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이라 놀리지 말아요
  • 허효주 기자
  • 승인 2018.09.09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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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유행에 뒤처지는 것 같나요? 수업 들으랴, 아르바이트하랴 너무 바빠 무엇이 유행하는지 잘 모르겠다고요? 그럼 ‘요즘 것들’을 주목해주시죠. ‘요즘 것들’이 아는 요즘 것들을 소개해드립니다. 요즘 것들만 알아도 당신은 유행 선도자! 그 두 번째 주인공은 바로 대중문화를 점령한 ‘B급 코드’입니다. 만물상, 광고, 코미디 등 여기저기 B급 코드가 찍힌 것들을 소개해드립니다. B급 코드에 흠뻑 젖어 보고 싶다면 이번 ‘요즘 것들’을 주목해주세요.

 

  ○○○ 연습생, A등급입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에 출연한 연습생들은 실력에 따라 등급을 배정받는다. A등급부터 F등급까지 나뉘고 심지어 입는 옷 색깔도 다르다. 육류도 마찬가지다. 돼지의 경우, 고기 질에 따라 매겨진 등급 도장은 돼지 몸통에 콱 찍힌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등급이 매겨지는 시대다. A등급이 아닌 사람은 A등급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등급이 매겨지는 사회 흐름을 이겨낸 등급이 있다. 바로 ‘B’급이다. A급보다 부족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제 B급은 ‘A급의 밑’이 아닌 B급 그 자체다. 자신의 매력을 뽐내며 당당히 자리 잡은 B급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B급의 매력에 이미 빠진 ‘B급 마니아’들에게 B급의 매력을 엿들어보자.

  요지경 만물상, ‘삐에로쑈핑’~!

 

요지경 만물상 삐에로쑈핑! 760평 규모 매장엔 4만 개 이상의 상품이 정신없이 진열돼있다.
요지경 만물상 삐에로쑈핑! 760평 규모 매장엔 4만 개 이상의 상품이 정신없이 진열돼있다.

 

  서울 강남 스타필드 코엑스몰엔 특별한 만물상이 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삐에로쑈핑’이다. 지하 1,2층을 합쳐 760평이라는 큰 공간을 자랑하는 이곳은 4만개 이상의 상품을 판매한다. 신선식품부터 명품까지 없는 게 없다.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문제가 될 뿐, 없어서 문제가 되진 않는다. “난 차라리 웃고 있는 삐에로가 좋아~♪” ‘삐에로쑈핑’ 매장 내에선 가수 김완선의 노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가 리메이크돼 쉼없이 귓가를 파고든다.

  정승희 학생(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2)은 SNS에서 삐에로쑈핑 방문자의 후기 게시물을 보고 이곳을 찾아가게 됐다. “일본 유명 드럭스토어 ‘돈키호테’와 비슷하다는 후기를 봤어요. 원래 드럭스토어 구경을 좋아하기도 해서 삐에로쑈핑에 갔죠.” 정승희 학생은 삐에로쑈핑을 한국판 돈키호테로 표현했다. “이곳에선 돈키호테에서 판매하는 물건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가격표에 적힌 글씨체도 비슷했죠.”

  삐에로쑈핑은 정리·정돈된 진열을 ‘지양’한다. 옷이 진열된 곳 몇 발자국 옆엔 명품 가방이 진열돼 있고 식품 옆엔 파티용품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워낙 물건이 많다 보니 한 통로에 두 명이 지나가기도 비좁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이곳에 들러 구경을 하고 쇼핑을 한다. 압축진열 방식을 통해 누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즐거움’이다. ‘저도 그게 어딨는지 모릅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직원들의 유니폼은 고객의 웃음을 유발한다. “사고 싶은 화장품을 찾느라 이리저리 움직였어요. 정말 미로를 탐험하는 기분이었어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화장품을 발견했는데 정말 웃겼죠.”

  삐에로쑈핑의 또 다른 B급 매력은 저렴한 가격과 재치있는 가격 이름이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이나 부도난 회사의 제품을 사들여 특가판매하는 ‘급소가격’을 비롯해 카테고리에서 인기 있거나 가격 경쟁력이 우수한 제품에는 ‘갑오브갑’, 단독으로 만든 상품에는 ‘광대가격’이란 이름을 붙여 판매한다. 삐에로쑈핑은 동대문 두타몰에 2호점을 개점했다. 연이어 논현동에도 3호점을 개점할 예정인 삐에로쑈핑은 온라인 시장에 밀린 오프라인 시장의 한계를 ‘즐거움’으로 극복하고 있다.

  뇌리에 딱 박히는 B급 광고

 

“사과, 톡! 톡! 톡! 트로피카나~” 모모랜드 주이의 상큼한 표정과 중독성 강한 광고 노래가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사과, 톡! 톡! 톡! 트로피카나~” 모모랜드 주이의 상큼한 표정과 중독성 강한 광고 노래가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초특가 야놀자, 초특가 야놀자!” 한 번도 못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사를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기 힘들다. ‘풉’하고 웃음을 유발하는 광고 문구, 광고 음악, 설정 등 이목을 집중시켜야 성공하는 광고 시대다. 조희원 학생(광고홍보학과 4)은 요즘 광고 중 ‘트로피카나’ 광고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B급 광고라고들 하지만 사용된 음악이나 영상미가 세련됐다고 생각해요. 음악이 반복돼도 피로도가 덜 느껴지죠.”

  요즘 B급 광고의 큰 특징은 중독성 강한 음악이다. G마켓 광고에 나오는 음악도 가사가 재치 있다. 특정한 노래에 맞춰 반복되는 단어들은 G마켓에서 판매하는 것들을 포함한다. 조희원 학생은 한 번만 들어도 외울 수 있는 광고 음악 중 하나로 오로나민C 광고를 꼽았다. “오로나민C 광고를 봤는데 잊히지 않더라고요. 광고 음악은 상품 브랜드나 제품 이름을 강하게 인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희원 학생은 B급 광고가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로 오늘날의 모바일 환경을 지목했다. 반응이 좋은 광고는 SNS 공유 기능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광고보다 유쾌하고 가벼운 느낌의 B급 광고를 보고 친구들과 공유하면서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하죠. 광고 패러디도 많이 하는 추세고요.”

  한편 조희원 학생은 B급 광고가 타겟에게 노출되는 횟수를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B급 광고는 다른 광고에 비해 브랜드 이름이나 노래가 과도하게 반복돼요. 더 쉽게 지겨워질 수 있다는 뜻이죠.”

  B급 캐릭터 대표주자, 유병재

 

유병재의 책 속엔 웃픈 농담이 가득하다.
유병재의 책 속엔 웃픈 농담이 가득하다.

 

  ‘누구보고 생각이 많대, 지가 생각 없는 거면서.’ 코미디언 겸 방송작가인 유병재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이다.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사면서 일명 ‘유병재 어록’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유명하다. ‘어느 날 운명이 말했다. 작작 맡기라고.’, ‘듣는 순간 기분 나쁜 말,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등 유병재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윤성민 학생(대구보건대 임상병리과)은 유병재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고 유병재의 팬이 됐다. “‘주말은 택배를 기다릴 때만 가까이에 있구나’라는 문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유병재씨는 재미와 공감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능력이 있죠.”

  유병재는 『블랙코미디(유병재 농담집)』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그는 블랙코미디를 ‘웃픈(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농담’으로 정의했다. 생각 없이 툭 던진 농담 같지만 그 속엔 전하고자 하는 묵직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윤성민 학생은 유병재의 책은 가볍게 읽히지만 무겁게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유병재씨 말엔 현실이 담겨있어요. 분노도 있죠. 자칫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꼬집어요.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뜨끔’하는 순간이 종종 있죠.”

  유병재는 특출난 입담으로 지난해 8월 ‘스탠드업 코미디쇼 블랙코미디’를 열었다. 1분 만에 전석 매진된 티켓이 그의 인기를 증명했다. 그는 재치있으면서도 신랄하게 사회를 비판해 젊은 층 사이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윤성민 학생은 티켓팅에 실패했지만 ‘B의 농담’ 영상을 따로 찾아봤다고 전했다. “유병재씨가 자신에게 달린 악플을 읽는 장면이 신선했어요. 악플을 풍자하면서 자신의 방법대로 극복하는 모습이 재밌었죠.”

  유병재의 글은 저급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다. 번지르르하게 구구절절 표현하지 않고 짧고 쉽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의 B급 어록은 어설픈 듯 정곡을 찌른다.

  B급이라 해서 낮잡아 봐선 안 된다. 어딘가 촌스럽고 황당무계해 보이지만 당신의 유머 코드에 적중하는 ‘B급’ 코드는 이미 대중문화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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