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속 약자 두 번 울리는 2차 가해
  • 노유림 기자
  • 승인 2019.03.11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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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아보며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일 중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며 무심하게 지나쳤던 경험이 있나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공감을 필요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이번학기 기획부는 와 닿지 않았던 누군가의 일상을 생각하기 위해 작은 공간, ‘생각의자’를 마련했습니다. 생각의자의 두번째 주인은 ‘2차 가해의 피해를 입은 사회적 약자’입니다. 1차 가해의 피해가 채 잊히기도 전 2차 가해로 고통 받는 이들. 2차적 피해까지 떠안아야 했던 사회적 약자의 의자에 앉아 생각해봤습니다.

 

 

 

절벽 위의 소수자

등 떠미는 2차 가해

 

‘일반적’이지 않기에

1차 피해사실 의심하기도

 

본 기획은 ‘2차 가해’를 다양한 형태의 1차 가해 사건을 둘러싸고 그 피해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며 배척 및 모욕하는 언행으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2차 가해에 대한 의미 상정은 국가인권위원회의 도움을 통해 이뤄졌음을 알립니다. 또한 본 기사는 사이버 성폭력 미성년 피해자, 2차 가해를 당한 성 소수자의 지인, 한국성폭력 상담소, 「성폭력 2차 피해를 통해 본 피해자 권리」(이미경, 2012) 논문, 숭실대 성 소수자 모임 이방인, 한국사 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여러 단체 및 개인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각색했습니다. 기사는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인물의 시점에서 소설 형식으로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다소 불편한 내용이 포함돼 있으니 2차 가해 피해 경험자 혹은 PTSD를 앓고 있는 분은 본 기사를 읽는데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청소년 성희롱, 익명 앞‘조롱거리’

  지루했던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학원에 가기 전, 잠깐 PC방에 들러 즐기는 게임은 내 삶의 유일한 낙이다. 처음 게임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캐릭터 레벨이 낮아 주로 혼자 놀곤 했다. 이후 차츰 레벨이 높아지자 게임 내 지인이 늘었고 이후 운 좋게 ‘길드’에도 들어가 다양한 길드원들과 게임을 즐기게 됐다. 평소처럼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익숙한 메신저 창이 뜬다. ‘중신님! 저희 지금 레이드 뛸 건데 같이 가실?’ 길드원 한 명이 보낸 메시지에 승낙 버튼을 누르고 신나게 게임을 즐긴다.

  그러던 중 누군가 단체 채팅에 메시지를 보낸다. ‘아 XX하고 싶다ㅋㅋㅋ’순간 당황했지만 애써 무시하며 게임을 한다. 하지만 채팅창에 올라오는 메시지는 점점 수위가 높아진다. ‘중신님 XX 해봤어요ㅎ?’, ‘중신님 나이에 XX같은거 모르나~’ 계속되는 성적인 발언 때문에 게임 창을 끈다. 성희롱 대상이 됐다는 불쾌한 기분이 지워지지 않는다. 고민을 거듭하다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려 모두에게 알리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마음먹고 올린 글에 뜻밖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성희롱이냐는 조롱부터 성희롱을 연상시키는 음란한 사진도 있었다. 게임에는 접속하지 않고 공론화 게시글과 댓글만 3일 동안 확인했다. 하지만 내 편을 들어주는 댓글은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가해자에게 직접 사과를 받고자 게임에 접속했다가 여성의 성기를 닉네임으로 한 사람이 메신저로 하는 조롱까지 들어야 했다. 처음 성희롱을 당했을 때도 우울했는데 이젠 2차 가해를 연상하는 댓글 때문에 더 힘이 빠진다. 사건을 잘 모르고 선동하거나 또 다른 성희롱을 하는 댓글이 대다수라 더 억울하다.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을 혼자 끙끙 앓다가 가족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다. 부모님은 내가 처음 성희롱을 당한 사실만으로도 매우 화를 내셨고 2차 가해성 댓글을 보고는 경찰에 신고하자고 말씀했다. 지속적인 2차 가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겨우 신고 절차를 밟긴 했지만 댓글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는 쉽게 가시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 게임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2. 잘못은 내가 ‘어렸기’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12년 전. 나는 집으로 오던 길에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평소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대신 날 돌봐주던 지인은 그날 내게 끔찍한 기억을 남겼다. 사실을 안 부모님은 지인을 어린이성폭력 가해자로 경찰에 고소했다. 어린이성폭력 피해 수사과정에서 피해 정황을 알기 위해 내 진술이 필요했고, 나는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물음에 답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떠올리기도 힘든 일을 하나하나 말했다. 그러나 진술을 들은 경찰은 도리어 내게 물었다.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그 사람이 정말로 너한테 그런게 확실하니?” 몇 번이나 확실하다고 말했지만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가해자가 빨리 처벌받을 줄 알았던 생각과 달리 수사 기간은 훨씬 길어졌다. 내가 어린이라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심지어 피해 상황을 재현하라는 요구도 들었다. 대답을 잘하지 못할 때면 다그치는듯한 물음에 압박감마저 들었다. 길어진 수사 기간과 질문 때문에 나는 물론 부모님도 점점 지쳐갔다. “빨리 합의하면 될 텐데요. ”가해자가 내민 조건으로 합의하라는 부추김은 상황을 더 힘들게 했다. 결국 내가 입은 피해에 대한 고소는 불기소됐다. 나이가 어려 신빙성 문제가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나와 가족이 수사 과정에서 입은 정신적 피해만 인정됐다. 이에 대해 내려진 판결은 손해배상금 지불. 1, 2차 가해로 내가 입은 모든 피해를 저울질해 겨우 가격을 매긴 셈이다.

  3. ‘틀린’생각이라 비난받은 성적지향

  오전 10시. 아직도 잠이 덜 깨 비몽사몽한 상태지만 빠르게 몸을 일으킨다. 11시 수업을 들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 지난밤에 온 연락을 확인하던 중 애인이 보낸 카톡 메시지를 발견한다. ‘내일 점심 같이 먹자!’ 마침 공강이 긴 날이라 바로 답장을 보낸다. ‘이제 확인했네. 이따 보자.’주위사람들은 내게 동성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굳이 알리고 싶지도 않다. 방을 나선 후 거리에 들어서자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고가는 인파를 보고 있자니 몇 년 전 처음 성 소수자임을 아웃팅 당했던 때가 생각났다.

  “야 얘 동성애자래!” 입시 때문에 모두가 민감하던 시기, 나는 친구에게 강제 아웃팅을 당했다. 놀라고 당황한 마음은 뒷전으로 두고서도 나를 둘러싼 의혹의 눈초리를 견딜 수 없었다. 이후 일주일이 넘도록 학교에 나가지 못하다가 다시 등교를 시작했지만 아웃팅으로 입은 피해는 물론 질문을 가장한 2 차 가해가 내 상처를 키울 뿐이었다. “네가 아직 제대로 된 여자를 못 만나봐서 그런 거 아니냐? 나중에 ‘경험’ 하면 다 고쳐질 거다.” “정상적으로 생각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동성을 좋아할 일도 없지 않아?” 피해자는 나인데 성적 지향성 때문에 마치 내가 잘못했다는 식의 비난이 돌아왔다. 상담을 받으면서도 내가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털어놓기는 쉽지 않았다. 진지한 상담 끝에 돌아오는 말이 “일단 이성을 만나보면 어떨까요?”라니. 어차피 혼자 견뎌야 할 일이라면 말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대학교에 들어온 지금이라고 상황이 더 나아진 건 아니다. 성 소수자의 입장으로는 피해를 봤다는 사실 조차 알리기 쉽지 않다. 얼마 전에는 ‘에타’에 성 소수자가 피해를 봤다며 글을 썼다. 피해 사실에 공감과 도움을 얻으려 올린 글이었겠지만 댓글은 제3자의 조롱으로 난무했다. ‘그러게 누가 성 소수자 하래?' ‘니들끼리 조용히 해결해 XX들아.’ 나중에 나 또는 내 애인이 피해를 입으면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오늘도 불안한 마음으로 교정에 발을 들인다.

  4. 피해를 입어야만 했던 ‘조건’

  휠체어를 천천히 움직여 책상으로 향한다. 연필을 쥐어보려 손을 뻗지만 번번이 미끄러지고 만다. 선천적 지체 장애를 앓고 있는 나는 내 몸조차 뜻대로 움직이기 어렵다. 남들보다 대화나 판단도 조금 느리다. 그렇기에 나는 성폭력 피해를 봤을 때 피해자임을 주장하기 위해 내 모든 ‘장애 특성’을 내세워야만 했다. 나는 신체나 정신적 장애가 있는 장애인 피해자에 속한다. 평소 장애를 가졌지만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수사와 증언 과정에서는 성적 자기 결정권이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했다. ‘장애인’이라는 특수한 조건에서 가해자를 처벌하는데 유리한 내용이 었기 때문이다. 수사 과정 중 사건 당시 얼마나 극악한 상황에 놓여있었고 어느 정도의 저항을 했는지도 답변 해야 했다. 내가 앓고 있는 장애가 정당하고 일반적인 삶에 있어 얼마나 불리한 요소인지 읊는 과정이 특히 힘들었다. 주변인에게 말을 했을 때도 “너 장애인이라며 어떻게 그렇게 잘 기억해?”라는 반응을 들을 때면 정신적으로 지쳤다. 성폭력 사건 이후 누군가 스치듯 말했다. “몸이나 정신이라도 성했으면 그런 불쌍한 일은 피했을 텐데...” 본인은 2차 가해인지 모르고 한 말이겠지만, 마치 장애가 원인이 돼 성폭력을 당했다는 듯한 발언이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한 말은 아니었길 바란다. 그 말이 결과적으로 내게 상처만 남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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