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하나, 커피 한 잔도 그들에겐 첩첩산중
  • 노유림 기자
  • 승인 2019.02.2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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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아보며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일 중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며 무심하게 지나쳤던 경험이 있나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공감을 필요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이번 학기 기획부는 와 닿지 않았던 누군가의 일상을 생각하기 위해 작은 공간, ‘생각의자’를 마련했습니다. 생각의자의 첫 번째 주인은 ‘노년층’인데요. 외래어 표기 상품, 디지털 무인 주문, 깨알 같은 글씨…….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에서 노년층 생활 속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요? 소비시장 속 무심코 소외되는 노년층의 의자에 앉아 생각해봤습니다.
 

 

 

평균 연령 73.3세와
함께 걸은 하루

노년층이 겪는 다양한 불편
자칫 소외로 굳어질 수도


『논어』 위정편에서는 60세 나이를 이순(耳順)이라 칭한다. 천지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듣는 대로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요즘 시대의 노년층은 ‘천지만물’은커녕 햄버거 주문, 화장품 구매조차 만만치 않다. 소비시장에 만연한 디지털 문화와 외국어 남발 때문이다. 지난 21일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14.8%를 차지했다. 익숙지 않은 소비시장의 발전 속 그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주민등록증 잉크도 덜 마른 기자가 이순을 훌쩍 넘긴 세 명의 노년층과 동행했다.

사진 정준희 기자
사진 정준희 기자

 

  내 맘 같지 않은 선택
  ‘코리안 타임’이라는 단어가 있다. 약속 시각을 잘 지키지 않고 늦는 한국인의 시간관념을 비꼰 말이다. 하지만 기자는 이날 뜻밖의 ‘역 코리안 타임’을 맞게 됐다. 약속 시각 20분 전에 도착했지만 벌써 상대가 나와 있어 말을 거는 게 아닌가. “기다릴까 봐 먼저 나와 있었지!” 라광자(77), 강윤영(75), 윤정애씨(68)와 점심을 먹고 움직이려 했던 계획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시간을 보니 가기로 한 식당이 문을 열기엔 조금 일렀다. “가볍게 뭐라도 시키고 앉아있다 갈까요?” 나이 든 분들을 오래 서 있게 하고 싶지 않던 중 무심코 롯데리아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잠시 한숨 돌릴 요량으로 롯데리아를 방문했다.

  아직 한산한 매장 내에는 카운터 직원 대신 키오스크가 있었다. 키오스크는 터치스크린을 눌러 제품을 주문하는 기기다. 많은 식당이 이런 무인 주문을 늘려가는 추세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직 낯선 풍경이다. 키오스크 주문이 처음이라는 강윤영씨는 첫 화면 ‘주문하기’부터 망설였다. “결제는 여기서 하는 건가, 카운터에서 해야 하나?” 주문하기를 누른 후에도 그는 결제 수단이 나열된 화면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별도의 설명 없이 결제 수단을 골라야만 메뉴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메인 화면이 뜨자 주문하실 제품을 선택해달라는 음성 안내 메시지가 나왔다. 하지만 추천 메뉴 다섯 가지만 노출된 메인 화면에서 강윤영씨는 다른 선택지를 찾지 못했다. “메뉴가 적지 않아요?” “그러네, 적네.” 기자의 물음에도 그냥 수긍하고 넘어가는 반응이기에 기자가 대신 햄버거 카테고리를 찾아 눌렀다. 다양한 메뉴가 뜨자 그제야 원하는 답을 찾은 눈치다. “나는 안 해봐서 모르겠네. 평소에는 복잡하니까 그냥 안 해버려.”

  우여곡절 끝에 햄버거를 결제 목록에 담았다. 이제 카드 결제만 하면 되는데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 “이제 여기에 넣으면 되잖아.” ‘신용카드’ 결제 화면이 뜨자 강윤영씨는 고민 없이 카드를 바코드 인식기에 꽂아버렸다. 뭔가 잘못됨을 깨달은 기자가 겨우 카드 판독기를 찾아 꽂았는데 이번에는 결제 창이 종료됐다. 일정 시간 내 결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가 눈치준 것도 아닌데 대기하는 사람이 늘자 기자의 마음만 조급해졌다. 주문을 겨우 마치자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주 하는 사람은 쉬울 텐데. 나는 한 번도 안 해봐서 어렵네.” 1~2분 만에 주문을 끝낸 다른 사람들과 달리 강윤영씨가 햄버거 단품 두 개를 주문하는데 걸린 시간은 자그마치 8분이었다.

강윤영씨가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있다
강윤영씨가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있다

 

  그림 하나라도 있었으면
  식사 후 무심코 걷다 보니 혼자 앞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차, 싶어 걸음을 슬그머니 늦췄다. 그들의 걷는 속도에 맞추다 보니 평소보다 발 보폭도 좁아졌다. 천천히 걷다 H&B스토어의 일종인 롭스를 발견했다. “저기 가보셨어요?” 기자의 물음에 윤정애씨가 바로 대답한다. “안 가봤지. 내 나이가 몇인데.” 나이가 어때서. 이미 ‘2월 세일 기획행사’ 문구에 흥미가 동한 기자는 그들을 설득해 매장으로 발걸음을 들였다.

  H&B스토어는 의약품, 화장품 등 다양한 제품을 한 곳에서 판매하는 소매점이다. 최근 로드샵이 줄어듦에 따라 다양한 화장품 브랜드가 입점한 H&B스토어가 늘고 있다. 하지만 H&B스토어는 10대와 20대를 주 타깃층으로 삼는다. 제품 디자인 또한 그들에 맞춰질 수밖에 없어 노년층은 소비 진입장벽에 가로막히게 된다.

  장벽의 높이를 실감한 곳은 매장 내 핸드크림 진열대였다. 향기에 맞는 그림이 그려졌거나 한글 설명이 써진 제품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제품도 상당했다. 겉면에 빼곡히 영어만 써진 튜브형 핸드크림도 있었다. 윤정애씨는 겉면과 포장 때문에 제품 종류를 바로 알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치약 같기도 하고, 염색약 같기도 하네.” 종류조차 모르는데 특징을 바로 알기는 더 힘들다. 어떤 향인지 알겠냐는 물음에 라광자씨는 고개를 내저었다. “글씨도 작고 꼬부랑글씨라서 우리가 뭐 알 수가 있나.” 작게 라즈베리 향이라고 써진 글씨를 짚어드리자 그마저도 알아보기 어려워했다. 해당 제품은 향을 미리 맡아볼 수 있는 견본품도 없어 무슨 냄새인지도 모른 채 제품을 사야 할 상황이었다.

  함께 매장을 살피다 보니 어려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품 디자인 중 입구를 눌러 사용하는 펌핑 치약은 손 세정제와 헷갈리기 쉬웠다. 하단에 작게 적힌 ‘치약’보다 크게 영어로 써진 ‘펌핑’이 더 눈에 들어왔다. 캡슐 마스크팩 역시 종류가 여덟 가지나 됐지만 각 차이를 구별할 수 없었다. 제품을 넘겨받은 기자도 실눈을 뜨고 한참 들여다봐야 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노안이 온 게 아니다. 한글 설명이 워낙 작고 빽빽하게 적힌 탓이다. 설명하러 달려온 점원 역시 눈을 가늘게 뜨고 살폈다. 점원의 설명을 듣는 동안 쇼핑 한번 하고자 했던 그들의 입가에서 어느새 웃음이 없어졌다. “이거 계산해주세요.” 계산한 마스크 팩을 얼른 하나씩 쥐여 드렸다. 기자의 깜짝 선물에 그들의 표정이 도로 밝아졌다.

라광자씨가 마스크팩에 작게 써진 설명을 읽고 있다
라광자씨가 마스크팩에 작게 써진 설명을 읽고 있다

 

  누가 그들을 기다려 주나
  “이젠 어디로 가나?” 강윤영씨가 다음 일정을 물었다. 고민하던 중 식후 디저트 하나 안 먹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이 드신 분들이라 커피가 입맞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편견은 버리기로 했다. 카페를 가자고 자신 있게 제안했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탐앤탐스가 있어 목적지도 쉽게 정했다.
음료를 고르기 위해 짐을 내려두고 그들과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 너머 스크린 화면에 다양한 메뉴 목록이 떠 있었다. 기자를 제외하면 가장 막내인 윤정애씨가 여유 있게 말했다. “나는 카페라떼로 먹어야지.” 반면 다른 둘은 아직 음료 종류도 채 다 읽지 못했다. 스크린 화면의 빛 때문에 눈이 부셔 오래 보지 못할뿐더러 글씨 크기도 작은 이유에서다. 음료 이름도 대부분이 외래어였다. 한참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는 모습에 뒤에 있던 다른 손님에게 주문 순서를 양보했다. 이후에도 그들은 꽤 오랜 시간 메뉴를 읽고서야 주문할 수 있었다.

  주문한 음료를 받아든 윤정애씨가 얼음을 통째로 골라냈다. “이렇게 각 얼음을 넣어줘야 음료를 마시기 편한데. 저번에 갔던 다른 카페는 간 얼음을 넣더라고.” 이가 약한 노년층은 간 얼음이 든 음료에서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에 비해 각 얼음은 골라내기 편해 얼음 조각을 같이 마실 염려가 없다. 최근 몇몇 카페에서는 소비자가 얼음 크기와 정도를 고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단순 소비자의 기호라고만 생각했지 노년층의 불편과 연결된다는 점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날 하루는 청년 기자에게 간단한 소비생활이었지만 60세를 훌쩍 넘긴 이들은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글씨 크기가 노년층에게 문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새로웠다. 오늘 하루 가장 불편했던 점이 뭔지 묻자 윤정애씨는 알아보기 어려웠던 화장품을 언급했다. “제품을 예쁘게 디자인하려고 빨간 바탕에 검은 글씨를 작게 써두니 어렵지.”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라광자씨도 동조했다. “나 초등학교 입학하고 바로 6.25전쟁이 일어났잖아. 지금 70대 중후반 중에는 초등학교도 졸업 못 한 사람이 많은데. 그림도 좀 있었으면 좋겠어.” 글로벌 시대, 디지털 시대는 노인이 돼버린 이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지금 노년층이 겪는 불편이 소외 대물림을 낳지는 않을까. 기자의 50년 후를 떠올리며 씁쓸한 커피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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