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광장에 소박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석조물에 ‘의에 죽고 참에 살자’라는 교훈이 새겨져 있다. 석조물은 새겨진 글귀의 비장함에 비해 왠지 겸연쩍고 움츠러든 기색이다. 한 때는 꽤 당당하게 중앙인의 가슴에 불을 지폈을 글귀이다. 하지만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고 옆 눈으로 슬쩍 봐도 그 글귀는 나를 민망하게 만든다.

  지난주 1면을 장식한 핑크 네온사인으로 말랑해진 ‘100’이라는 숫자와 2면의 ‘100주년-의와 참’ 기사는 백년의 무게를 다르게 비춘다. 중앙인에게 100주년은 성취와 완성을 뜻하니 축하와 폭죽이 어울린다. 하지만 가장 굴곡지고 변화무쌍했던 대한민국의 역사 속을 걸어온 중앙대의 백년은 한없이 무겁다. 그 백년이 ‘의와 참’의 걸음이었다면 차마 뒤돌아보기도 겁이 난다.

  중대신문은 이 무게의 차이를 균형 있게 보여준다. 지면 곳곳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100주년을 맞이한 중앙인들이 자부심과 설렘을 인터뷰 형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한편 ‘100주년-의와 참’ 기사는 100주년과 교훈을 연결해 중앙대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의미 있는 기사였다. 하지만 두 가지가 비어 있어 공허하다. 첫째, ‘의와 참’이 과연 지금 중앙대의 정신이고 문화인가에 대한 성찰이 없다. 개별 중앙인과 집합적 중앙대가 이 거대 명제를 2018년 현재 어떻게 해석하고 구현해야 할지를 논의해야 한다. 둘째, 중대신문이 ‘의와 참’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재하다. 중앙대 내부의 ‘의와 참’을 위해서 그리고 사회 정의를 위해서 중대신문은 어떻게 펜 끝을 벼릴 것인지 묻고 싶다. 

  오늘 다시 교훈 새겨진 석조물을 보니 민망하게 고개를 돌려야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중앙대 내부와 일상에서 실천되지 않고 거시적 정치와 사회를 위해서만 구현되는 ‘의와 참’은 위선이다. 과연 오늘도 우리는 의에 죽고 참에 살고 있는가?

 황금주 교수

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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