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의 퓨마였다면
  • 노유림 기자
  • 승인 2018.09.27 0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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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대전광역시 시민들에게 재난문자가 도착했습니다. ‘금일 17:10분경 대전동물원에서 퓨마 1마리 탈출 보문산 일원 주민 외출 자제 및 퇴근길 주의 바랍니다.’ 대전에 사는 친구에게서 요란스러운 연락을 받았을 때 기자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채 30분도 되지 않아 퓨마는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후 실시간으로 퓨마를 추적하는 과정이 기사로 올라왔습니다. 마취시도 후 도망친 퓨마를 잡지 못했다는 기사를 보며 두 가지 걱정이 들었죠. 하나는 대전 시민의 인명피해였고 다른 하나는 퓨마의 생사 문제였습니다. 포획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사살당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기자의 걱정 두 가지 중 후자는 현실이 됐습니다. 시민의 안전문제를 우선시해 퓨마를 사살하기로 한 것이죠. ‘금일 대전 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 1마리를 21:44분에 사살 상황 종료됐음을 알려드립니다.’ 친구가 마지막으로 보내준 재난문자 캡처를 보며 다양한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이후 각종 SNS에서는 퓨마사살에 대한 논쟁이 일었습니다. 사살 내용을 재난문자로 보낼 필요가 있었냐는 지적과 그러지 않고 어떻게 상황종료를 알리냐는 반론이 오갔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동물원을 폐지해달라는 청원이 일었습니다. 청원 하루만에 4만여 명이 동의 서명을 할 정도였죠.

  퓨마가 탈출한 잘못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우리 청소를 한 후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육사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겠죠. 이는 동물원의 존재 자체를 지적하는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은 같은 자리를 뱅뱅 도는 정형행동을 하거나 좁은 우리 속에서 갖은 질병으로 고통받습니다. 탈출한 퓨마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죠. 퓨마가 발견됐을 당시 대형 종이상자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평생 동물원에서 산 동물의 상태를 보여줬습니다.

  2013년 당시 코스타리카 정부는 동물원을 모두 폐지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비록 동물원과의 소송으로 시기는 늦춰졌지만 코스타리카 정부는 오는 2025년부터 동물원을 전부 없애겠다는 태도입니다. 구조나 보호 이외에 동물을 가두는 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죠. 이미 국토의 25%를 국립공원이나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코스타리카는 인간과 자연생물종의 상생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사살된 퓨마는 죽어서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국립중앙과학관이 퓨마 사체 기증을 요청했다는 오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전동물원 관계자의 사실해명이 있었지만 비난 여론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의 동물이 어떻게 다루어지는가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편해질 수 없는 한국 동물원의 퓨마. 이제는 정체된 동물권을 가진 한국을 돌아봐야 합니다.

기획부 정기자 노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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