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허물기
  • 최지인 기자
  • 승인 2018.09.03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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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변했다. 정문을 바라보며 엄마가 딸에게 말했다. 엄마는 30년 전 이 교정을 걸었다. 이젠 딸이 엄마가 걷던 교정을 걷는다. 옛날엔 교문이 있었는데 이젠 없네. 많이 변했다.

  엄마는 두꺼운 담장을 두른 중앙대를 다녔다. 교문을 지나 수업을 들었다. 지난 2002년 중앙대는 이 담장을 허물었다. 중앙대가 시작이었다. 이어 대학들이 너도나도 담장을 허물고 지역사회에 교문을 열었다. 이젠 청룡연못 옆에서 어린아이가 뛰놀고, 중년 부부가 벤치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딸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이제 담장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눈에 보이는 담장은 없다. 대신 새로운 담장이 쌓였다. 어느 밤 안성캠에 침입한 괴한은 학생들에게 지역사회에 대한 경계심을 남겼다. 학생들은 매일 같이 머물면서도 정작 흑석과 내리라는 지역사회에 큰 관심이 없다.

  담장이 높아질수록 대학과 지역의 상생은 어려워진다. 더 높아지기 전에 서로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이번학기 중대신문은 지역보도 면을 마련했다. 중앙대를 둘러싼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점차 담장을 허물어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또 다른 담장도 있다. 학교와 학생 사이 쌓인 높고 오래된 벽이다. 구조조정부터 전공개방 모집제도 논의에 이르기까지 학교와 학생은 오랜 소통 부족을 겪어왔다. 소통 부족은 작은 부분에서도 발견된다. 학생이 알아야 할 작지만 큰 학교 소식이 학생이 모르는 사이 지나간다. 학생이 꼭 알아야 할 작은 소식들을 모아 이주의 중앙에서 전한다.

  학교와 학생을 구분 짓는 벽은 맞이하는 100주년에도 존재한다. 학교와 분리된 학생들에게 100주년이란 그들만의 행사일 뿐이다. 함께 즐기는 100주년을 위해 이번학기 중대신문은 매주 백과사전을 펼쳐 100년의 이야기를 전한다. 중대신문이 전하는 이야기가 학교와 학생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허물 담장은 중대신문과 독자 사이에 있다. 지면은 독자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독자가 찾지 않으면 중대신문이 전하는 소식은 독자에게 닿지 않는다. 독자가 찾아주기만을 기다리는 고고한 신문은 이제 매력이 없다. 이번학기 중대신문은 독자를 직접 찾아간다. 매주 월요일, 메일과 메신저를 통해 한 주 소식을 전한다.

  중대신문과 독자 사이 견고한 담장을 넘기 위해 중대신문은 새로운 도전을 한다. 어쩌면 이제까지 독자는 중대신문을 무겁게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이젠 그 무게를 덜어보려 한다. 유튜브 채널을 신설해 정적인 지면에서 동적인 영상까지 나아간다. 콘텐츠도 더욱 독자가 궁금해 하는, 통통 튀는 내용으로 준비했다.

  많이 변했다. 보이지 않는 담장을 허물기 위해 이번학기 중대신문은 변했다. 30년 후 정문을 바라보며 많이 변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딸은 담장을 부단히 두드릴 것이다. 대학 최초로 물리적 담장을 허문 캠퍼스에서, 심리적 담장까지 완전히 허무는 중대신문이 되길 기대한다.

최지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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