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조절 장애’라는 용어는 분노, 화내는 것의 결함을 대변해 준다. 화를 잘못 내면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노는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이다. 분노가 없다면 한겨울에 열대 태풍처럼 몰아쳤던 촛불 시위가 가능했겠는가? 분노는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신의 의지나 목표가 방해받았을 때 느끼는 강렬한 정서’로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강력한 에너지를 이끌어낸다. 그래서 분노는 정의롭지 못한 물리적 침략에 강하게 맞설 수 있는 힘을 인간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분노는 지나치게 강한 에너지를 이끌어내 이성적인 판단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분노는 우리 삶에서 예측과 질서를 깨기도 한다. 마틴 맥도나 감독의 영화 <쓰리 빌보드(2017,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는 분노의 정당성과 지나친 표출로 인한 후회가 만들어내는 반전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영화의 내용은 한 어머니가 성폭행으로 살해당한 딸의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경찰을 꾸짖는 입간판을 도로변에 세우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무능하다고 낙인찍힌 경찰 서장은 췌장암 말기 환자로 죽어가면서도 최선을 다해 사건을 해결하려고 했다.

  그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머니는 서장을 몰아붙인다. 그리고 공격당하고 죽어가면서도 서장은 어머니가 표출하는 분노의 정당성을 이해하려고 한다.

  서장의 죽음에 분노한 사람은 부하 경찰이었다. 부하 경찰은 그 분노를 입간판을 세운 업자에게 표출하여 중상을 입히고 해고당한다. 한편, 아직 분노를 삼키지 못한 어머니는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경찰서에 불을 지른다.

  하지만 해고당한 경찰이 거기에 있었고 크게 화상을 입는다. 자신의 분노를 제어하지 않고 그대로 표출한 두 사람은 서로 마주한다. 이미 큰 분노를 표출한 두 사람은 후회하고, 미안해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분노가 정의의 구현으로 혹은 후회로도 남을 수 있는 반전의 궤적을 보여준다. 어머니와 전직 경찰은 서로의 분노를 이해하고 동정하고, 살인 용의자라는 공동의 목표를 찾는다. 하지만 용의자의 정체가 불분명하다. 한번 분노의 표출을 경험한 이들은 조심스럽다.

  여기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의 전체 내용은 분노가 변주해내는 삶의 모습들을 다채롭게 그려낸다. 분노는 정의로운 삶을 지탱하기 위하여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지만 폭력성과 후회를 동반하여 이성적인 통제가 필요하기도 한 복합적 반전 덩어리이다.

  이야기 흐름에서 나타나는 예측하기 어려운 반전들은 분노라는 정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설정되고 있으며, 분노의 특징은 사건들을 연결하는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분노의 이중성을 연구해온 나에게도 영화 창작자의 분노에 대한 통찰력과 상상력은 경이롭다.

이승조 교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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