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온갖 미디어 매체에서 ‘4차 산업혁명’을 외쳐대는 시대가 왔다. 스마트폰, 이 작은 것을 통해 세상의 온갖 소식을 알 수 있다는 것에 놀랐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단순히 통신 수단을 넘어 우리의 삶의 곳곳에 침투했다. 디지털화를 통해 삶이 한층 더 편해지고 윤택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은행 업무를 볼 때도, 영화를 예매할 때에도 우리는 침대에 누워 단지 몇 번의 ‘탭’을 통해 모든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앞으로는 여기서 더 나아가 모든 일을 인공지능이 대신해준다고 하니 눈부신 기술 발전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에는 점점 사람보다 기계를 마주하는 일이 많아지게 됐다. 물론 예전처럼 무작정 기다릴 필요도 없고 기계가 빠르게 일을 처리해주니 ‘빨리빨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발전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더욱 ‘편리한 생활’을 제창하는 기술 발전의 이면에는 삶이 더욱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바로 ‘노인’들이었다.

  모순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이 더 빠르게 돌아갈수록 젊은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노인들은 절망했다. 젊은 사람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영화 티켓 한 장도 예매하기 힘든 세상이 됐다. 또한 최근 무인 계산대가 도입되면서 이제는 음식점에서조차 그들은 눈치를 보게 됐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노인에 대한 디지털 소외 현상이 더더욱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스마트폰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곤 하지만, 이 또한 배울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갖춰졌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요즘 팔순이 넘으신 우리 할머니께서는 친구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는 일에 푹 빠져계신다. 이제는 당신 스스로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에 큰 재미를 느끼신 듯하다. 스마트폰을 사드린 지 근 1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할머니께서는 늘 ‘너거들이 옆에 붙어서 갈쳐 주니까 이래 하지, 아이면 몬한다!’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하나를 알려드려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당신의 모습을 자책하면서 하시는 말씀이었다. 이것이 비단 우리 할머니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인들에게는 그마저도 배울 시간이 없으니, 노인에 대한 교육만이 능사는 아닌 듯하다.

  나 또한 음식점의 키오스크 앞에 서서 이것저것 눌러보다 머쓱함을 느낀 일이 종종 있다. 이럴 때면 빠른 발전 속도에 뒤처져 소외되는 대상이 다음에는 내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빠른 시대 변화에 발맞춰 혁신이 일어난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의 발달 속도에 맞춰 사회 제도적인 부분 또한 개진되지 않으면 -아주 극단적인 이야기이지만-언젠가는 기술에 인간이 함락당하는 미래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과 혁신만을 무조건 주창하기보다, 지금 우리 인간은 어느 단계에 놓여있는지, 모두에게 진정으로 ‘좋은 일’인지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혜린

국어국문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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