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문화(多文化, multiculturalism)를 강의한다. 지난 2007년 시작한 이래 지금껏 한 길을 걸어왔으니 그 세월만 해도 10년이다. 덕분에 관계기관의 자문을 맡거나 지자체 등이 주관하는 시민강좌, 각종 다문화 관련 사업의 평가위원으로 참여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런 모임들에서는 으레 저명인사들과도 인사를 나누게 되는데, 그들은 내 전공이 ‘한국 근대소설’이란 사실을 알고 대부분 깜짝 놀란다. “그래요?, 아…”라며 말끝을 흐리는 그들의 눈에는 “왜 문학 전공자가 다문화를…?”라는 의아함과 호기심이 매달려있다.

  나는 한국 근대소설을 전공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만 따지면 ‘한국 근대소설사’다. 한국 근대소설사를 전공한 내가 학위취득 이후 전공과는 거리가 먼 한국사회의 다문화 현상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은 분명 낯선 풍경이다. 

  문학 전공자인 나를 다문화연구의 길로 이끈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권의 소설책이다. 바로 『십오만원사건』(카자흐국영문학예술출판사, 1964)이다. 고려인 작가 김준의 『십오만원사건』이 나의 학문적 진로를 바꾸고 인생의 궤도를 수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은 여섯 명의 철혈광복단이 1920년 1월 4일 북간도 용정에서 일으킨 ‘십오만원 탈취 사건’을 다루고 있다. 십오만원 탈취 사건을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일제의 자본인 15만원을 탈취해 대규모 항일무장투쟁을 계획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 평가받는다. 

  『십오만원사건』에는 철혈광복단원이 벌인 15만원 탈취 사건의 전말과 최봉설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의 단원이 체포돼 사형에 처해지는 과정 등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또한 강제이주로 민족전멸의 공포에 휩싸였던 고려인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민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인에 대한 고마움과 뜨거운 연대의 감정이 핍진하게 그려져 있다. 고려인의 손을 잡아준 중앙아시아들의 행위가 나로 하여금 한국사회에 와 있는 이주민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조국의 독립과 자신의 해방을 위해 북만주의 혹한 속에서 생을 불살랐던 무수한 민중의 삶-그중에서도 젊은 여성운동가들의 처절한 투쟁과 안타까운 죽음-은 감동을 넘어 그 자체가 고통이다. 그 고통이 너무 커 때로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면 ‘이게 우리 고려 사람들의 참모습이다’는 아우성을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 소리 없는 외침 때문에 나는 아직도 ‘다문화’라는 화두를 놓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우리 사회는 집단 입국한 예멘인 23명의 ‘인도적 체류 허가’를 놓고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인다. 극단적인 언술로 난민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720만명의 재외한인들도 한때는 난민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난민 문제가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고려인의 손을 잡아준 중앙아시아인처럼 그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을 수 없는 걸까?

강진구 교수 다빈치교양대학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