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과제를 하는 중이었어요.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 불쑥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잠시만 도와주세요.” 노트북을 펼친 그는 구직 사이트를 열어둔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직업 선호도 검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죠. “잠시만요.” 기자는 그를 대신해 마우스를 잡았습니다. “직업선호도 검사 S형 맞아요?” 그가 찾던 항목을 열고 화면에 적힌 글자를 재차 확인했습니다. 그는 짧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숙여 보였습니다.

  자리로 돌아가 금방 하던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기자를 불렀죠. “여기 있는 문항 내용 좀 읽어 줄래요?” 얼핏 봐도 문항이 백 개는 넘어 보였습니다. 답안을 작성하기까지 적어도 한 시간은 넘게 걸릴 양이었죠. 기자는 곧 카페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그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다소 난처한 기색으로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죠. “알겠어요.” 그는 감정 없이 대꾸하고는 시선을 거뒀습니다. 얼마간 서늘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잠시만 도와주세요.” 그는 들리는 목소리를 쫓아 허공에 대고 외쳐댔습니다. 한 번은 카페 직원에게, 다른 한 번은 건너편 손님에게. 하지만 거절당하기 일쑤였어요. 누구든 그만큼 오랜 시간을 내어 주기란 쉽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는 결국 노트북을 덮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늘 겪는 일인 것처럼 가방에서 지팡이를 꺼내 카페를 나섰죠. 이제 어디로 향하는 걸까. 미련 없이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 곱씹었습니다.

  못내 신경 쓰였던 건 그가 사람들에게 건넨 첫마디였습니다. 그는 아주 익숙한 듯 스스로를 시각장애인이라 칭하며 같은 소개를 수차례 반복했죠. 한 사람의 인생은 다채롭기 마련인데 그는 끊임없이 ‘시각장애인’이어야 했어요. 그것은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음을 의미했습니다. 설령 그가 직업 선호도 검사를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끝이 아니었을 겁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이내 또 다른 벽에 부딪힐 게 뻔했죠.

  어린 시절 손이 닿지 않던 승강기 버튼이 떠올랐습니다. 아무리 까치발을 들어도 키가 한참 모자랐죠. 그럴 때마다 낯선 사람에게 의존해야 했습니다. 내키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의 친절에 고마움을 표시해야 했죠. 가끔은 어린 기자를 내려다보며 짓는 묘한 표정에 기분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기자와 같은 아이를 위해 발판을 마련한 곳도 있었지만, 그런 곳은 흔치 않았죠. 무엇보다 왜 처음부터 버튼이 그 위치에 있어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누군가의 일상은 줄곧 청신호를 받아 움직입니다. 그런가하면 누군가의 일상은 연거푸 적신호를 받아 멈추기를 반복하죠. 그가 겪는 ‘장애’는 정말 그의 장애 탓일까요. 만약 노트북 기기가, 구직 사이트가, 그리고 생활 전부가 그를 염두에 두었다면 어땠을까요. 그가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아마 그의 입에 붙은 첫마디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홍설혜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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