐봅니다. 부디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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