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굉장히 가슴 설레고 예쁜 말이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노래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사랑을 말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인정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어색하고 낯간지러워서 뿐만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의 무게는 쉽게 그 표현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더더욱 그런 사람이었다. 쉽게 정을 주지도, 쉽게 마음을 표현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미련하기 짝이 없어서 내가 무엇을, 누굴 좋아하는지조차 몰라 ‘늦은 후회’를 반복하곤 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들어온 신문사도 내겐 그랬다. 늘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나에게 신문사는 수많은 ‘하고 싶은 것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무언가 배울 게 있겠지, 재미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적당히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언제 떠나도 미련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머물렀다. 여러 가지 이유로 수없이 고민을 반복하면서도 결국 나는 이곳을 택했다. 누군가는 묻곤 했다. 왜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기자 생활을 하느냐고. 솔직히 나도 몰랐다. 단지 재미있어서, 글 쓰는 것이 좋아서라기에는 할애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 컸다. 그렇다고 해서 정의 구현과 같은 거창한 이유는 더더욱 아니었던 듯 싶다. 그나마 어렴풋하게는 포기하기 아까워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이유를 깨달은 것은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였다. 부장이라는, 어쩌면 여태껏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할지 모르는 직책을 두고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두 밤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우며 치열하게 취재하고 토론하고 글을 쓴 후 선배들과 소주 한 잔을 나누던 어느 일요일. 그 소주의 단맛을 느끼며 문득 깨달았다.

  나이도 직책도 막론하고 둘러앉아서 대등하게 토론할 수 있는 이곳이 나는 좋았다. 어디 가서 ‘갑분싸’ 만들기 일쑤인 주제를 두고 열 올리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좋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곳 사람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내가 좋았다. 이틀이고 사흘이고 밤을 새워가면서도 조판 후 마시는 소주 한 잔에 한 주의 고단함이 모두 씻겨간다는 선배들을 보며 ‘변태 같다’고 생각했던 나도 어느덧 이곳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을 사랑한다고 인정하는 것이 마치 내가 지성인이라도 된 척하는 것 같아 민망해서였을까. 나는 나의 ‘사랑’을 부정해왔다. 그러나 이곳에 남기로 한 내 모든 선택의 기저에는 이 집단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지내온 날보다 떠날 날이 더 가까운 시점에서야 그 사실을 깨달은 내 미련함이 미웠다.

  이제 중대신문에서 보낼 한 학기만이 남았다. 별 뜻 없이 시작한 미약한 도전이 머지않아 내 청춘의 큰 결실이 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무언가 고민하고 있다면 과감히 도전하자. 그리고 미련 없이 사랑하자. 그 작은 도전이, 사랑이 내 인생에 어떤 큰 의미로 다가오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공하은

학술문화부장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