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의복은 ‘시대의 가을’ 또는 ‘4차원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모두 의복과 시대와의 관련성을 표현한 말이다. 의복이 인간에게 신체적 안락감과 절대적인 아름다움만을 준다면 아마도 인류의 복식은 우리가 경험한 다양한 변화를 거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복식에 대한 평가가 개인에 따라 다르지 않았다면 한 사회안에서 수없이 다양한 의복이 공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와같이 의복에는 아름다움의 본질과 우리가 사는 시대. 그리고 착용자 개인에 대한 옷을 입는 주요 이유에 대한 위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옷을 입고 생활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이에 대하여 옷의 기원설로 돌아가면, 첫 번째로 의복은 인간의 신체보호와 신체노출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수치스러움을 가리기 위한 방편으로 옷을 입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하여 신체적인 힘이 약할뿐 아니라 자연적인 보호수단도 별로 갖고 있지 못하다. 피부도 약하고 다른 동물과 같이 털로 덮여 있지도 않기 때문에 생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신체를 보호할 수 있는 어떤 수단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찾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생존해 나가기 위해,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신체노출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수치심을 가리기 위해 이러한 필요들이 옷을 입게 한 이유이다. 의복과 수치심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엘레스는 “만약 나체의 스웨덴 여성, 프랑스, 여성 또는 미국 여성을 길에서 만났다면 그녀들은 맨 먼저 손으로 치부를 가릴 것이며, 아랍 여성이었다면 맨 먼저 얼굴을, 중국 여성이었다면 재빨리 발을 가릴 것이고, 사모아 여성이었다면 예외없이 배꼽을 가릴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는 종족에 따라 그들이 가장 수치스럽게 여겨 은폐시키는 신체부위가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수치심은 관습에 따른 인간의 감정

원시민족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문명인에게 있어서 예의를 갖추는데, 아주 중요한 치부은폐가 어떤 미개인들에게는 별로 중요시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집트 수단 흑인의 경우, 여자는 약간의 의복을 몸에 걸치고 있으나 남자는 나체로 생활한다. 캘리포니아 반도의 바이우저인은 남녀 모두가 전 나체로 생활하는 종족이다.

급속히 변해가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이들 종족 중 일부는 점차 문명화의 과정을 겪게되고, 행동의 변화가 일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브라질의 무그라이 인도여성의 경우 ‘사이아’라는 하의를 걸치면 도리어 수치심을 느껴 나체로 외출하는 것이 관습화되어 있다. 위와같은 사실로 미루어볼때 수치심이라는 것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습에 따른 인간 감정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화기때 양장을 하면 수치스럽게 여겼고, 미니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는 미니를 입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였다. 이처럼 새로운 옷을 보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평소 익숙해져왔던 주위와 다른 모습을 보인 자의식 때문이다.

두 번째로 옷을 입는 이유로서 신체장식의 심리적 차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원시시대에는 신체장식을 통해 그들 자신을 군중속에서 드러나게 만들고, 존엄과 세역을 증가시키는 도구로 생각하였다. 또한 이 원시 부족들의 두드러진 장식이 이성에게 흥미를 끄는 극단적으로 영향을 주는 수단으로 여겼다.

그러기 위해 원시인들은 옷이라는 것을 입기전에 그림과 문신으로 된 정교한 디자인으로 혹은 부족간의 싸움터에서 생긴 흉터자국으로 신체를 장식하였다.

해브롤 엘리스는 “음악과 시와 음과 함께 인간의 신체를 장식하는 것은 문명속에서 발달한 가장 훌륭한 예술형태” 라고 말하듯이 장식에 대한 동기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기본 별로로서 개인적 미의 추구에 있어서 미적경험과 심리적 만족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원시인들의 원초적인 욕구인 성적매력을 과시하기 위해, 이성에게 매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인체를 문신, 상흔, 인체변조, 채색등 다양한 방법으로 장식하므로써 아름다룬 미를 과시하였다. 그러한 장식이 그 시대에는 착용자의 힘과 용기 그리고 지위 및 기술과시를 가져다주며, 한편으로는 주술적인 사고로서 악을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다 주는 착용자를 보호해주는 ‘정신적 신체보호’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신체장식이나, 수식은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여 결국은 주의를 끌기 위한 것으로서 이같은 설이 어느 정도까지는 옷을 입는 동기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과연 이러한 설이 어느정도 용인되는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그러면 현대인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옷을 입을까?

현대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현대인들은 자신만이 가지는 개성이나, 독특함, 끼 등을 의복을 통해 극대화 되도록 표현하려 한다. 따라서 현대인들의 대부분은 유행을 따른다. 유행은 옷, 신발, 헤어스타일, 가구, 과자, 노래 등 많은 것에서 나타난다. 그 중 가장 민감한 것은 옷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러한 유행은 왜 일어날까? 사람들은 자신의 개성을 살리고, 다른 사람과 구분되기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유행을 따름으로서 의복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으려한다.

현대인이 유행을 따르는 이유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는 힙합스타일이니, 사이버 풍의 패션이 유행하고 있다. 바지를 일부러 접어 올리기도 하고, 겨울도 아닌데 털 모자를 쓰기도 하고, 빨강머리, 노랑머리, 흰머리 등이 등장하기도 한다. 부분염색과 구리빛으로 인공선탠을 하고, 머리는 마치 죄수를 연상시키는 까까머리, 거뭇한 턱수염, 한 겨울도 아랑곳 않는 찢어진 청바지, 웃옷을 풀어헤친 차림. 심지어 귀걸이, 코걸이까지 한 남성의 차림새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이 그들의 개성있는 차림새, 끼있는 차림새로 있는 부분을 강조하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을 새롭게 창조해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말해 이러한 모습들은 다양해진 가치관의 양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옷을 통해 개인의 심리적 만족과 의복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기능으로서 옷을 입는다.

그 다음으로 사회적 위신에 대한 의복 착용의 심리상태를 볼 수 있다. 의복에 대해서는 각 사회, 각 문화권마다 독특한 규범이 있어서 이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주위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받는다. 특히 의복의 정숙성은 사회규범으로부터 정착되고, 그 사회속의 도덕기준을 이루기 때문에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역할이나 신분, 사업에 맞지 않은 의복을 착용하였을 때에도 주위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받게되며, 사람들은 주위의 부정적인 반응에 대하여 두려움이나, 불안을 느낀다. 이러한 불안감은 도덕기준이나, 자신의 신분, 역할에 적합한 의복, 요즈음 유행하는 의복을 입음으로써 어느정도 사라질 수 있다.

즉 자신의 신분을 의복을 통해 암시함으로써 신분에 합당한 대우를 받도록 유도하거나,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의복을 이용한다. 현대에서는 이러한 심리가 너무 확장되어 맹목적인 유행따라 잡기의 현상으로 와전되어 가고 있는 현상이다.

앞으로 다가올 21세기에는 의복이 어떠한 형태로 존재할 것인가? 첨단의 과학문명이 발달되고, 사회가 급변하여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미래에 과연 현재와 같은 유행현상이 계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기본말로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정삼호 <생활대 의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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