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안성 유기를 들어보셨나요? 유기는 구리와 주석으로 만든 전통 놋그릇입니다. 안성은 예로부터 품질 좋은 유기로 유명한 지역이었습니다. 안성맞춤이라는 단어도 안성 유기를 주문하면 마음에 쏙 든다고 해서 생긴 말이죠. 하지만 사회와 기술의 변화로 유기에 대한 인기가 식어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유기공방이 있던 안성에도 이제 3개의 공방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주 인포커싱에서는 우리 삶 속에서 잊혀져가는 유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종오 명장이 유기를 제작하는 과정을 보고 소중한 전통문화인 유기에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시방(지금)도 죽을 때까지 해도 못 배우는게 주물인데…오늘 잘 나오던 물건도 내일 안 나올 수 있는 게 주물이여.”
유기를 만들면서 어려운 점이 없냐는 질문에 올해 예순한살로 십대초반부터 예순이 넘을 때까지 유기를 만든 이종오 명장이 웃으며 답했다.

화로에서 도가니에 담긴 쇳물을 꺼내는 이종오 명장.
화로에서 도가니에 담긴 쇳물을 꺼내는 이종오 명장.

 

  심부름꾼에서 명장이 되기까지

  5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유기에 바친 보상이랄까? 그는 안성맞춤 유기명장 1호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가지고 있다. “옛날에는 새벽 4시부터 일해야 했어. 12시간도 더 한 거지. 새벽 4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니까.” 그는 명장 자리에 오른 지금도 이른 시간부터 늦은 시간까지 화로 앞을 지킨다. 명장이라는 칭호의 자격을 뒷받침하듯 말이다.

이종오 명장이 거푸집에 그을음질을 하고 있다.
이종오 명장이 거푸집에 그을음질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쓰는 그릇

  “유기는 평생 쓸 수 있어, 10년이고 100년이고 말이지. 그러니깐 비싸도 비싼 건 아니여.” 유기는 금속인 구리와 주석으로 만든 그릇이다. 다른 재료로 만든 그릇에 비해 강한 내구성을 가진다. 유기의 장점은 이뿐만 아니다. “유기도 항아리 숨 쉬듯이 숨을 쉬어서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지. 왜냐면 식중독균 같은 나쁜 균은 다 잡아주고 좋은 균은 가지고 있거든.” 살균성·항균성도 가지고 있어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그릇, 황금의 빛깔과 건강을 품은 그릇이 바로 유기다.

작품을 만드는 그의 표정에는 진지함이 담겨 있다.
작품을 만드는 그의 표정에는 진지함이 담겨 있다.

  유기는 비싸고 귀찮다?

  “유기는 관리가 어렵지 않나요?” 질문에 반박이라도 하듯 명장은 유기를 닦던 손을 휘저었다. “그때 쇠하고 시방 쇠하고 달라~.” 옛날에는 놋쇠에 다른 금속도 섞어 연하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연장이 좋지 않아 다듬기 쉬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기가 파랗게 변질이 잘 된 거여. 지금은 구리랑 주석 딱 두 가지만 들어가니까 옛날하고 비교하면 안되지!” 열변을 토하는 이종오 명장에게서 유기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지금은 재료가 좋아서 녹도 안 생기고 관리만 잘하면 처음 빛깔 그대로야! 이렇게 뒀다가도 밥 먹고 나서 한 번만 닦아주면 반짝반짝 윤이 나는데 그게 바로 유기의 매력이지.” 유기를 바라보는 이종오 명장에게서 마치 손자를 바라보는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이종오 명장이 틀에서 젓가락을 분리하고 있다.
이종오 명장이 틀에서 젓가락을 분리하고 있다.

  유기에 담긴 인생

  유기장의 길을 걸어오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IMF 시절 이런저런 이유로 잠시 유기제작에 손을 놨었다. 하지만 아들의 권유로 평생 하던 일에 다시 돌아왔다. “아들이 유기 제작을 안 배우겠다고 하다가 다시 배우겠다 해서 결심했지. 생판 남도 가르치는데 뭐 자식이 배운다는데 안 가르쳐 줄 수 있겠어?” 그 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전통적인 방식으로 안성맞춤 유기의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언제까지 유기를 만드실 거냐는 질문에 그는“힘이 다할 때까지, ‘우리 아들이 안전하게 다 배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뒷바라지해줄 거야”고 답했다.

만들어진 유기를 살펴보는 이종오 명인.
만들어진 유기를 살펴보는 이종오 명인.

  명장의 바람

  안성맞춤 유기의 전망을 묻자 명장은 배울 젊은이가 없다는 말과 함께 이대로는 소중한 문화유산인 유기의 명맥이 끊길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청년들이 옛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꾸준히 애착을 가져줬으면 좋겠어.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배울 사람이 없으면 결국 사라지는 것 아니겠어?”그의 한탄은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꺼리는 현상과 무엇이든지 기계로 찍어내는 지금의 세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안 써본 사람은 유기의 매력을 몰라.”라는 이종오 명장의 말처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유기그릇을 접할 기회가 적었다. 앞으로는 관리하기 어렵다, 비싸다는 선입견을 지우고 작품 하나하나에 장인의 숨결이 담겨있는 안성맞춤 유기를 사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

이종오 명인의 유기공방.
이종오 명인의 유기공방.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