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업자와 갈등 겪는 학생들
지자체는 주민 눈치 보기 급급

상생 도모한 사례도 존재
토론으로 문제 해결해야


오래전부터 대학가 청년주거 문제는 뜨거운 논쟁의 중심이었다. 흑석동의 청년임대주택 갈등은 그 단면에 불과하다. 청년주거에 관한 대학가의 대표적 갈등 사례로는 ‘기숙사 건축’이 있다. 기숙사 건축 문제에는 학생과 지역 주민, 지자체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다. 학생들은 기숙사를 신축해 주거권을 보장받기를 원하는 반면, 지역 주민들은 원룸 입주 수요가 대폭 줄 것을 걱정하며 생존권을 내세워 건립에 반대한다. 지자체는 주민들의 눈치를 보며 기숙사 건립에 필요한 심의를 보류하는 모습도 보인다.  

  한 사례로 경북대가 있다. 경북대는 최근 기숙사 신축 문제로 소란스럽다. 지난해 7월 경북대는 수용인원 총 1209명 규모의 기숙사 건립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숙사 신축에 따른 임대 수입 감소를 우려한 학교 인근 임대업자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이들은 지난 4월 ‘기숙사건립반대대책위원회(대책위)’를 조직해 건설 현장에서 반대 집회를 여는 등 약 3개월가량 공사 진행을 방해했다. 

  이에 경북대는 지난달 21일 대책위와 협의 끝에 기존 기숙사와 신축 기숙사 수용인원을 각각 232명과 100명 줄여 총 332명의 수용인원을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학생들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학교의 대처에 항의하고자 경북대 학생들은 교육부에 민원을 제기했다. 

  교육부는 지난 4일 경북대와 임대업자가 기숙사 수용 인원 축소에 대해 구두로 협의했지만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었음을 확인했다. 또한 학교가 사업변경 요청을 하면 학생의 주거안정과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해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생들은 학교 주변에 ‘인생 선배님들, 자알 보고 배우겠습니다~!’,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원룸업자가 팔 집이 아니라 학생들이 살 집입니다’ 등의 현수막을 걸며 해당 세태를 꼬집었다.

  지난 4월 고려대에서는 수백여명의 학생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학교와 지역주민에게 기숙사 신축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였다. 고려대는 지난 2014년부터 총 1100명이 생활할 수 있는 기숙사 신축 계획을 밝혔다. 고려대는 기숙사가 신축되면 기존 2726명에서 3826명으로 수용 인원이 늘어나 학생들이 주거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축은 순탄치 않았다. 지역 주민들이 ‘개운산 사랑 성북구민연합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공사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고려대는 학교 부지 내에 위치한 개운산에 기숙사를 건립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역 주민의 쉼터이자 운동공간인 녹지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일부 주민의 반대에 부딪혔다. 고려대는 기숙사를 세우더라도 부지에 체육시설을 만들어 학생과 주민이 함께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좀처럼 견해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고려대는 개운산 녹지에 기숙사 건립을 요청하는 공원 조성계획 변경을 성북구청에 신청했다. 그러나 구청은 주민 동의가 필요하다며 서류 보완을 요구했다. 고려대 기숙사 신축 사업은 4년째 중단된 상태로 남아있다.

  집단행동으로 기숙사 건립을 이뤄낸 사례도 있다.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기숙사(봉룡학사)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봉룡학사는 지난 1979년 완공된 제1기숙사 ‘의관’을 중심으로 ▲인관 ▲예관 ▲지관 ▲신관으로 이뤄져 있다. 성균관대 역시 과거 기숙사 신축을 두고 주민들과 충돌이 있었다. 이에 성균관대는 지난 2009년 마지막으로 개관한 제5기숙사 ‘신관’ 설립 당시 기숙사에 입주하는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하게 했다. 주민등록을 이전한 학생들은 해당 지역 유권자가 됐고 이로 인해 지역 정치인과 지역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돼 갈등이 잠식됐다. 일종의 집단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부산대는 기숙사 건립 사업으로 지자체와 지역주민 마음을 모두 사로잡았다. 지난해 부산대와 동래구청은 동래구에 위치한 총장 관사를 두고 다른 입장을 보였다. 부산대는 관사 부지에 학생 기숙사 신축을, 동래구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간 조성을 건의했다. 지난해 말 양측은 관사 부지에 기숙사를 세워 1~2층은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편의시설로 3~5층은 학생 기숙사로 사용하기로 협의했다. 

  부산대는 지난 7월 18일 주민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 행사를 열어 총장 관사를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개방하기도 했다. 약 250여명의 주민은 공연을 즐기며 건축이 예정된 관사 부지를 구경했다.

  이제 기숙사 신축이 꼭 학생에게 ‘득’이고 지역 주민에게 ‘실’이라는 생각을 버릴 때가 됐다. 학생은 저렴하고 안전한 기숙사에서 살 수 있고 지역 주민은 주변 상권 활성화로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학생과 지역 주민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학교는 학생과 지역 주민이 토론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주도해 하루빨리 기숙사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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