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 脫脫(탈탈) 털어버리고
  • 신혜리 기자
  • 승인 2018.11.26 02:4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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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받은 아름다움 벗어나기

중세 시대에는 여성의 허리를 끈으로 조여 잘록하게 만드는 코르셋이 유행했습니다. 당시 비정상적으로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이 아름다운 여성의 기준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여성은 사회가 원하는 ‘여성스러움’을 충족하기 위해 장기가 뒤틀리는 고통에도 코르셋을 벗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화장과 하이힐 등 ‘예쁘기 위해 불편했던’ 코르셋을 벗겠다는 ‘탈코르셋’ 운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탈코르셋 운동의 배경과 의미, 전망을 알아봤습니다. 

 

더 이상 ‘백설공주’는 없어

꾸미지 않을 자유를 추구하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왕비가 묻는다. “백설공주님이 제일 예쁘십니다.” 남성의 목소리를 한 거울이 답한다. 동화 속 백설공주는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에 장미꽃보다 붉은 입술을 갖고 있다.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동화 속 공주처럼 아름다워야 함을 강요받는다. 꾸밈노동에서 벗어나고자 여성들은 립스틱을 부러뜨리고 하이힐과 미니스커트를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탈(脫)코르셋’이라는 이름으로 확산되는 이 운동은 말 그대로 ‘코르셋’을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보고 탈피하자는 뜻이다. 탈코르셋 운동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이를 실천하는 대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탈코러가 되기까지

  탈코르셋은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불리는 만큼, 페미니즘을 표면적으로 응원하고 알리는 수단이 된다. 하유진 학생(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은 탈코르셋이 페미니즘을 사회 관심사로 떠오르게 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 방법이라 생각해 관심을 갖게 됐다. “탈코르셋은 남성이 생각하는 ‘여성’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행동이잖아요. 효과적이면서도 페미니즘을 시각적으로 알릴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했죠.”

  엄혜경 학생(충남대 무역학과)도 페미니즘 실천을 위해 탈코르셋을 시작했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어요. 문득 긴 머리를 손질하고 공들여 화장하는 제 모습이 모순적으로 느껴졌죠. 탈코르셋을 통해 함께 싸우는 여성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어요.”

  SNS에서 탈코르셋 운동을 접하고 관심을 가진 경우도 있다. 이상민 학생(충남대 사회학과)은 SNS를 통해 현 사회의 여성을 옭아매는 틀이 과거의 전족이나 코르셋과 다름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봄에 트위터에서 탈코르셋을 접했어요. 이전까지는 화장, 옷, 말투 등이 사회적 여성성을 답습하고 고착화하는 것이라고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죠. 그래서 탈코르셋을 결심했어요.”

  나를 찾는 첫걸음

  사회 속 여성을 규정짓는 수많은 코르셋이 존재하는 만큼, 탈코르셋을 실천하는 방법도 개인마다 다양하다. 화장을 하지 않고 민낯으로 다니기도 하고 긴 머리를 자르거나 불편한 옷과 구두를 버리기도 한다. 화장한 얼굴과 긴 머리, 짧은 치마와 하이힐이 사회 속에서 ‘여성의 것’이라고 구분되는 대표적인 특질이기 때문이다.

  이상민 학생은 탈코르셋을 실천하기 위해 가장 먼저 몸에 달라붙는 불편한 옷과 치마, 구두를 벗어 던졌다. “처음에는 굽 높은 구두를 신지 않기 시작했어요. 그러고는 치마와 짧은 반바지도 입지 않았죠. 점차 제가 대상화되지 않는 옷을 찾아 입었어요.” 이어서 그는 화장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원래 새벽에 편의점을 갈 때도 화장하고 나갈 정도로 외모에 신경을 썼어요. 하지만 탈코르셋 운동을 하면서 점차 사회적 여성성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죠.” 그는 점차 눈에 바르는 아이섀도 개수를 줄여가면서 눈 화장을 그만뒀다. 그 다음에는 피부 화장을 그만뒀고 이제는 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다.

  박강희 학생(충남대 식품영양학과)은 현재 투블럭 머리 스타일이다. 그는 긴 머리에서 언더컷으로, 언더컷에서 단발로, 단발에서 숏컷을 거쳐 투블럭까지 점차 머리를 짧게 잘랐다. “탈코르셋에 동참하기 위해 머리부터 자르기 시작했어요. 머리 길이가 짧아지니 자연스레 화장도 그만두게 됐죠.” 이외에도 가슴을 조이는 브래지어를 벗어 던지며 노브라를 실천하는 학생도 있다.

  학생들은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실천에 옮기기 힘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하유진 학생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화장을 놓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사람들에게 세련된 인상을 주기 위해 화장을 했어요. 그 이미지가 깨질까 봐 혹은 자기관리를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화장을 완전히 놓기까지 시간이 걸렸죠.”

  한편 외부의 요구로 화장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화장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A 학생은 남성 직원과 다르게 색조 화장을 요구받는다. “주력 상품이 화장품인 곳에서 직원이 색조 화장을 하지 않으면 신뢰도를 낮출 수 있다는 말에 어느 정도 동의는 해요. 하지만 남성 직원은 입술을 붉게 칠하지 않고도 틴트를 잘만 설명하죠.” 그는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지만 색조 화장과 브래지어 착용은 유지해야 했다.

  완전히 탈바꿈한 삶

  탈코르셋에 관심을 갖고 실천한 이후 엄혜경 학생은 삶의 질이 높아졌다. “2시간이나 걸리던 준비 시간을 30분으로 단축했어요. 화장이 지워질까 신경 쓰지 않게 되면서 행동반경도 넓어지고 자유로워졌죠. 옷차림을 바꾸니 소화불량, 위염에서도 멀어지게 됐어요.” 그는 탈코르셋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편한 삶을 찾을 수 있었다.

  탈코르셋을 실천하면서 자신을 보는 기준이 달라진 학생들도 있다. “항상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생각해 사회적으로 미의 기준에 맞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감출지 고민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어요. 코르셋을 벗으니 타인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앞으로 성취할 것에 관심을 갖게 됐죠.” 하유진 학생은 자신에 대한 평가를 멈추고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됐다.

  박강희 학생은 더 이상 대상화되거나 평가당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지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았을 뿐인데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확연하게 느껴요. 더 이상 화장을 하지 않은 날에도 초췌해 보인다는 말을 듣지 않는 삶을 살고 있죠.”

  #탈코르셋_인증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탈코르셋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 트위터에는 탈코르셋 인증 계정이 생겼고 인스타그램에 탈코르셋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은 11000여 개에 달한다.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으로 탈코르셋 운동을 지지하는 유튜브 영상은 게시한 지 사흘 만에 조회 수 50만을 넘었다. 다양한 인증 물결은 그들이 연대하여 상승효과를 거두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A 학생은 탈코르셋을 실천한 사람들을 보며 연대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탈코르셋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선 유튜버를 보며 동지애를 느끼고 화장을 하지 않은 친구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을 보며 스스로를 사랑할 힘을 얻어요.” 그는 자신의 모습도 누군가에게 탈코르셋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상민 학생은 연대를 통해 탈코르셋 운동이 더 활발해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를 포함한 많은 여성이 탈코르셋을 실천한 모습을 온·오프라인에 활발하게 알리고 있어요. 그 영향으로 머리를 자르거나 화장품을 버리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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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ㄹ 2018-12-06 19:04:58
잘 읽었습니다 늘 연대합니다
특히 박강희님 인상깊네요

김가연 2018-11-28 11:37:13
좋은 글이네요 :)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