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그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에게 뜻깊은 울림을 주는 모양이다. 눈물 없이 볼 수 없었다는 감상평에서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그 시대의 가장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가끔 주위 사람을 통해서 혹은 TV를 통해서 역사로만 알고 있던 젊은 세대에게 이 영화는 우리에게 잊히지 않는 국가 위기 상황이 있었음을, 험난한 위기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 이들이 오늘의 우리를 다시 만들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국가적인 재난을 초래한 책임 있는 정치인이나 지도층은 어렵지 않는 말로를 보냈다. IMF 환란의 책임 있는 인사 또한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고구려를 멸망에 이르게 한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생은 당나라에 투항해 호의호식하다 죽어서도 유명한 북망산에 묻혔다. 배신자의 말로 치고는 호사다.

  우리 역사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의 피와 땀으로 쟁취했고 IMF 환란을 극복하는 책임 또한 언제나 그렇듯 국민의 몫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근 호사가들은 현재 대한민국이 유사 이래 가장 어려운 시 기라고들 한다. 올해 국내외 정치, 경제 등 여건이 녹록지 않으면서 희망을 말하기보다 과거를 추억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래서 영화의 울림이 더 커 보이는 것 같다.

  예측컨대 극장을 나서는 관람객들은 다시 한번 정부의 올바른 판단이 중요함을 상기하며 무능한 정부를 탓할지도 모른다. 사실 정부 또한 IMF 구제 금융을 피하고자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평가도 있을 뿐 아니라 IMF 사태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시 정부의 실정, 기업들의 과잉투자, 금융기관의 부실 등이 관례처럼 굳어져 터질 일이 그때 터진 것이니, 당시 관련된 사람들은 억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20년 전 IMF 위기를 통해 우리의 가치관은 송두리째 바꿨고 덕분에 한국 경제의 펀드멘탈은 한층 튼튼해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2018년 현재 IMF를 직접 경험했 던 이와 역사로만 아는 이 모두 다시 시험대에 올라설 것이다. 민주주의를 다수결의 폭력이라 했다. 그렇기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치란 존재할 수 없다. 단언하건대 정부의 정책이 개인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나도 같이 땀 흘리고 뛰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실패했다면 나 또한 그 책임의 일부임을 인정해야 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평가하는 것에 인색하다. 항상 책임을 지울 대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IMF 터널을 막 빠져나온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는 기적을 봤다.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다. 위기는 또다시 반복될 것이고 위기를 극복 하면서 조금씩 더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는 기회 앞에 놓이는 전치사 같은 존재다. 만약 지금이 위기라면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다. 필자는 묻고 싶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우리가 언제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냐고.

허선진 교수

생명자원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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