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는가? 나는 나의 삶의 주인인가? 

  미 노예제에 대한 해묵은 비판에 한참 앞서, 우리는 자신에게 종속된 노예를 자처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한다. 즉 본인을 스스로 노예처럼 부리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의 노예제도 나쁘지만, 최악의 노예제는 바로 본인을 노예로 삼는 일이다. 다만 우리는 그 위험성을 쉽게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서두의 물음에 자가진단을 하기 위한 첫걸음은 삶의 종반에 ‘자신의 삶이 썩 행복했었는가’라는 자문을 해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정작 나의 행복은 무엇인지, 내가 왜 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 그리 많지 않다. 

  어릴 적 마음속에 ‘장래희망’이라는 작은 꿈을 품고 살던 우리는 좋은 대학, 직장, 이후에는 좋은 배우자 등 여러 작은 목표의 굴레로 조금씩 타성에 젖게 됐다. 하지만 그 굴레에 취해버리자, 우리는 늙어서 이 모든 작은 목표들을 이룬 뒤에 삶의 저편에 ‘어떻게 생긴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가늠키 어려운 상황에 빠질 위험을 안고 살게 됐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는지로부터 나오는데 말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왜 공부를 하고, 그 이후로는 왜 일에 시달려야 하는지 뚜렷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끊임없는 목표를 끊임없이 해결하느라 인생의 결론이 과연 존재하는지조차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한편으로 그런 가련한 사람 중 일부는, 이러한 삶에 반기를 드는 나와 같은 사람을 향해 사회 경험의 일천함을 들어 타박하면서 자신이 왜 이런 힘겨운 삶을 살 수밖에 없는지 설파하기도 한다. 내 생각을 고쳐 보이고 싶다면 그 방법은 간단하다. 『Walden, 숲 속의 생활, 숲 속의 가르침』을 읽어보고, 내 앞에서 나의 이 스승을 벌거벗기면 된다.

  누군가가 그런 가여운 일을 구태여 해내기 전까지 나는 이 책이 내게 옳은 삶의 방향을 가르쳐 줬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에게 ‘YOLO’는 그다지 달갑지 않다. 인생은 단 한번 뿐이니 현재 이 순간을 즐겨야 하는 쪽으로 삶의 노선을 잡아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삶의 태도야말로 물질에 굴복하는 첫걸음이다. 오히려 인생은 단 한번뿐이니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내면적 성찰만이 내 최대 의무이다. 

  따라서 나는 좋은 옷과 차가 부럽지 않다. 살아가는 데 있어 진정 중요한 것은 낡은 옷을 입고, 오래된 집에서 지내며 썩 좋지 못한 차를 타도 얼마나 밝게 자신 스스로 내면을 가꿔낼 수 있는지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이 책을 읽는다. 읽고 또 읽는다. 사람이 만든 모든 물질에 지나치게 시달리느라 나의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고자 한다.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김응엽 학생

영어영문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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