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유행에 뒤처지는 것 같나요? 수업 들으랴, 아르바이트하랴 너무 바빠 무엇이 유행하는지 잘 모르겠다고요? 그럼 ‘요즘 것들’을 주목해주시죠. ‘요즘 것들’이 아는 '요즘 것들'을 소개해드립니다. 요즘 것들만 알아도 당신은 유행 선도자! 이번주 주인공은 바로 ‘성인용품’입니다. 최근 번화가를 중심으로 성인용품매장이 대거 들어서고 있는데요. 기존에 부끄러운 것, 민망한 것으로만 치부됐던 성인용품이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예쁘고 친근한' 성인용품이 궁금하다면 '요즘 것들'을 주목해주세요!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SM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사디즘(Sadism)과 마조히즘(Masochism)의 줄임말인 SM은 가학과 피가학을 의미한다. 이처럼 영화는 은밀한 성적 판타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굿즈’를 파는 공간에 다녀왔다. 이제는 거리 어디서나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성인용품점이다. 과거보다 180도 확 바뀐 성인용품점 ‘몬스터창고’ 이대점을 매장 직원 윤해니 매니저(24)와 함께 둘러봤다.

  입문자이신가요?

  입술을 질끈 문다. 제자리를 몇 번 서성이다 심호흡을 한다. “어서 오세요. 연락 주셨죠?” 쭈뼛대며 들어간 성인용품점은 크지 않지만 없는 게 없는 잡화점 느낌이다. 천장에 달린 조명이 어느 때보다 밝다. 매장 안에는 최신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 사방에 놓인 낯선 물건에 기가 죽었지만 이 순간 이리저리 움직이는 동공만큼은 ‘물 만난 물고기’다. 

  저마다 다른 크기의 분홍색과 보라색 도구들이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성 자위기구인 ‘바이브레이터’다. 작은 조약돌처럼 생긴 제품부터 남성 성기를 본떠 만든 제품까지 눈길을 끌 만하다. “여성 입문자가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건 작은 바이브레이터예요.” 윤해니 매니저는 바이브레이터를 작동시켜 보이며 설명을 덧붙인다. “리모컨으로 조종 가능한 제품이 잘 나가는 편이에요. 무선인 데다 충전식이고 생활방수도 가능하죠.”

  남성 자위 기구는 크게 자동과 수동으로 나뉜다. 원통형으로 된 자동 기구의 경우 버튼을 누르면 진동이 시작된다. 또 다른 버튼을 누르면 여성 신음이 함께 터져 나오는 제품도 있다. 수동 기구 중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제품은 무엇일까. “‘명기의 증명’이라는 제품이 잘 나가는 편인데요. 일본 AV 배우 질 내부를 촬영한 모습을 본떠 제작한 제품이에요. 배우마다 시리즈가 다양해 취향별로 찾는 분도 있죠.” 1회용 자위 기구도 있다. “보통 일회용 제품으로 나오는 ‘텐가’의 경우 컵 형태로 돼 있어요. 부드러운 실리콘 재질로 내부에는 돌기가 있어 귀두 부분을 자극해요.” 

  혼자보다 함께일 때 빛나는

  반대편 진열대에 낯익은 제품이 보인다. 혼자보다는 함께일 때 유용한 기구다. “편의점에서 팔지 않는 콘돔도 있나요?” 수줍게 묻자 윤해니 매니저는 몸을 돌리더니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한다. “특수 콘돔의 경우 돌기가 더 돌출돼 있어요. 여기 보시면 손가락에 끼우는 콘돔도 있죠.” 콘돔 내부에 마취 성분이 들어있어 둔감하게 만드는 ‘사정 지연 콘돔’도 있다.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효자’ 상품이다. “이 중에서 추천해줄 만한 콘돔이 있나요?” 쭈뼛대며 묻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는다. “평소엔 어떤 제품 쓰시는데요?” 아뿔싸. 예상치 못한 질문에 숨이 턱 하니 막혀온다. 

  오른쪽을 보니 남성 성기에 끼우는 ‘링’과 ‘발기 콘돔’이 눈에 띈다. “성기에 링을 끼우면 피가 몰려 사정을 지연하거나 강직도를 유지할 수 있어요. 발기 콘돔의 경우 실리콘 재질로써 성기가 작을 경우 끼워서 크기를 키울 수 있죠.” 남성을 위한 확장기도 존재한다. 링이나 발기 콘돔을 통해 충분한 효과를 누리지 못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회생 카드다. “공기 주입을 통해 성기를 확장하는 장치에요. 주로 중·장년층이 찾으세요.”

  아찔한 감각의 향연  

  러브젤은 피부 표면을 미끄럽게 해 애무나 삽입을 돕는 젤이다. 로션처럼 수용성과 지용성으로 나뉘어 있는 러브젤은 신체 어디에 바르든 크게 상관없다. 그러나 신체에 직접 닿는 만큼 성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윤해니 매니저는 질염을 유발할 위험이 있는 글리세린이나 파라벤과 같은 성분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 인터넷에서 러브젤의 구성성분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진 적 있어요. ‘아스트로 글라이드’가 산부인과에서도 추천해주는 제품이죠.” 이외에도 펜처럼 돌려 사용하는 1회용 젤부터 신체에 바르면 온도를 높여주면서 민감도를 향상하는 ‘핫젤’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직접 손등 위에 핫젤을 발라봤다. 생각보다 피부가 번질거렸는데 조금씩 가열되는 게 느껴졌다.

  관계를 즐기는데 촉각만큼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후각이다. ‘화이트 머스크’ 향이나 ‘일랑일랑’ 향을 첨부한 핫젤도 있다. 일랑일랑은 자연 최음제 효과를 가지고 있어 유럽에서는 첫날밤 향료로 쓰이는 식물이기도 하다. 핫젤 바로 옆에는 페로몬 향수가 놓여 있다. 자주색 향수의 뚜껑을 열어 코끝에 대본다. 진하고도 매혹적인 냄새가 훅하고 후각을 자극한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아찔해지는 향이다. 


 50가지 그림자의 세계  

  매장 깊숙한 곳 쇠창살이 드리워진 공간이 있다. “이쪽은 BDSM 제품을 진열해놓은 공간이에요.” ‘BD(본디지)’는 구속과 신체결박을, ‘SM’은 가학과 피가학을 의미한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건 단연 채찍이다. 채찍들이 진열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봤던 남자 주인공의 비밀스러운 진열장이 떠오른다. “목줄과 패들도 있어요. 회초리처럼 여러 갈래로 나뉜 채찍도 있고 말을 다룰 때 쓰는 짧은 채찍도 있죠.”

  끈과 테이프를 통해 구속 플레이를 즐길 수도 있다. “이건 접착력이 거의 없는 테이프에요. 서로 들러붙는 제품인 만큼 몸에서 뗄 때는 별로 아프지 않죠.” 원하는 손님에 한해 수갑을 직접 차볼 수도 있다. 향기가 나는 수갑을 비롯해 찍찍이로 된 수갑도 있다. 마치 금기의 영역에 들어온 느낌이다. 그러나 윤해니 매니저는 많은 커플이 BDSM 제품을 구매한다고 말한다. “한 커플은 내기를 해서 지는 경우 서로 벌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코스튬도 볼 수 있을까요?” 윤해니 매니저는 곧장 몸을 돌려 코스튬 진열대로 성큼 걸어간다. “교복과 제복을 비롯한 바니걸, 간호사 복장 등 다양한 컨셉의 옷이 있어요. 그중 메이드복이 가장 인기가 많아 종류도 많은 편이에요.”  

  이제는 어둡지 않아요!

  성인용품 매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서 든 느낌은 ‘친근함’이었다. 최근에는 지상 건물 전체를 꾸민 성인용품점도 등장했다. 성인용품점을 화장품 가게로 헷갈려 들어오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이렇다 보니 이곳을 찾는 사람의 유형도 정해져 있지 않다. “남성과 여성, 커플과 싱글, 청년과 중·장년층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요. 지나가다 우연히 들러 처음 방문하게 된 손님도 많죠.”

  최근에는 SNS나 미디어를 통한 홍보가 성인용품점 양지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SNS에 이색 데이트를 검색해서 찾아오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젊은 층 사이에서 부담 없이 방문하려는 심리가 생긴 것 같아요.” 성인용품 대중화는 그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성(性)문화를 개방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에는 콘돔을 소지한 사람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곤 했잖아요. 하지만 요즘에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죠. 그만큼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오지랖’이 줄어든 사회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물론 성인용품이 당당히 거리로 나오는 현상에 대한 볼멘소리도 존재한다. 일부 학부모는 성인용품점이 자녀 교육에 끼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한다. 이에 대해 윤해니 매니저는 성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걱정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다 알게 되지 않을까요? 미리 걱정할 시간에 건전한 성(性)인식을 정립할 수 있는 교육을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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