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 중대신문
  • 승인 2018.09.17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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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6일 아침, 의례적으로 뉴스를 확인하던 내 눈에 ‘일본 지진’이라는 실시간 검색어가 보였다. 그리고 잠깐 잊고 있던 과거가 떠올랐다

  2016년 9월 12일, 나는 경남 김해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수시접수가 얼마 남지 않아 자소서를 계속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위층에서 겹겹이 쌓아놓은 책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이 들리며 교실이 사방으로 흔들렸다. 19년 인생을 살면서 처음 겪은 지진이었다. 반장이 교무실로 달려간 지 4분쯤 지났을까, 운동장으로 신속하게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왔고 그제야 노트북만 쥔 채 밖으로 뛰어나갔다.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곧이어 전화와 카톡 모두 되지 않는다는 아이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한참 후에야 부모님께 연락할 수 있었는데, 기숙사학교였기 때문에 그사이의 두려움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30분간을 운동장에 서성이다 교실 안으로 들어갔지만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도 주지 않고 교실은 더 크게 흔들렸다. 학교 안은 뛰어나가는 발소리로 가득했다. 그 이후로 조금이라도 땅이 흔들리는 것 같으면 심장이 두근거렸고 결국 지진 트라우마가 남았다.

  약 1년 후인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 또다시 지진이 발생했고 나는 또다시 두려움에 휩싸였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나만 예민한 것 같았다. 재난문자가 올 때마다 소름이 끼치고 무서웠는데 거리는 평소와 똑같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기사가 올라오고 무너진 건물들의 사진들이 올라오는데 세상은 별일 없다는 듯 태연했다.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진을 ‘보는’ 사람들은 그때만 충격을 받고 그만큼 더 빨리 익숙해져 버렸다. 인터넷의 이슈는 수능연기 문제로 옮겨간 지 오래였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지진이라는 문제는 단순히 지진이 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전체의 문제이며 국민 모두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할 문제이다. 물론 어느 한 주제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 일이 아니라고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후에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만약 1년이 지난 지금 303관(법학관) 9층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데 서울에 지진이 나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며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가? 대학에 입학하고 벌써 1년하고도 6개월이 지났지만 한 번도 교내대피에 대한 안내를 받은 적이 없다. 지진에 예민하게 반응했다면 대피훈련은 하지 못했어도 적어도 안내라도 받았어야 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해야 하고 또한 대비해야 한다. ‘에이 설마, 일본이나 남쪽 지방에만 지진이 오지 여기에 지진이 오겠어?’가 아닌, 우리도 언젠간 지진을 겪으리라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고통을 넘어서서 직접 그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하린 학생 
정치국제학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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