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문신은 금기시돼왔다. 문신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는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유교·한문 문화권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이는 현재 한국에서 문신을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비의사의 문신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아시아의 문신 금기 흐름 이 어디서 왔는지 역사적 기원을 짚어 봤다.

  조현설 교수(서울대 국어국문학과)는 동아시아에 퍼진 문신의 부정적 이미지가 화이론 이데올로기에서 왔다고 본다. 화이론 이데올로기는 ‘중화’를 받들고 외부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주나라를 높인다는 ‘존주론’과 같이 쓰인다. “주나라 때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조성되기 시작했어요. 동이족 국가인 은나라를 몰아내고 건국된 주나라는 은나라를 부정하기 위해 동이족의 열등함을 강조했어요. 이 과정에서 동이족이 가진 문신 풍조 를 열등성의 표상으로 봤죠.” 주나라는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해 동이족뿐 만 아니라 다른 소수민족이 행하는 문 신 행위를 어리석음으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문신은 ‘동아시아 문명의 선도자인 중화민족’ 의 문화가 아니라 ‘열등한 사방에 있는 오랑캐’의 풍속으로 규정됐다. 중세시대를 지나면서 화이론 이데올로기는 보편성을 획득해 동아시아 문명권 안에서 통용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문신은 열등한 가치로 치부됐다.

  하지만 문신은 특정한 지역의 특수 한 문화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인 문화 현상이었다. 조현설 교수는 문신이 열 등함의 표시가 아니라고 말한다. 문신에는 종족이나 신분 표시 같은 집단적 욕망이 투사돼있다. 동시에 아름다움 을 표현하려는 미적 욕망이 담겨 있다. “문신은 사회적 의무이자 집단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징표였어요. 하지만 화이론 이데올로기로 인해 문신이 어리 석고 미개한‘오랑캐’의 습속으로 규정됐죠. 문신이 본래 갖고 있던 문화적 맥락을 잃고 어리석음과 악행의 표상 으로 재탄생하게 된 거예요.”

  동아시아에서 형성된 부정적 이미 지에 더해 유가적 신체관은 문신을 패륜적 행위로 규정했다. 조선시대에 주자학을 국가의 기본 방침으로 삼으면 서 유가적 신체관이 퍼지기 시작했다. 유가적 신체관은 인간의 몸이 부모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다치지 않게 보살피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관념이다. 주자학이 조선에 뿌리내리면서, 몸에 의도적으로 상처를 내서 새기는 문신이 불효로 낙인찍힌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새로운 세대는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유가적 이데올로기 틀에 갇혀 바라보지 않는다. 몸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보고 스스로의 욕망에 따라 주체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대상이라 여긴다. 조현설 교수는 문신을 부정적인 행위로 만들어온 담론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문신이 개인의 선택과 취향의 차원으로 논의되고 있 다고 말한다.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화이론 이데올로기에서 시작되고 유가적 신체관의 지배력 아래에서 강화됐어요. 두 담론이 현대 사회에서 힘을 잃으면서 문신을 금기시하는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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