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광화문연가>

지나간 첫사랑을 떠올리는 추억 여행 뮤지컬
가수 이문세 불후의 명곡과 함께 재해석하다

 

여기, 연말을 따뜻하게 채워줄 뮤지컬 <광화문연가>가 있다. 가수 이문세의 대표곡 ‘광화문연가’에서 제목을 따온 만큼 가수 이문세의 명곡이 공연장 곳곳에 울려 퍼져 관객의 감성을 자극한다. 내로라하는 명품배우들의 호소력 짙은 연기와 감미로운 목소리는 또 어떠한가. 그러나 주목할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젠더프리 캐스팅’이다. <광화문연가>는 작년 초연에 이어 올해에도 ‘월하’ 역할에 성별이 다른 배우를 함께 캐스팅했다. 각각 남성 배우와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월하가 보여주는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지난주 두차례에 걸쳐 뮤지컬 <광화문연가>를 만나봤다.

  웃다가 울다가

  <광화문연가> 주인공은 임종까지 1분을 남긴 중년 ‘명우’다. 인연을 맺고 풀어주는 신비스러운 인물 ‘월하’는 명우가 첫사랑 수아와 함께한 1980년대로 그를 안내한다. 공연은 명우의 기억 속 첫사랑 일화를 하나씩 재현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1984년 봄 덕수궁 분수대 앞 고등학생 명우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뒤늦게 나타난 수아는 명우 앞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서 그림을 그린다. 자리를 옮겨 달라고 요구하는 명우와 쉽게 물러나지 않는 수아가 티격태격한다. 싸우면서 정든다 했던가. 수줍음이 많은 명우와 씩씩한 수아는 이내 생기롭고 달콤한 로맨스 주인공이 된다. 이를 지켜보던 월하가 유치하다고 놀리면 중년 명우는 “저 말은 기억이 잘 안 나요”하며 괜한 너스레를 떤다.

  이후 대학에 진학한 수아는 동지들과 학생 운동을 하다 경찰에 체포된다. 수아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인 명우는 이후 군대에 가버린다.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 피어나는 둘의 사랑은 가수 이문세가 부른 불후의 명곡들과 만나 더욱 애틋하게 전해진다. ‘옛사랑’, ‘붉은 노을’, ‘사랑이 지나가면’과 같은 뮤지컬 넘버는 중·장년층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이 공유하는 추억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특히 1부 마지막 장면에서 학생 운동을 하며 다 함께 주먹을 쥔 채 울부짖는 노래 ‘그녀의 웃음소리뿐’은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렬한 울림을 전한다.

 

인연을 맺어주는 ‘월하’ 역할에 남녀 배우가 함께 캐스팅됐다. 월하가 보여주는 무대 장악력은 가히 놀라웠다.  (사진 출처 CJ E&M)
인연을 맺어주는 ‘월하’ 역할에 남녀 배우가 함께 캐스팅됐다. 월하가 보여주는 무대 장악력은 가히 놀라웠다. (사진 출처 CJ ENM)

  누가 맡든 상관 無

  공연을 구성하는 메인 플롯은 젊은 시절 명우와 수아의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극을 이끌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뽐내는 월하다.

  성별이 다른 배우가 같은 역할에 함께 캐스팅돼 언론이 주목한 월하는 인연을 묶어주는 ‘삼신 할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신(神)’적인 인물이다. ‘삶은 난제였으나 죽음은 축제’라고 외치는 그는 중년 명우의 시간 여행을 인도해주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새하얀 옷에 흰 중절모를 쓴 그는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를 보여주는 한편 풍부한 표정으로 공연 전반을 관장한다.

  화요일과 목요일 공연에서는 각각 구원영 배우와 김호영 배우가 월하를 연기했다. 이밖에도 이석훈 배우를 포함해 총 세 명으로 캐스팅된 월하는 각각 색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구원영 배우가 보여준 월하가 ‘파워풀한 디바’ 느낌이라면 김호영 배우가 보여준 월하는 ‘유쾌한 바람잡이’처럼 보였다. 특히 노래 ‘깊은 밤을 날아서’를 열창하며 익살스레 골반을 튕기는 김호영 배우는 ‘무대 위를 날아다닌다’는 표현이 꼭 어울렸다.

  이처럼 두 배우가 인물을 표현해낸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두 배우의 서로 다른 성별이 불러온 괴리감은 없었다. 3500살 먹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공연 중에서 각각 다르게 불렸을 뿐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극을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두 월하는 결코 다른 인물이 아니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마지막 시간여행을 축제처럼 신나게 이끄는 월하는 진지함과 웃음을 넘나들며 관중을 사로잡는다.

  아직은 생소한 그 단어

  공연 관람 후 인상 깊었던 등장인물을 묻는 말에 돌아온 관객 대답은 단연 ‘월하’였다. 그들은 모두 입을 모아 월하가 보여준 뛰어난 가창력과 유쾌함을 칭찬했다. 그러나 젠더프리 캐스팅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본다는 답변이 많았다.

  <광화문연가> 홍보마케팅팀 정다영 담당자는 젠더프리 캐스팅에 대해 잘 모른 채 관람하는 관객이 대다수라고 말한다. “<광화문연가>의 주요 관람객이 중·장년층이다보니 젠더프리 캐스팅에 대해 알고 오시는 분은 상대적으로 적어요. 여기에 대해서 설명해드리면 신기하다는 반응이 돌아오죠.” 실제로  월하 역할에 여성 배우와 남성 배우가 함께 캐스팅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조차 ‘젠더프리 캐스팅’을 생소한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직 <광화문연가>에서만

  지나간 사랑에 대한 여운이 마음 한구석 가득히 자리 잡고 있는가. 공연은 혹여 그렇대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그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내버려 두듯이.”

(‘옛사랑’ 中)

 

  중년 명우는 관객에게 담백한 어투로 말을 건넨다. 중년 수아 역시 애절한 눈빛으로 지나간 인연에 대한 가슴 먹먹함을 노래한다.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사랑이 지나가면’ 中)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듯한 친근한 노래와 서정적인 가사 그리고 멜로디는 작품 속 인물과 함께 숨을 쉰다. 이 호흡은 공연 막을 내릴 때까지 객석과 함께한다. 마지막 커튼콜 시간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발을 구른다. 배우와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 모두 오른손으로 허공을 찌르며 ‘붉은 노을’을 따라 부르자니 온몸에 전율이 인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후끈한 콘서트 현장에 국민가수 이문세가 빠졌다는 사실 정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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