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취미로 틈나면 한문을 들여다본다. 신문의 작은 칼럼 한문기사나 우리 역사에 관한 기사 중 한문이 간단히 섞여 있는 것 등 가리지 않고 본다. 공부 겸해서 우리 개화기 선각자나 실학자의 글도 한글 번역이 있는 책을 골라서 한자를 찾아가면서 읽어본다. 고전번역원 같은 곳의 사이트에는 원문대조 한글번역이 있어서 나 같은 초심자에게는 더 없이 좋다. 그리고 포탈 어학사전에 한자사전도 있으니 예전에 종이사전 찾아가며 공부하던 시절보다는 훨씬 ‘학습자 친화적’이다.

  읽다가 좋은 구절이 있으면 파일로 저장해 두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좀 여유가 있을 때 한문공부를 해 두면 삶이 더 풍부해 질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독자에게도 훗날 한번 시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공 탓에 영어책만 읽어 온 것에 대한 일단의 반감이나 반성이기도 하겠지만, 내게는 요새 말하는 ‘소확행’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필자가 강의실이나 연구실에서 막연히 고민한 것을 이미 옛사람들이 다 고민하고 나름 해법까지 마련해 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런 구절을 하나 소개해 보고자 한다.

  논어 위정편에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말이 있다. 어려운 한자도 없고, 또 널리 알려져 있어 많이 인용되는 구절이다. 그럼에도 공부하는 서생으로서 그리고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늘 두고두고 생각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구절이다. 한자사전 찾아가면서 새겨보면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는 말이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던 세계가 어떠했길래 위태롭다는 섬뜩한 표현까지 썼을지 성현의 내심을 필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교육이 무엇인지 혹은 연구가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게 됐다.

  수업에서 교수가 다양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에게 많이 읽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너무 창의적인 것만을 강조하여 세상의 흐름을 전혀 도외시한 생각을 지나치게 격려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다. 지식도 전수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도 배양해 주는 이른 바 정보습득능력과 창의력을 겸비시키는 교육이 ‘제4차 산업혁명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제4차 산업혁명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필자 스스로 연구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너무 읽는 것만 많고 기존 문헌의 해석을 과식한 나머지 정리가 안 되고 글이 체계가 없어 어두워질 수도 있고, 너무 생각이 앞서서 현실이나 검증의 필요성을 무시하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위태로움이 없으면 혁신이 불가능하겠지만, 현실에 대한 검증이 없으면 혁신이라는 이름의 미몽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교육이나 연구나 ‘학’과 ‘사’가 잘 조화되어 ‘망태’로 흐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손병권 교수

정치국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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