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이라는 학문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겪는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학문인데, 질병의 필연적 이유를 찾아 인간의 건강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학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사회역학’은 무엇일까요. 사회역학은 개인 보건적 요소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 역시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요인과 건강의 상호관계에 주목합니다.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이 비단 개인적인 보건의 요소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사회 역학의 출발점입니다.

  모든 질병과 아픔은 개인적 문제만으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의 자살률은 3배 증가했다고 합니다. 개인의 유전자가 급격하게 변하지는 않았을 테니, 한국 사회에서 무엇인가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분석과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맥락 없이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원인의 ‘원인’을 간과함으로써 가장 효과적인 처방을 놓칠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왜 자살하는 걸까요? 우리는 왜 아픈 걸까요? 저는 그 답을 감히 ‘신뢰’에서 찾아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부재한 상황에서 나약한 우리가 의지할 곳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인간의 삶과 행동과 그에 대한 판단은 다 맥락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인의 원인’이 되는 조직과 공동체의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 개개인에게 문제의 책임을 돌리는 순간 해결되는 일은 없는 것이죠.

  올 한 해 중앙대에서는 ‘신뢰’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이 첨예했습니다. 전공개방 모집제도와 관련된 학교와 학생 사회의 갈등은 매년 이어지고 있고, #MeToo의 물결은 중앙대까지 찾아왔습니다. 분노한 우리는 교수 연구실 한 곳에 빼곡히 포스트잇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모두 ‘신뢰’의 문제였습니다. 학교가 학생 사회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불신, 학교가 성폭력 피해자인 학생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불신이었습니다. 

  결국 ‘공동체’의 문제입니다. 문제를 ‘공동체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의 공동체가 안전하다는 신뢰를 줄 수 있는지 되묻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공동체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한 문제를 개인과 개인의 사사로운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한다는 다짐일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또 다시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상호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사회’란 타인의 고통에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건강과 행복 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의 건강과 행복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존재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박지수 

성평등위원장

사회복지학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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