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는 무언가를 샅샅이 살펴나가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이번학기 중대신문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미처 의식하지 못했을 지역의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어느 순간부터 소규모 동네 서점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대형 서점의 확대와 온라인 서점의 발달로 인한 일입니다. 여기 빠르게 변하는 시장 상황을 각자의 방법으로 견뎌내는 두 서점이 있습니다. 한곳은 시대 흐름에 발맞춰 모습을 바꾸고, 다른 한곳은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죠. 두곳 모두 소중한 지혜의 보고입니다. 이번주 중대신문은 우리 동네 서점의 두가지 모습을 담아봤습니다.

 

 

백년의 역사와 마주하는 곳

스러져가는 책방을 더듬어보다

사진 이지 기자

장승배기역을 나와 길모퉁이를 따라 걷다 보면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자그마한 헌책방. 올해로 46년째 헌책방의 이름을 지켜온 ‘문화서점’이다. 이곳이 책방임을 알리듯 문의 양옆으로 수십 권의 책이 겹겹이 쌓여있다. ‘책’이라 쓰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2평도 안 되는 작은 책방이 동굴처럼 펼쳐진다. 사방을 가득 메운 책들에는 먼지가 좀 쌓였어도 책의 수만큼은 여느 서점 못지않다.

  문화서점의 주인 강원씨(80)는 1974년 봉천동 빈촌에서 문화서점이라는 이름으로 헌책방을 열었다. 일년 후인 1975년 이곳, 상도동으로 넘어와 우체국 옆 공터에서 문화서점을 이어갔다. 그러나 또다시 일년 후 공터에 건물을 짓는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쫓겨나 현재 책방이 있는 맞은편 건널목으로 가게를 옮겼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끼니만 때우면 된다는 생각으로 책방을 열기로 결심했다. “밥먹고 살기 위해서 책방을 시작했지. 결혼 후에는 애들 책 가져다주려고 했고. 옛날엔 책을 사주는 게 힘들었거든.” 그는 자식들의 나이에 맞춰 책을 하나하나 가져다주는 소소한 재미로 책방 운영을 이어왔다.

  그로부터 16년 후인 1992년 문화서점은 현재 운영 중인 자그마한 책방 옆에 있는 큰 건물로 이사했다. 그에겐 꿈의 건물이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사장님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띠어있었다. “특히 70년대랑 80년대에는 책방 운영이 아주 잘 됐거든. 그땐 헌책을 갖다놓으면 거의 다 팔았어. 30권짜리 전집을 사놓으면 낱권도 다 팔리는 시절이었지.”

  그러나 점점 책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고 책이 잘 팔리지 않자 2002년에 옆 건물에 자그마한 헌책방을 다시 꾸렸다. “점점 책이 안 팔리니까 작은 건물로 온 거여. 책방도 엄청나게 줄어들었지.” 전에만 해도 근처에 네 개나 있던 서점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전에는 진호서점도 있었고 길 건널목에 상도서점도 있었는데 다 없어지고 나만 남았어.” 그는 어느덧 이 작은 가게에서 책방을 지켜온 지도 열일곱 해가 됐다며 세월이 참 빠르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책장의 책을 쓱 하고 쓸면 금세 손이 까매진다. 찾는 사람이 줄어 먼지가 소복이 쌓인 책들이 얼마 동안이나 주인을 찾지 못하고 그 자리에 식어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책을 사놓으면 팔려야 하는데 사람들이 책을 안 보니까 이젠 책방 운영이 전혀 안 돼. 가끔 노인들은 와도 젊은 사람은 전혀 안 와.” 운영이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이젠 다른 일을 할 능력도 못 된다고 말하는 그는 녹록치 않은 운영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장님이 손님에게 한자사전을 소개해주고 있다.
사장님이 손님에게 한자사전을 소개해주고 있다.
고종 21년(1884년)에 쓰인 의학서 『방약합편』이다.
고종 21년(1884년)에 쓰인 의학서 『방약합편』이다.

  그러나 끼니만 때우려고 책방을 하셨다는 사장님의 지나온 세월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한자 사전을 사러 온 손님이 사전과 옥편 중에서 고민하자 사장님은 금세 빽빽한 책더미들 속에서 여러 권의 책을 찾아냈다. “이건 학생들이 잘 쓰는 사전이고 이 책은 서예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고.” 설명을 들은 손님은 자신에게 맞는 책을 구매하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책방을 나섰다. 오랜 시간 책방지기로 살아온 강원씨는 이 헌책방 안에서 책의 달인이자 도사다.

  권해줄 만한 책이 있냐고 물었다. 이젠 그런 책도 없다며 손사래 치더니 금세 구석에서 『방약합편』이라는 오래된 서적 한 권을 꺼냈다. 책을 정리하다 찾았다며 건넨 서적은 고종 21년(1884년)에 쓰인 의학서였다. “이게 한약에 관한 책이야. 하나하나 옥편으로 찾아보니까 쇠로 녹인 활자로 만들었다고 적혀있어. 을유자로 쓰인 책이니까 엄청 오래된 거야. 희귀성은 좀 있지” 오래된 책은 이 뿐만이 아니다. 곧 가져오신 다른 서적도 100년 가까이 된 『천자문』이었다. 일본 명치시대 초기에 쓰인 책이라는 걸 증명하듯 한문에는 일본어로 토도 달려있다. ‘진품명품’이라도 나갈까 싶다며 그는 괜스레 농담을 던졌다.

  과거에는 책을 통해 모든 정보를 얻었지만 요즘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사기 위해 책방으로 발걸음하는 손님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하도 책방 규모가 작으니까 세가 많지 않아서 아직은 버티지. 이젠 그만둬야 하는데 누구한테 이 서점을 하라고 권하는 건 내 양심에 찔려서 못해. 그런 시대여 이젠.” 이젠 그만둘 때가 됐다며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언제 문을 여냐는 물음에 일요일을 제외하곤 매일같이 문을 연다고 답한다. 반백 년 동안 책방지기의 삶을 살아온 그는 오늘도 낡은 책 속에서 세월의 먼지와 하루를 함께한다. 여느 날과 같이 오늘도, 내일도 문화서점의 문은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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