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은 썩는 데 500년

버려진 비닐은 고래를 해친다

 

“다음주 월요일부터 일회용품 쓰시면 안 돼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아이템을 고민하던 선배 기자는 ‘일회용품이 없는 삶’을 체험할 기자를 찾고 있었고 하필이면 그때, 그 앞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행복했던 순간들이 마구 떠올랐다. 자취방에서 나무젓가락으로 먹는 짜장면이 떠올랐고 졸린 오후 수업을 버티게 해주는 테이크아웃 커피도 스쳐 갔다. 심지어 아주 어릴 적 함께한 기저귀마저 생각났다. 그래도 한번쯤 지구를 위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 자신을 위로했다. 그렇게 ‘일회용품 없는 삶’을 선물 받았다.

  [DAY 1] 내겐 너무 애매한 일회용품

  첫날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점심 식사를 위해 간 식당에서 나온 요구르트를 마셔도 되는지 모호했다. 결국 앞에 앉은 친구 몫으로 돌아갔다. 생활 쓰레기와 일회용품의 개념이 혼란스러웠다. 써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서울환경운동연합 김현경 활동가는 일회용품이 생활 쓰레기 내에 포함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일회용품은 말 그대로 1회만 사용하고 버려지는 용품을 의미해요. 생활폐기물에 속하는 개념이죠.” 폐기물관리법에서는 일반폐기물을 생활폐기물과 산업폐기물로 구분한다. 생활폐기물은 가구, 의류, 식기 등을 지칭하는 넓은 범위의 개념이다 이 생활 폐기물의 한 종류로서 일회용품이 있는 것이다.

  생활폐기물 중 재활용할 수 없는 것들은 소각되거나 매립되는데 이는 심각한 환경오염을 야기한다. 소각의 경우 악취, 먼지, 다이옥신 등을 배출해 대기를 오염시키며 매립은 지하수 오염과 토양오염을 유발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생활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 국민 1인당 연간 58000원의 비용이 들었으며 2004년부터 해마다 평균 1175억원씩 증가하고 있다.

  저녁 식사는 310관(100주년기념관 및 경영경제관)의 참슬기 식당에서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입 주위를 정돈하려 휴지를 뽑는데 같이 밥을 먹던 후배 기자가 급하게 말렸다. 휴지도 일회용품이기 때문에 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웠지만 맞는 말이었다. 환경동아리 지구인 조원교 회장(에너지시스템공학부 1)도 단호하게 휴지와 물티슈 사용 금지를 권고했다. “물티슈랑 휴지는 일회용품이에요. 그래서 손수건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어요.” 하는 수 없이 집에 가는 길에 손수건을 샀다.

  물티슈의 원료에는 ‘폴리에스터’라는 화학 물질이 포함돼있다. 폴리에스터는 제조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많이 쓰는 탓에 면보다 세 배 이상의 탄소를 배출한다. 또한 플라스틱의 한 종류라 땅속에서 썩는 데 500년 이상 걸린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수도권 지역 일반 가구 15세 이상 모든 가구원을 대상으로 물티슈 사용 여부를 조사한 결과 2015년 10월 기준 응답자의 54.7%가 사용 경험이 있으며 월평균 55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DAY 2] 플라스틱의 늪에서 허우적

  지금까지는 커피 정도야 안 마시면 그만이라며 호기롭게 물병을 들고 수업에 임했다. 하지만 갈수록 카페인의 빈자리가 커졌다. 자주 가던 카페로 향해 텀블러에 아메리카노를 담아 가게를 나오려는 찰나 창문 옆에 앉아있던 두 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테이블 위에 빈 텀블러를 올려놓고 일회용 컵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빈 텀블러를 두고 굳이 일회용 컵에 담아 마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커피를 직접 타 마시는 경우가 많아 텀블러를 들고 다녀요. 텀블러에 담아달라고 하려 했는데 매장이 워낙 바쁜 거 같아서 말하지 못했어요.” 기계공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인 A학생은 손님이 붐비는 매장에서는 텀블러에 담아달라는 부탁이 민폐 같아 부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자도 뒤로 줄이 길게 늘어선 상황에서 텀블러에 담아달라는 부탁이 아르바이트생과 기다리는 사람 모두에게 미안했다.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차마 말할 수 없었다는 A학생의 말이 공감됐다.

[사진1] 플라스틱 컵 사이에 텀블러 하나.

  한국은 플라스틱을 많이 쓰는 국가 중 하나다. 2016년 통계청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이 무려 98.2kg이라고 발표했는데 이는 미국, 일본보다 높은 수치다. 지난 2016년 세계경제포럼은 현재 플라스틱 생산량과 바다로 버려지는 양이 유지된다면 2050년에 바닷속 물고기와 플라스틱의 양이 같아진다고 경고했다.

  이렇게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는 먹이사슬을 따라 결국 인간에게 돌아온다고 김현경 활동가는 설명한다. “해양으로 배출된 플라스틱은 파도나 햇빛에 의해 5mm 이하의 미세플라스틱이 돼요.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한 해양생물이 식탁에 오르면 결국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죠.” 한번 버리면 우리 곁을 떠나는 줄 알았던 플라스틱이 결국 우리 몸으로 다시 돌아온다.

  커피를 마시고 난 오후, 오랜만에 수업을 들으며 머리를 썼더니 단 음식이 먹고 싶었다. 다음 수업까지 생긴 잠깐의 여유에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는데 여기서도 일회용품이 발목을 잡았다. 스푼은 물론이고 아이스크림이 담겨 나오는 종이컵도 재활용되지 않는 일회용품이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도 커피처럼 텀블러에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가게에 들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직원은 몹시 당황한 눈치였고 같이 간 친구는 나를 모르는 척했다. 텀블러에 아이스크림을 받은 뒤 자리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주변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태어나 처음으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사진2] 별다방 텀블러와 밥숟가락을 들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사진2] 별다방 텀블러와 밥숟가락을 들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1년 기준 국내 종이컵 사용량은 약 7만톤이며 개수로 환산하면 약 135억개다. 서울시청 자원순환과 박지현 주무관은 종이컵에도 플라스틱 성분이 있기 때문에 재활용이 어렵다고 설명한다. “종이컵은 종이로만 만들지 않고 안쪽에 폴리에틸렌으로 코팅을 해요. 그 부분 때문에 재활용이 힘들죠.” 폴리에틸렌으로 코팅된 종이는 일반 폐지와 따로 배출해야 한다. 종이컵을 일반 폐지와 함께 버리면 각각을 분리하는 작업을 추가해야 한다. 폐지 업체는 일반 폐지와 섞여 있는 종이컵을 분류하지 않고 소각하게 되고 이때 폴리에틸렌이 불에 타면서 유해가스를 배출한다.

 

  [DAY 3] 네가 있다 없으니까

  가장 큰 시련은 체험 마지막 날에 찾아왔다. 개강파티 장소가 일회용품을 많이 사용하는 횟집이었기 때문이다. 젓가락이나 종지, 접시 등이 일회용품으로 준비된 곳이고 테이블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비닐 천도 깔아준다. 아무런 준비 없이 식당에 갔다가는 아무것도 못 먹을 것 같아 대책을 세웠다. 비닐 천을 대신해 식탁보를 준비해 갔다. 종지와 앞 접시는 사기그릇으로 대체했다. 커다란 식탁보를 펼칠 때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지만 이 정도 이목 따위는 3일 동안 꽤 익숙해졌다.

  다 먹은 후 여기저기 얼룩이 묻어 더러워진 식탁보를 정리해 다시 챙겨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집에 도착해 과탄산소다를 따뜻한 물에 풀어 반나절 정도 담가 놓았다. 환경을 지키는 일은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사진3] 식탁보와 사기그릇을 챙겨갔다. 우리집 식탁 같지만 횟집이다.
[사진3] 식탁보와 사기그릇을 챙겨갔다. 우리집 식탁 같지만 횟집이다.

  비닐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고한 생명을 해치고 있다. 지난해 2월 노르웨이 서부 해안에 고래 사체 하나가 발견됐다. 베르겐대학교 연구팀이 사인을 분석한 결과 위에서 발견된 30장의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쓰레기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고래가 바다에 버려진 비닐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한 것이다. 자원순환사회연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만 연간 약 190억 장의 일회용 비닐봉지가 제작되고 있다. 이를 위해 연간 약 57억원의 비용이 지출되며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는 2천 3백만톤이 발생한다. 녹색연합이 2017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간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량은 1인당 약 370장이며 2003년 대비 1.5배나 증가했다.

  2017년 발표한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단위면적당 폐기물 발생량은 미국보다 무려 7배나 많다. 폐기물 매립비율은 약 15.6%로 일본(약 1.3%)보다 15배 높은 수치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쓰레기의 양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진정 진리를 탐구하는 지성인이라면 그 무게만큼의 책임을 느껴야하지 않을까. 비닐을 삼킨 탓에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는 고래가 더는 없었으면 한다. 기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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