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추억은 회색빛이 아닌 총천연색으로 살아있다”
  • 박수정 기자
  • 승인 2018.10.08 03: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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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년의 세월 동안 중앙대의 모습은 크고 작은 변화를 거쳤다. 이번 백과사전에서는 루이스가든, 할매 동산, 205관(학생회관), 206관(학생문화회관) 등 중앙대 캠퍼스 내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장소들에 얽힌 학생과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60년대 입학식과 졸업식 때마다 101관(영신관) 앞 ‘루이스 가든’은 수많은 인파로 붐볐다. 현재 영신관 앞 중앙광장부터 102관(약학대학 및 R&D센터)까지의 공간이다. 지금은 사라진 대운동장 건립 이전에는 이곳이 학교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었다.

  루이스 가든은 시대별로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70년대 루이스 가든에서는 ‘지성’의 축제를 엿볼 수 있다. 축제 기간에 교수와 학생이 참여하는 ‘과거시험’이 전통적 방식으로 열렸다. 시제를 정해 글을 쓰고 장원을 뽑기도 했다. 80년대의 루이스 가든은 민주화를 위한 의혈의 투쟁 장소였고 90년대 학생에게는 낭만의 장소였다. 해가 넘어가면 학생들은 낱개로 양초를 사서 촛불을 켜고 친구들과 밤새 담소를 나눴다.

  ‘할머니’처럼 인자한 교육자였던 승당 임영신 박사는 학교에서 가장 높고 양지바른 곳에 잠들었다. 현재 309관(제2기숙사)이 위치한 자리다. 학생들은 이 묘역을 ‘할매 동산’이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불렀다.

  날이 좋으면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할매 동산으로 향했다. 서주원 강사(간호학과 02학번)는 “한강에서 불꽃 축제를 하면 할매 동산에 올라가 구경했는데, 동산에 오르는 길목을 어부바 언덕이라고도 불렀다”며 “학교가 북적거려도 할매 동산에 가면 한적하고 탁 트인 느낌이라 공강 시간에 친구들과 자주 산책을 갔다.”고 말했다. 할매 동산 자리에는 제2기숙사가 신축돼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임영신 박사의 유골은 영신관 앞 동상 밑에 묻혀 있다.

 

1986년 2월 17일 임영신 박사 서거 9주년을 맞아 임영신 박사 묘에서 추도식이 진행되고 있다.
1986년 2월 17일 임영신 박사 서거 9주년을 맞아 임영신 박사 묘에서 추도식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철거된 205관, 206관은 항상 학생들로 활기가 넘치는 장소였다.
지난해 철거된 205관, 206관은 항상 학생들로 활기가 넘치는 장소였다.

 

  도서관 옆 주차장에는 학생회관과 학생문화관, 일명 ‘빨간 벽돌’이 있었다. 학생회관과 학생문화관은 310관(100주년기념관 및 경영경제관)이 완공됨에 따라 생태면적 확보를 위해 지난해 철거됐다. 그러나 그 건물들은 여전히 학생들에게 빨간 벽돌로 남아있다. 강성찬 학생(신문방송학부 2)은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다른 건물과 달리 붉은 벽돌로 층층이 쌓인 벽이 그곳의 정체성이었다”고 말했다.

  동아리방이 위치한 학생회관은 학생들 간 문화교류의 장이었다. 동아리들은 홍보를 위해 제각기 문을 꾸미기도 했다. 통기타를 통째로 붙인 문, 검도 호구가 있는 문, 시가 쓰인 문 등이 개성을 뽐냈다. 강성찬 학생은 “새내기 시절 연극 동아리 '또아리'에 참여해 1년에 두 번 빨간 벽돌의 무대에서 공연했다”며 “이미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언제나 그 추억은 회색빛이 아닌 총천연색으로 빨갛게 살아있다”고 회상했다.

  A학생(경영학부 4)은 “빨간 벽돌 내 동아리 연습실의 퀴퀴한 냄새가 기억난다”며 “로비에 안무를 맞추기 좋은 대형거울이 있어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데도 춤 연습을 했다”고 댄스동아리에서의 추억을 나눴다.

  캠퍼스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몇몇 건물이 생기기도,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라진 장소들도 여전히 우리 곁에 추억으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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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민 2018-10-10 01:09:22
기사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