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켜진 두 주먹 풀고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 사진부=최지환, 김정훈, 정준희 기자
  • 승인 2018.09.03 05: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에서 초점이 안 맞아 흐릿하게 보이는 상태를 ‘아웃포커스’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초점이 맞아 선명한 상태를 ‘인포커스’라고 부르죠. 사진에 아웃포커스 된 부분과 인포커스 된 부분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갈 때 집중하는 부분과 소외되는 부분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번학기 사진부는 여러분이 바쁜 삶 속에서 미쳐 시선을 주지 못한 아웃포커스 된 대상들에 포커스를 맞춰보러 합니다. ‘인포커싱’의 첫 번째 순서는 평화의 소녀상입니다. 조속한 ‘위안부’ 문제 해결을 기원하며 서울 시내 16개와 안성 시내 3개소녀상의 모습을 담아봤습니다.

 

 

소녀상이 존재하기까지

흑석역 3번 출구 언저리. 화가 난 듯 차분하게 앞을 응시하는 단발머리 소녀상이 있습니다. 소녀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같은 자리를 지키기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지났죠. 흑석역 소녀상을 포함해 전국에 70개가 넘는 소녀상이 설치됐습니다. 이제는 오고 가는 길에서 마주치는 소녀상이 우리 일상의 일부로 느껴질 정도로 익숙한 풍경이 됐죠. 하지만 소녀상이 설치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과연 소녀상이 탄생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평화의 소녀상 탄생의 역사는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해방 이후에도 사회의 편견과 정부의 무관심 속에 상처받아 왔습니다. 피해자는 가족의 반대 때문에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게 창피하다며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죠.

  그러던 중 1991년 8월 14일 故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했습니다. 故김학순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일본군은 군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하자 증언을 결심했습니다. 故김학순 할머니는 생전 인터뷰에서 “신문과 뉴스에 나는 발표를 보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결심을 단단히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 1992년 1월 8일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첫 집회가 열렸습니다. 이 집회는 점차 발전해 매주 수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수요집회)가 열리게 됐죠. 수요집회에서 피해자와 시민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 진상규명과 문제해결을 요구했습니다. 수요집회는 더운 여름 햇빛 아래에서도, 매서운 겨울바람 아래에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돼 500회가 된 2002년 3월에는 세계 최장기간 집회로 기네스북에도 올랐습니다.

<br>

  2011년 12월 14일 1000차 수요집회에서는 첫 번째 평화의 소녀상이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됐습니다. 이 소녀상의 제작자가 누구인지 아시나요? 조소학과 1기 졸업생인 김서경·김운성 조각가(조소학과 84학번)입니다. 부부는 우리 머릿속에 있는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은 할머니의 모습이지만 일본군이 성노예화시킨 건 12살 정도밖에 안 되는 어린 소녀였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어 소녀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정부는 지난해 매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을 정부 공식 기념일로 지정했습니다. 이전까지 민간단체 차원에서 열렸던 행사가 정부 차원으로 승격한 거죠. 올해 8월 14일에는 천안시 국립망향의동산에서 첫 공식 기념행사와 더불어 추모비를 제막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240명 중 생존자는 현재 28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피해자 곁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 땅은 앞으로도 피해자가 마음 놓고 발을 디딜 안식처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곁의 소녀상

그럼 흑석역 소녀상을 찬찬히 살펴볼까요? 소녀상의 각 부분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소녀상의 발은 온전히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까치발을 들고 있는 모습인데요. 이는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해방 이후에도 사회의 편견과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이 땅을 밟고 서있지 못함을 나타내죠. 소녀상에 가까이 다가가면 할머니 형상의 그림자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림자는 소녀에서 할머니가 되기까지 긴 시간 동안 정의 회복을 기다려온 피해자 할머니들의 모습과 쉽게 지워지거나 잊히지 않는 역사를 의미합니다. 가슴에 자리한 나비 한마리에는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영혼이 진정한 해방을 꿈꾸며 날갯짓 하고 있죠.

  이제 다른 소녀상들도 둘러볼까요? 각 소녀상은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서초구 서초고등학교 안 소녀상①은 가슴에는 무궁화, 두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통해 조국의 독립과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을 표현하죠.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소녀상⑩은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길원옥 할머니의 삶과 모습을 바탕으로 김서경·김운성 평화의 소녀상 조각가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제작해 헌정했습니다. 금천구 금천구청 앞 광장 소녀상⑫은 왼손에는 상처받은 과거인 번데기를 들고 오른손에는 미래를 뜻하는 나비를 날리고 있습니다. 소녀가 나비를 날림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희망을 맞이하게 되죠. 은평구 은평평화공원 소녀상 ⑭의 뻗은 팔 위로 새가 날아오르고 있는데요, 이는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와 정의 구현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현합니다.

  우리 곁에 있는 소녀상의 모습은 다채로웠습니다. 하지만 이 모습에 눈길을 주는 시민은 거의 없었죠. 시민 대부분이 저마다의 갈 길을 걷는 데 바빴습니다. 소녀상보다 소녀상 사진을 찍는 기자에 관심을 두는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소녀상에 무관심한 시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 시민은 소녀상 옆에 새겨진 안내문을 꼼꼼하게 읽고 있었죠. 어떤 학생은 소녀상이 더울 것 같다며 소녀상에 부채질을 해줬습니다. 지나가던 외국인 관광객은 소녀상 앞에 서서 소녀상에 대해 스마트 폰으로 검색하기도 했죠.

  여러분의 발걸음을 재촉하던 더운 날씨가 한풀 꺾였습니다. 잠시 발걸음을 늦추고 그동안 지나쳤던 소녀상에 다가가면 어떨까요? 우리가 곁에 있어 준다면 소녀상이 힘들게 들고 있던 까치발을 풀지도, 조용히 응시하던 소녀의 표정이 환한 웃음으로 바뀔지도 모릅니다.

 

 

 

 

서울특별시 소녀상 위치

①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27길 29

②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로 552

③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소문동1가 1-4

④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9

⑤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대현동 146

⑥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34-2

⑦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 603-13

⑧서울특별시 노원구 덕릉로 450

⑨서울특별시 강북구 도봉로 351

⑩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11길 20

⑪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 192-3

⑫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대로73길 70

⑬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2길 22

⑭서울특별시 은평구 녹번동 153

⑮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로 128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