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시, 열어줘서 고맙습니다.’ 여러분도 일상 속 사소함에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지 않나요? 느지막이 일어난 주말 아침이 주는 여유. 때마침 정류장에 진입하는 버스를 볼 때 안도감. 우리가 느끼는 일상 속 고마움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주변의 크고 작은 전시회에서도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죠. 이번 주 중대신문은 사진회화 기법을 선보인 <피에르 쥘: 더 보헤미안>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고마움 가득했던 전시를 둘러본 기자가 전하는 생생한 후기, 지금 시작합니다. 

자극적이면서도 강렬한 작품으로 눈길을 끄는 피에르와 쥘의 작품들. 프랑스 출신의 피에르와 쥘은 연인이자 작업 파트너다. 그들은 소수자를 대변하는 예술가다. 기발한 작품을 통해 현대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피에르 쥘: 더 보헤미안> 전시회는 5월 26일까지 K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사진회화’라는 장르를 선구적으로 이끈 그들이 작업을 통해 전하고자 한 다양한 메시지를 확인해보자.

  사진에 물감을 덧입히다

  전시회 공간에 들어서면 다양한 색깔이 눈에 들어온다. 정면에는 하트와 케이크에 싸인 채 환히 웃는 피에르와 쥘의 모습이 담긴 작품을 볼 수 있다. 이는 화려하다는 표현이 실로 잘 어울리는 작품 「40년」으로 그들의 작품 활동 40주년을 축하하는 의미를 지닌다.

  피에르와 쥘은 포스트모더니즘 아트를 선구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들은 ‘포토제닉 드로잉’ 기법을 사용해 작업한다. 프린트된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다. 피에르가 사진을 찍으면 쥘이 그 위에 그림을 화려하게 덧그린다. 기존 모더니즘에서는 사진과 회화의 분야 간 경계가 뚜렷했다. 그러나 피에르와 쥘은 사진과 회화를 결합한 ‘사진회화’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경계를 무너뜨렸다. 

  피에르와 쥘의 작품이 처음부터 복합적인 성격을 띤 것은 아니다. 작품 「40년」을 지나면 그들의 초기 작품이 모여 있는 벽을 만난다. 이곳에선 인물의 표정이 주가 되는 초상화를 여럿 볼 수 있다. 그들이 복합적 사진 회화에 눈을 뜬 계기는 ‘증명사진’이다. 강은솔 도슨트는 피에르가 회색빛 증명사진에 불만을 느낀 것이 시초라고 말한다. “쥘이 애인 피에르를 위해 증명사진 위에 색칠하게 되면서 두 작가는 새로운 방식에 눈을 뜨게 돼요. 이때부터 사진 위에 그림을 덧그리는 사진 회화 방식을 채택하게 된 거죠.”

  소년들의 죽음이 건넨 의미

  이어서 그들이 담고자 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줄을 지어 나타난다.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창문 위에 엇비슷한 크기로 걸려 있는 네 장의 사진이 눈에 띈다. 「파리의 소년들」이라는 작품이다. 사진 속에는 네 명의 소년이 있다. 소년들 눈빛에 생기가 돈다. 하지만 에이즈 환자였던 이들은 모두 작품 촬영 뒤 사망했다. 피에르와 쥘은 해당 작품을 통해 죽음이라는 주제를 마주하게 됐다. “이전에는 그들이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작품 활동을 했어요. 그래서 주제가 주로 사랑과 행복이었죠. 하지만 에이즈가 창궐한 1980년대 이후부터 죽음을 인식해 어두운 작품도 만들기 시작했어요.” 강은솔 도슨트는 그들이 「파리의 소년들」을 통해 작품 활동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이야기한다.

  소수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전시를 관람한 최희지씨(25)는 전시에서 성소수자를 많이 다룬 점이 눈에 띈다고 말한다. “작품들이 성소수자를 주제로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 점이 흥미로웠죠.” 피에르와 쥘은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다양한 사람을 작품 속에 담았다. 그들 본인부터 성소수자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사슬을 끊는다」라는 작품에서 그들은 각종 차별에서 벗어난 존재의 자유를 드러낸다. 작품에는 스스로 옭아매던 사슬을 끊어내고 다른 남성을 끌어안으며 웃는 흑인이 등장한다. 강은솔 도슨트는 이 작품이 피에르와 쥘이 강조하는 메시지가 집약된 작품이라고 말한다. “굉장히 상징적인 작품이에요. 모든 차별에서 벗어나 비로소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된 흑인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죠.”

  무겁기만 할 필요는 없다

  심오하고 다양한 주제를 느끼며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한 소년이 엉덩이를 까고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작품을 마주한다. 작품 속 원색으로 구성된 유니폼을 입은 소년이 바지를 내리며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이 익살스럽다. 강은솔 도슨트는 해당 작품의 의도 자체가 보는 이의 웃음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심오한 메시지뿐 아니라 유쾌함을 전달하고 싶어 했어요. 이런 작품들을 보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웃어넘기면 작가의 의도에 맞게 반응했다고 볼 수 있죠.” 

  그들이 작품을 작업한 방식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체험공간도 마련돼 있다. 커다란 공터에 예쁘게 꾸며진 세트장이 보인다. 피에르와 쥘이 사진을 촬영하는 방식을 재구성한 공간이다. 그들은 작품에서 디지털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소품들을 직접 겹겹이 쌓아 연출해 촬영한다. 이는 작품 「행복의 멜로디」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여인을 하얀 꽃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을 살펴보면 여인을 둘러싼 꽃이 뒤로 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원근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꽃들이 층층이 쌓여 연출됐음을 의미한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프레임

  회화 작업이 끝나면 그들은 다양한 오브제를 붙여가며 손수 액자를 만든다. 피에르와 쥘의 작품은 작품 분위기에 어울리는 액자 제작과 함께 끝을 맺는다. 직접 만든 프레임에 작품을 넣음으로써 이미지를 확장한다. 최근 들어 그들은 액자에 붙여 넣던 오브제를 작품 내부에도 넣는 등 새로운 기법을 창안하고 있다. 강은솔 도슨트는 피에르와 쥘이 말한 앞으로의 포부를 전달한다. “그들은 환경오염에 관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어요. 쓰레기를 직접 오브제로 활용하겠다고도 했죠.” 작품에 다양한 사회 메시지를 담아내는 피에르와 쥘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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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을 그리는 작가, 임지민

  임지민 작가는 삶 속에서 마주하는 기억을 그리는 회화 작가다. 그는 사진 안에 정지돼 있는 기억을 회화로 표현한다. 

  그는 가족을 잃었을 때 느낀 상실감이 계기가 돼 회화 작업을 시작했다. 그에게 많은 영향을 줬던 아버지는 대학 졸업식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 역시 화가였다. 이후 바라본 가족사진은 큰 괴리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낯선 감정을 좇아 인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통로가 돼 사람들이 기억의 무게감을 느끼길 희망한다. “요즘 쉽게 잊히는 기억이 많은 것 같아요. 제 작품이 기억을 진중하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 또한 보는 이가 스스로의 기억과 대조해보며 마음의 울림을 찾으면 더욱더 좋을 것 같아요.”

  기억하지 않기 위한 기록

  임지민 작가가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기억하지 않기 위한 기록」이다. 이는 최근 진행한 ‘기억 꼴라주’ 작업 중 가장 큰 크기의 작품으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바탕에 깔려 있다. 기억 꼴라주란 여과되지 않은 기억의 단편을 모아보는 임지민 작가만의 작업 방식이다. 사진 이미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표현방식이 특징이다.

  그는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의 놀이치료를 소재로 삼아 작품을 구성했다. 할머니가 실뜨기, 색종이 접기 등을 하는 모습을 감명 깊게 봤다고 덧붙인다. 마치 아들을 잃은 슬픈 기억을 누르고 즐거운 기억으로 채워가는 모습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 단편을 모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에요. 숨겨져 있던 기억을 가시화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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