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의 무게
  • 홍희지 기자
  • 승인 2018.09.2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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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아주 생생한 악몽을 꿨다. 평소처럼 신문사에서 글을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의 말이 기사에서 왜곡돼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호소했다. 화들짝 놀라 모든 녹취록과 자료를 샅샅이 뒤지다 꿈에서 깨어났다. 보도부에서 두 번째 기사를 쓰던 날 밤이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그 꿈은 한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평소에 늘 걱정하던 상황이 꿈에 그대로 나타나서였을까,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과 내게 전화를 걸었던 인터뷰이의 억울한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꽤 많은 일에 무던해졌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기사를 쓸 때만큼은 ‘혹시나 틀린 부분은 없을까’ 전전긍긍한다.

  일상에서 말이 잘못 전달되면 보통 번거로운 해프닝으로 마무리된다. 그렇지만 언론에 왜곡된 정보가 실리면 파장이 매우 크다. 10년 전쯤 한 중견 배우가 운영하는 황토팩 사업이 방송의 오보로 인해 도산 위기에 처한 적 있다. 제품에 문제가 없는 걸로 밝혀졌으나 이미 사업은 이미 손 쓸 수 없을 만큼 무너진 상태였다. 몇 년 전에는 어떤 신문에서 범죄자와 무관한 시민의 사진을 아동 성폭행범이라며 실은 적도 있다. 당시 용의자로 얼굴이 실린 남성은 인격 살인에 가까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한 편의 거짓된 글이 누군가의 삶을 뒤흔들 수 있는 것이다.  

  온갖 사이트와 커뮤니티에서 가짜 뉴스가 나도는 최근, 사실에 대한 중요성은 더 크게 와닿는다. 인터넷 발달로 빠르게 퍼지는 유언비어 속에서 독자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내 커뮤니티만 봐도 막상 취재해 보면 사실이 아닌 글이 종종 있다. 그럴 때면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잘못된 정보를 확인했다는 안도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잘못된 정보를 담은 한 문장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누군가가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기사에 실린 한 문장에 지워질 책임을 생각해 본다. 역시 쉽게 글을 써 나갈 수 없다. 녹취록과 문서를 뒤져 가며 글을 쓰다 지웠다 반복한다. 인터뷰이에게 연락해 기자가 인터뷰이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되묻고 기사가 다루는 사건이 언제, 어디서, 왜 일어났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신문이 인쇄되기 전, 마지막으로 다른 기자에게 모든 문장의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팩트 체크’를 받으면 그제서야 한 편의 기사를 마칠 수 있다.

  한 문장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기자는 ‘전하는 사람’으로서 글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팩트 체크’에서 가끔 단어 하나가 사실과 어긋나 증거를 찾느라 골치 아플 때가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냥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예전에 꿨던 악몽을 현실로 만들 수는 없다. 기자의 책임을 늘 떠올리며 더 집요하게 질문하고, 확인하고, 애쓰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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