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더데빌>

선택의 기로에 선 당신에게
빛과 어둠의 유혹

선과 악은 인간의 양쪽에 서서 대립하며 인간을 선택에 기로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뮤지컬 <더데빌>의 주인공 ‘존 파우스트’ 역시 한 인간으로서 같은 고민을 하는 존재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뮤지컬 <더데빌>을 만나봤다.

  빛도 어둠도 인간의 선택

  존 파우스트는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잘나가는 주식 브로커다. 그는 아름다운 연인 ‘그레첸’과 행복한 나날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주가가 대폭락했던 블랙 먼데이 이후 파우스트의 삶에는 불행이 드리워졌다. 실의에 빠진 파우스트 앞에 각각 선과 악을 상징하는 ‘X화이트’와 ‘X블랙’이 나타나 파우스트를 걸고 내기를 한다.

  X블랙은 파우스트에게 재기를 약속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파우스트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것을 퇴색시킬 시 그것을 가져가겠다고 말이다. 그레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는 X블랙과 더욱 가까워지고 그의 ‘가장 아름다운 존재’ 그레첸은 점점 고통 속에 빠져 간다.

  파우스트의 복잡한 심정과 파우스트를 바라보며 울부짖는 그레첸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1부가 금세 마무리된다. X블랙과 X화이트의 팽팽한 대립과 파우스트의 고뇌로 이어지는 2부 역시 자연스레 극 중 인물에 몰입하게 하는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로 채워진다.

  예로부터 선과 악의 대립은 인간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X블랙과 X화이트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파우스트의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나라면 X블랙을 거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거부할 수 없는 낯섦

  국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락 장르의 넘버와 클래식한 넘버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더데빌>은 다양한 선율로 귀를 즐겁게 해준다. 종교적 은유와 인간 본질에 대한 고민을 담은 가사도 <더데빌>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대사가 거의 없이 노래를 중심으로 공연이 진행되기 때문에 가사를 음미할수록 극의 아름다움을 깊이 느낄 수 있다.

  코러스와 라이브 밴드 역시 빠질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극 전반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6명의 코러스는 절도 있는 안무와 노래로 작품을 풍성하게 채운다. 그들은 무대 위 공간을 적절하게 활용하며 관객을 더욱 몰입시킨다. 라이브 밴드는 생생한 음악으로 관객이 극과 함께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특히 바이올린 소리는 관객을 긴장하게도, 슬프게도 하며 여러 감정을 이끌어 낸다.

  무대 구성 또한 인상 깊다. 무대 중앙에 크게 설치된 X자 모양의 구조물을 기준으로 무대의 1층과 2층이 나뉜다. 배우들은 구조물을 오르내리며 무대를 누빈다. 무대 위 소품은 많지 않았다. 그리 큰 규모의 무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꽉 찬 느낌을 받는 데에는 무대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조명의 힘이 컸다.

  일반적으로 조명이 배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라면 <더데빌>에서는 조금 달랐다. 극 중 인물들이 무대 위로 내리는 빛을 직접 ‘만지며’ 연기해 새로운 종류의 시각적 자극을 제공한다. 다채로운 색감과 역동적인 움직임의 조명은 무대를 넓어 보이게도 좁아 보이게도 하며 극의 상황에 집중할 수 있게 돕는다.

프레스 콜에서 'X블랙'을 맡은 차지연 배우(위)와 '존 파우스트'를 맡은 장지후 배우(아래)가 열연하고 있다.
프레스 콜에서 'X블랙'을 맡은 차지연 배우(위)와 '존 파우스트'를 맡은 장지후 배우(아래)가 열연하고 있다.

  불친절이 환영받는 이유

  초연과 재연에 이어 3연째 상연되고 있는 뮤지컬 <더데빌>은 그간 크고 작은 변화를 거쳐 왔다. 기존에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하던 X 역할이 이번에는 화이트와 블랙으로 나뉘어 두 명의 배우가 연기한다. X화이트와 X블랙은 서로 극명히 대비되는 색의 옷을 입고 등장해 인물 간 대립을 시각적으로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인물의 상태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의상 또한 주목해볼 만한 요소다.

  대사보다는 음악과 무대 구성 중심으로 진행되는 만큼 <더데빌>은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모든 음악을 귀 기울여 들을 노력과 구성의 변화를 잡아낼 수 있는 예리함이 필요하다. 이야기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3연까지 공연될 정도로 <더데빌>이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데빌>의 인기에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개성 강한 배우들의 열연이 한몫한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유약함을 표현하는 파우스트와 그의 연인 그레첸은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특정한 인간상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X화이트와 X블랙의 경우에는 배우의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다. 서로 다른 배우들이 각기 다르게 구현해내는 X의 매력에 빠진다면 작품을 한 번만 보고 끝내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젠더프리 캐스팅’ 또한 주목해볼 만한 요소다. X화이트와 X블랙 역할에는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배우를 캐스팅하는 젠더프리 캐스팅이 이뤄졌다. 이전까지는 남성 배우들이 X의 역할을 맡아왔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여성 배우인 차지연 배우가 X를 맡았다. 이로 인해 관객들은 남성으로만 표현됐던 X에서 벗어나 성별에 속박되지 않은 ‘선’과 ‘악’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더데빌>은 젠더프리 캐스팅에 이어 ‘캐릭터 크로스’도 시도했다. 한 배우가 두 배역을 연기하는 것을 ‘캐릭터 크로스’라 한다. 특히 차지연 배우는 젠더프리 캐스팅에 이어 X블랙과 X화이트의 역할을 동시에 맡아 열연하며 캐릭터 크로스의 주인공이 됐다. 임병근 배우와 이충주 배우도 캐릭터 크로스로 참여한다.

  다양한 캐스팅의 <더데빌>을 즐기기 위해 여러 번 관람한 관객도 있었다. 관객 이예람씨(22)는 X가 선과 악의 상징인 만큼 배우의 성별이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배우의 성별에 따라 인물의 매력을 다르게 느꼈다기보다 각 배우의 색깔을 선명하게 살린 캐릭터에 차이점을 느꼈어요.”

  아직 끝이 아니다

  몽환적이고 독특한 분위기, 난해하다 느낄 수 있는 극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더데빌>의 객석은 여전히 관객으로 가득 차 있다. 관객들은 <더데빌>의 생소하지만 개성 강한 음악, 선명한 캐릭터, 독특한 작품 구성에 환호한다.

  선과 악에 관한 고전의 메시지는 힘이 크다. <더데빌>에서 『파우스트』의 신과 메피스토펠레스는 X화이트와 X블랙으로 환생했다. 선과 악은 지금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선택의 고민에 빠질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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