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신세계가 벅찬 노년층
세대 간 격차는 갈등의 도화선
실질적인 정보격차 해소 필요

최근 유튜버 박막례씨가 무인 주문기인 키오스크로 햄버거를 주문하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야 그거 먹으려면 돋배기 쓰고, 영어 공부 좀 허고, 의자 하나 좀 챙기고…” 몇 번의 시도 끝에도 결국 원하는 햄버거를 주문하지 못한 그가 전하는 말에서는 씁쓸함마저 느껴졌다. 정보화와 기술 발전은 사회구성원에게 편리함을 선물한다. 그런데 비약적인 기술 진보가 주목받는 현시대에 역설적으로 발전에 어려움을 겪는 세대가 있다. 바로 한국의 노년층이다. 정보격차와 디지털 부적응에서 비롯된 노인 소외를 알아보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에 실효성이 있는지 전문가와 살펴봤다.

  정보의 바닷속 고립된 노년층
  일반적으로 디지털 기기에 익숙지 않은 노년층은 소비시장에서 불리할 수 있다. 특히 키오스크 등 기존 체계와 다른 디지털 서비스는 이들의 어려움을 더한다. 인터넷과 애플리케이션으로 금융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은영 연구원(이화여대 연령통합고령사회연구소)은 급격하게 확산된 디지털 기기가 노년층의 경제활동을 제약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뱅킹, 카카오 뱅크, 사이버 주식 투자 등 온라인 금융거래는 일상이 됐죠. 하지만 노년층은 젊은 세대에 비해 인터넷으로 은행 업무를 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

  노화가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시력과 청력 그리고 정보 처리 능력이 떨어진다. 김용희 교수(광주대 심리학과)는 신체 능력 저하와 디지털 소외의 관련성을 언급했다. “인지 능력 저하에 따라 신체 반응 속도가 느려져 노년층과 청장년층 사이에 정보처리능력 격차가 벌어지죠.” 김범중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일반적인 노년층의 열악한 생활 배경과 부족한 IT 교육을 정보 격차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현재 70세 이상의 노년층은 대체로 학력과 소득 수준이 낮은 분이 많아요. 많은 노년층이 노후에 여가를 즐기거나 교육받을 기회가 부족한 상황이죠. IT 기술을 습득하는 교육도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결국 일상에서의 기술 발전이 일부 노년층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기술 변화가 주로 청장년층 관점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범중 교수는 많은 무인 시스템과 인터넷 결제 방식이 젊은 층의 편의를 우선한 점을 짚었다. “젊은 세대의 입장으로 노년층을 바라보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노년층을 존중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해요.” 김용희 교수는 소외계층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지적했다. “세대를 구분하고 자신의 목소리만 내세우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하다면 양극화와 소외현상은 계속될 수 있죠.”

  노년층에게 정말 힘이 됐을까
  박해광 교수(전남대 사회학과)는 노년층에게 정보통신서비스의 접근 및 활용을 위한 기본 권리가 존중되지 않는 상황을 지적하며 사회적 논의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정보격차는 기본 권리 차원에서도 문제가 되죠. 노인은 4대 취약계층 중에서도 정보에 특히 취약한 계층이에요. 따라서 노년층의 정보 소외는 인권의 가장 약한 고리에 해당하는 거죠.”

  정보격차로 인한 노인 소외는 사회적 문제로도 연결된다. 개인적으로는 무력감과 박탈감을 느끼게 되고 사회적으로는 세대 간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 김용희 교수는 노인 소외 현상이 심화되면 노인 범죄와 세대 간 불균형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경제활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없게 되면서 노년층은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났죠. 소외로 인해 생겨난 불만은 세대 간 갈등과 노인 범죄로도 이어질 수 있어요.”
최은영 연구원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소비시장에 주목했다. “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노인세대는 가장 큰 소비계층으로 떠오르고 있죠. 이런 시장에서 노년층을 배려하지 않는 마케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어요.” 노인 소외가 국가 경제 성장과 소비 활성화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격차와 디지털 부적응으로 인한 노인 소외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이 갖춰져 있을까. 정부는 개정된 「국가정보화 기본법」을 지난달 22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해당 법률 제31조에 따르면 국가와 지자체는 정보통신서비스에 접근하고 활용하는 것이 모든 국민의 기본적 권리이므로 정보격차 해소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외에도 해당 법률 제33조와 제35조에 각각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기술 보급과 정보격차해소교육 내용이 명시돼있다. 이렇게 정부는 노인을 포함한 정보 취약 계층이 정보를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전개했다.

  그러나 박해광 교수는 아직도 노년층을 위한 실질적 정책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KADO)이 한국정보화진흥원(NIA)으로 개편됐어요.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은 정보격차 해소가 주요 사업이었던 반면에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정보화 사업 전반을 맡게 됐죠. 다양한 정보화 사업 전반을 총괄하면서 정보격차 해소 정책의 비중은 비교적 줄었다고 볼 수 있어요.” 또한 그는 정책 대부분이 IT 기기 보급과 접근성 확대에 집중돼있으므로 본격적인 정보화 서비스 제공을 위해 가칭 ‘노인정보화센터’와 같은 전담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범중 교수는 복지 예산과 재정 문제를 지적했다.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인력과 예산이 마련돼야 하는데 한정된 복지 예산 중 재사회화를 위한 예산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예산을 확충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국민적 차원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노년층을 위한 기초 복지 예산과 의료 예산이 전체 복지 예산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요. 반면 노년층 교육 서비스를 위한 예산은 상대적으로 부족하죠. 관련 예산을 확충하려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먼저 이뤄지는 게 바람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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