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산당선언'(이하 선언)의 두 인용문에 대한 언급을 요청받았다. `모
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 `현대국가의 실행위원회는 전체 부르주아의 공
동집행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 이 유명한 문구에 대해 나에게 던져진 특별
한 질문은 "맑스주의 정치학의 계급이론은 환원론적인가"라는 것이다.내가
아는 한, 국가와 자본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있어 그 어떤 한원주의도 지
나치다고 할 수는 없다. 하물며 신자유주의 국가가 온건한 개량적 기능마저
도 철회하고 있고, 자본-국가간 공모관계가 19세기 이래 그 어느 시기보다도
뚜렷한 오늘날에야. 그러므로 선언에서 과도하게 환원론적인 부분은 없다고
본다.나는 인용문 중 특히 앞의 구절에 대해 다른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나는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계급투쟁이 `정치적' 투쟁은 아니라
고 생각한다. 사실, 이것이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자에게 부과하는 가장 큰 문
제거리 중 하나이다. 자본주의는, `정치적'이지 않으면서 순전히 `경제적'인
계급투쟁이 가능한, 역사상 전례가 없는 조건을 창출해낸 것이다.물론 `경제
적' 투쟁이 권력과 지배에서 분리될 수는 없다. 전(前)자본주의 사회에서는
, 경제적 착취와 관련된 갈등이 직접적으로 `정치적' 권력과 연관되었다. 그
러나 자본주의는 이런 갈등의 대부분을 새롭고 독립된 `경제적' 측면, 심지
어 작업장 내부로까지 이동시켰고, 그 `경제적' 측면은 자본의 힘이 국가의
강압적인 권력에 극단적으로 의존하고 있을 때조차도 `정치적인' 또는 `공적
인' 측면과는 절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자본주의는 이런 구조를 통해, 다른
조건에서는 정치투쟁이 될만한 갈등을 작업장 울타리 안에 가두고, `경제적
' 갈등으로 치환시킴으로써, 노동자들을 명확하게 분절화시킨다.
달리 말하면, 모든 계급투쟁이 정치투쟁으로 되는 것을 제약하는 바로 그 조건
이, 노동계급의 단결 또한 제약하는 것이다.그러나 선언의 정치적 전망이 비록
불완전하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발전 방향에 대해 다른 대목에서 말하고 있는
바는 깜짝 놀랄만큼 예지적이다. 실제로 선언의 예언대로 자본주의의 일반화
가 대체로 실현되는 한, 그리고 신자유주의 국가와 `세계화된' 자본간의 공
모관계가 점점 더 확연해지고 있는 한(환원론이 입증되었다) 경제적 계급투
쟁은 정치적 국면으로 옮아갈 것이며, 노동계급도 새롭고 전례없던 방식을
통해 통합을 이루게 될 것이다.자본은 축적과 `경쟁'의 조건을 유지하고 노
동규율을 보존하기 위하여 노동의 동원을 저지하는 한편, 자본의 동원은 강
화하기 위하여 국가를 필요로 한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란 사회적 틀로부터
국가의 철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된 국제시장에서 자본주의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국가개입의 새로운 형태, 일련의 적극적 정책
들인 것이다.따라서 국가에 대한 자본의 의존(심화)은, 반자본주의적 투쟁,
진정 사회주의적인 투쟁에 있어 새로운 기회로 전화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
각이다.
국가에 대한 자본의 의존은 국가를 다시 계급투쟁의 중요하고 집중된 초점으
로 만든다. 또 국가가 명시적으로 계급착취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은 계급의
조직화를 초래하게 된다.
즉, `국제화', `경쟁', `유연성' 등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여 다양한 나라에서
민중들이 가두로 진출한 예들은, 노동계급의 분파들이 공동의 적에 맞서 통합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인간의 얼굴을 지닌 자본주의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우리에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사회주의라 불리는 진정한 대안이 여전
히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